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화성=황신섭기자] 세월은 잔혹한 범행 흔적을 모두 파묻고 있었다.
한때 경찰과 기자들로 북적이던 사건 현장엔 모래 바람만 불었다. 육교 위를 오가는 자동차가 피해자를 대신해 요란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육교 기둥 오른쪽으로 몸을 트니 검은 물이 고인 농수로가 눈에 들어왔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2차 피해자 박모(25·여) 씨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 알몸 상태로 발견된 장소다.
28년 전 그녀가 아직도 농수로 안에서 몸부림치는 듯 했다.
<더팩트>가 지난 12일 오전 11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 2차 피해자 발견 장소(현 화성시 진안동)를 직접 찾아보니 소름이 돋았다.
시멘트로 만든 농수로 주변은 흙으로 뒤덮였으나 군데군데 균열이 생긴 농수로 입구는 그대로였다. 지난 1986년 10월 23일 시체 발견 당시처럼 풀도 무성했다.
진안동 주민 강모(61) 씨는 “당시엔 동네 주민보다 경찰이 더 많았다”며 “사람들이 조금만 어두워지면 아예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씨는 또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섬뜩하다”면서 “모르는 사람이나 이곳에 차를 세우지 아는 주민은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7차 사건이 일어난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당시 사건현장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다녀봤지만, 피해자 안모(54) 씨의 주검이 발견된 농수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2시간 정도를 헤맸을까. 7차 사건 당일 그녀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는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다. 대낮인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사건 당시를 떠올리며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살해당한 1988년 9월 7일 그날에도 오늘처럼 이곳엔 아무도 없었으리라. 살인마의 손이 자신의 목을 옥죄었을 때 그녀는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사건 현장은 여전히 그날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 공개를 거절한 주민 김모(68·여) 씨는 “7차 사건이 터진 뒤 주변 마을에서 ‘밤사이 누가 또 죽었다. 범인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괴소문이 나돌았다”며 “화성 연쇄살인은 피해자와 지역 주민 모두에게 공포와 고통을 안겨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나머지 사건 현장은 아파트나 도로가 들어서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경찰이든 기자든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 화성 연쇄살인 트라우마를 씻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당시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려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며 “국가가 이들의 후유증 치료(범인 검거, 트라우마 치료 지원)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희대의 살인마를 향한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한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 19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현 안녕동)에서 71세 노인이 목 졸려 살해당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86년 2차례, 1987년 3차례, 1988년 2차례,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1차례씩 여성 10명이 차례로 성폭행 살해당했다. 10차 사건을 끝으로 2006년 공소시효가 모두 끝났다.
◆ [TF영상] '화성 연쇄살인' 2차 범행장소, '그 날의 기억' (http://youtu.be/WKsYXYyf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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