[더팩트 | 서민지 인턴기자] 납북 피해자 메구미가 약물 과다투여로 사망한 뒤 야산에 매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는 가운데 일본인 납북 사건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요코다 메구미(1977년 납북)는 일본 납북자 문제의 상징적 인물로 북한의 독극물이나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한 뒤 관도 없이 다른 시신과 뒤섞인 채 야산에 묻혔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동아일보가 7일 보도했다.
그동안 북한은 메구미가 1986년 평양에서 김영남(한국인 납치 피해자)씨와 결혼했으며 1994년 자살했다고 주장해 왔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6일 메구미의 사망을 목격했던 북한 관계자를 면담한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와 한국의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의 공동조사 보고서에 양측이 9월 11일 메구미가 사망한 정신병원인 평양 49호 예방원 관계자 2명을 제3국에서 만나 조사한 내용이 들어 있다.
증언에 따르면 메구미는 '완전격리병동'에 갇혔다가 서른 살이던 1994년 4월10일 사망했고 15일 인근 야산에 묻혔다고 전했다. 증언자들은 "정신병 약인 정신진정제 수면제 약물 위주로 먹고 주사맞았다"며 수면제 하이미날 등의 약의 종류와 복용량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이들은 메구미의 몸에 죽었을 당시 청색 반점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이는 독극물이나 지나친 용량의 약물을 먹거나 주사를 맞았을 때 볼 수 있는 소견이라고 했다. 이어 메구미의 시체는 노동당 조직의 지시로 다른 시체 5구와 함께 트랜터 적재함에 실어 관도 없이 구덩이에 묻었다고 전했다.
일본인납북사건은 197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북한이 남파간첩의 일본어 교육 및 신분 도용을 위해 일본인을 납치한 사건을 말한다. 북한당국은 냉전 시기에 북한이 남파 간첩들에게 일본인의 신분으로 위장시키고 일본어 교육을 시키기 위한 교관으로서 일본인들이 필요하였다.
이에 대해 2002년 9월 17일 평양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 특수기관 일부에 망동주의자가 영웅주의로 달려 이런 일을 했다. 일본어를 학습하고, 그 신분을 이용해 한국에 잠입하기 위해서였다"고 언급하며 일본인 납치를 공식 사과 및 재발방시 약속을 함으로써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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