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민지 기자] "우리도 DJP처럼 협치합시다."
정치인들은 저마다 자신을 정계로 입문시킨 '정치적 아버지'가 있다. 20대 국회를 이끌어 나갈 더불어민주당 우상호·새누리당 정진석·국민의당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는 각각 DJ(고 김대중 대통령)와 JP(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며 '협치'와 '소통'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이번 '여소야대' 3당체제인 20대 국회에서 과연 이들은 아버지의 유산만 노리는 아들이 될지, 아니면 'DJP 소통·협치 정신'을 실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누리당 원내사령탑에 오른 정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우 원내대표를 만나 "우리는 DJP 문하생들로 협치를 잘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종필 전 총리를 '정치적 아버지'로 모시는 정 원내대표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우 원내대표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DJP연합'의 정신을 되살리자고 한 것이다. 그는 이날 우 원내대표에 대한 예의로 DJ가 좋아했다는 노란색 넥타이까지 매고 왔다.
정 원내대표는 그동안 'JP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지난 1999년 김종필 전 총리가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의 명예총재특보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자민련 공천을 받아 부친인 정석모 전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연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충청권'을 기반으로 'JP의 후계자' 길을 걷고 있다.
김 전 총리도 그동안 정 원내대표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해왔다. 그는 지난 2014년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위원장)에게 천안의 한 음식점에서 "정 원내대표의 선친인 정 전 의원과 공주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며,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 그를 처음 만났다. 그 후 아들처럼 때로는 정치적 동지처럼 같은 당에서 활동했고 정진석을 정치에 직접 입문시킨 것도 내가 한 것"이라면서 "함께 일을 해봐서 잘 아는데 인간이 됐다. 충청도에서 내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곤 했는데, 정 후보는 내가 못 다한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지난달 22일 선거운동 당시에는 정 원내대표의 선거캠프에 방문해 "6선 째는 총리를 해라. 그리고 그 다음을 또 쟁취해라. 그게 내 희망"이라고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가 밝혔듯 우 원내대표는 DJ의 문하생이다. 그는 19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대표 주자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 피 수혈론'의 일환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정계 입문은 김 전 대통령 때문에 했을지 몰라도 사실상 첫 배지를 단 건 노무현 정부였던 2004년 17대 총선 때이다. 때문에 우 원내대표는 흔히 '범친노계'로 분류되곤 한다. 우 원내대표 본인도 지난 2012년 '우상호가 걸어온 길'을 소개하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 안쪽 집무실에는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최근 들어선 DJ를 자주 언급하며 같은 'DJ 계보'인 박 원내대표와 친밀감을 내세우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와 인연을 "김대중 총재가 영입했으니 같은 식구"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선 "정치가 호남 정치가 있고 아닌 정치가 따로 있나. 그것이 바로 지역주의 아닌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호남을 앞세워 국민을 편가르지 않았다. 스승의 가르침과 유언을 왜 뒤집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 원내대표가 '같은 식구'라고 언급한 박 원내대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장관 등을 지낸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유명하다.
박 원내대표는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가발 사업 등으로 자수성가 했을 당시 미국 망명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국회 의원회관 615호 의원실 방 안 가득 김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과 김 전 대통령의 생애 업적을 기린 사진 등을 액자에 걸어 채워놓았다.
박 원내대표는 정치적으로 운명을 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DJ의 묘소를 참배한다. 그는 지난 2월 18일 대법원에서 저축은행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취지 파기 환송 판결을 받은 후에 가장 먼저 현충원을 찾아 DJ의 묘소를 참배했다. 또한 4·13 총선 공식 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3월 30일엔 전남 무안에 있는 김대중 공원을 찾아 "반드시 선거에 승리해 목포 시민 여러분과 함께 목포발전, 야권통합, 정권교체를 이룩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당선 후에도 '동교동계' 인사들과 현충원을 방문했다.
또한, 박 원내대표는 평소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DJ와의 일화를 자주 설명하곤 한다. 지난 6일 초선 공부모임에서 특강을 할 때도 'DJ의 유훈'을 들어 '지역구 관리법' 등 '깨알 팁'을 전수했다. 박 원내대표는 "의정활동을 시작하면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훈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 DJ 장례식 때도 저는 금귀월래를 했다"면서 "또 김 전 대통령은 저한테 무엇에 걸리면 얼른 사과하고, 더 곤란하면 물러나라고 그랬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국회의장 직에 대해서도 1988년 여소야대 국회 때 제1야당 평민당 총재이던 김 전 대통령이 국정안정을 위해 과거 '책임지는 정치하라'며 당시 여당인 민정당 김재순 의원에게 국회의장을 양보한 일화를 소개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하고 협력을 요구하면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직을 하는 데 (국민의당이) 동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3당 원내대표는 20대 국회를 앞두고 'DJP'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했다. 국내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DJP 연합'처럼 정치적 아들들도 과연 20대 국회에서 어떤 협치를 보여줄 것인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