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김아름 기자]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 2011년 국민은 공분에 휩싸였다.
법원이 여중생을 납치·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길태에게 1심 재판부의 사형 선고를 무시하고 '무기징역'으로 형을 낮췄기 때문이다.
감형 이유는 '김길태의 정신질환'이었다.
법원 판결에 당시 피해자 가족들은 오열하며 크게 분노했다. 과연 김길태는 정신병자였을까?
'심신장애(정신병·음주 상태)가 있는 자의 행위는 형을 감형한다.(형법 10조 2항)'는 현행 법 조항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겐 고통과 아픔을, 패륜 범죄자에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러다보니 많은 범죄자가 툭하면 정신질환 핑계를 대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더팩트>는 정신병과 우울증을 주장해 형량을 줄이려는 범죄자들의 꼼수와 낡고 오래된 법 조항에 빠져 국민 법감정을 외면한 법원의 판결 사례를 살펴봤다.
◆12명 연쇄 성폭행 '성남 발바리', 법정에서 정신장애 '핑계'
"정신분열 증세 때문이었어요!"
지난 2012년 10월 어린 여성 12명을 연거푸 성폭행한 성남 발바리 사건의 범인 A(47)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스 검침원으로 위장해 10대 여성만을 골라 몹쓸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A씨는 반성의 기미는커녕 '나는 정신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며 범행을 합리화했다.
A씨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지난 2005년 특수강간 혐의로 구속됐으나 정신병(심신미약)을 인정받아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났다.
법원은 "A씨가 나이 어린 여학생만을 골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범행을 했다. 정신병으로 볼 수 없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이 2005년 당시 이렇게 판결했더라면 성남 발바리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09년 12월 24일 늦은 오후 전남 영암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영암 공무원 부부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이 사건의 범인은 다름 아닌 아들이었다.
사건 당일 아들 B씨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 아버지가 뺨을 때리자 부모를 둔기로 마구 때리고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B씨 역시 법정에서 '간헐적 폭발성 장애가 있어 이성을 잃었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스트레스와 불안 증세가 있더라도 25년을 길러준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범행을 감추려고 집 안을 어지른 행동은 정상인에 가깝다"고 판결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존속살해를 저지른 B씨에게 고작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군대 안 가려고, 정신질환자로 둔갑' 너도 나도 '정신병'
지난 2010년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은 유명 비보이 댄스그룹 멤버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현역 판정을 받은 비보이 그룹 팀장 황씨 등 9명은 의사에게 '자신들이 정신질환자'라고 속여 장기간 약물 처방을 받고 병역을 면제받았다.
병역 면제는 이처럼 너무 쉬웠다. 말 한 마디에 정신질환자로 둔갑할 수 있었다.
경찰이 조사를 했더니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현상은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책임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대다수 범죄자는 범행 뒤 책임을 회피하고 형량을 줄이고자 '우울증' 또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거짓 자백을 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철저하게 검사해 참·거짓을 가리고 법원은 죄질에 맞게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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