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st BIFF] 정성일·유재명 '사피엔스', 스릴러 그 이상의 질문(종합)


8일 BIFF 야외무대서 '사피엔스' 오픈토크 진행
1인 다역 정성일부터 도전 택한 유재명·류현경

이후빈 감독과 배우 정성일, 류현경, 유재명(왼쪽부터)이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루프씨어터에서 열린 사피엔스 오픈토크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부산=박헌우 기자

[더팩트ㅣ부산=김샛별 기자] 한 명의 용의자, 그러나 취조실에 앉는 사람은 매번 다르다. '사피엔스'가 익숙한 범죄 미스터리에 다중인격이라는 설정을 더해 범인의 정체를 넘어 '한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제31회 부산영화제(BIFF)에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섹션' 부문에 초청받은 영화 '사피엔스'(감독 이후빈)의 오픈 토크가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다. 현장에는 이후빈 감독을 비롯해 배우 정성일 유재명 류현경이 참석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사피엔스'는 재벌 3세 납치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된 다중인격자 나도한(정성일 분)과 사라진 재벌 3세를 찾아야 하는 변호사 서희재(유재명 분)가 의심의 공조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용의자는 한 명이지만 취조실에 들어서는 인격은 매번 다르다. 진범을 찾는 과정에서 '나도한은 누구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첫 장편영화로 BIFF를 찾은 김지현 감독은 전날 첫 상영을 마친 소회부터 밝혔다. 그는 "어제 첫 상영이어서 관객들과 함께 봤는데 너무 떨렸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며 "많은 관객들이 좋아해 주셨고 뜻깊은 질문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첫 장편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택한 이유도 분명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르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미스터리 스릴러에 흥미가 있었다. 조감독으로 일할 때도 비슷한 장르의 경험을 주로 했다"며 "첫 작품을 한다면 내가 좋아하고 흥미로운 장르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이 작품을 만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인이 누구인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누구냐'까지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며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다중인격 설정을 통해 주인공이 알고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것인지에 대한 긴장감을 끌고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배우 정성일이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루프씨어터에서 열린 사피엔스 오픈토크 행사에 참석해 작품소개를 하고 있다. /부산=박헌우 기자

정성일은 사건 당시 기억이 없는 용의자 나도한을 연기했다. 성별과 나이, 성격이 모두 다른 인격을 오가며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했던 만큼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정성일은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작품이었다. 다중인격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기존 작품 중 훌륭한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성과를 내가 낼 수 있을까 계속 물음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너무 좋은 작품이었고 옆에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계셨다"며 "한 번은 살면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할 수 있게 됐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배우 유재명이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루프씨어터에서 열린 사피엔스 오픈토크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부산=박헌우 기자

유재명은 사건을 은폐해야 하는 상현건설 법률팀장 서희재 역을 맡았다. 나도한의 다양한 얼굴 사이에서 진범을 가려내야 하는 재벌가 전속 변호사다.

그는 "배우들이 작품을 선택할 때 각자만의 이유가 있는데 나에게는 도전이었다. 난해한 부분도 있고 기존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보니 용기가 필요했다"며 "다른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선하고 멋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어려운 숙제를 풀어내고 싶은 욕구도 있다"며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영화를 찍고 소통해야 하는지도 배운 것 같아 좋은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류현경은 강력계 팀장으로 변신했다. 특히 원래 남성 캐릭터였던 이 역할을 이 감독은 류현경을 위해 성별을 바꿨다.

류현경은 "시나리오도 좋았고 선배님들이 한다고 하니까 묻어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며 "여성이 강력계 팀장으로 나오는 작품이 많이 없지 않나. 원래 남자 역할이었는데 감독님이 여자 역할로 바꿔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초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어떻게 잘 살아왔는지, 한편으로는 어떤 안 좋은 생각으로 살아왔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후빈 감독과 배우 정성일, 유재명, 류현경(왼쪽부터)이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루프씨어터에서 열린 사피엔스 오픈토크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부산=박헌우 기자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만큼 정신장애를 표현하는 데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이 감독은 나도한을 단순히 '질환을 가진 인물'로 소비하지 않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장애'라는 표현이 붙곤 한다. 다만 나도한이라는 캐릭터를 잡아갈 때는 단순한 질환이 아니라 인물이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와 서사를 갖고 있고 그 결과의 산물로 그렸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질감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그가 가진 과거를 통해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그가 가진 아픔과 트라우마에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짚었다.

배우들도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각자의 질문을 던졌다. 정성일은 "'사피엔스'는 내가 늘 던지고 싶은 질문에 가장 가까운 영화인 것 같다"며 "관객분들이 보고 '나라면,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많은 답을 들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유재명은 "저희 영화 '사피엔스'도 기억해주시고 다른 영화도 많이 봐주시면서 좋은 기억 많이 품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류현경 역시 "영화가 내년 초 개봉할 예정인데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부산영화제에서도 아직 상영이 남았는데 모두 매진이라고 들었다. 재미있게 봐 달라"고 강조했다.

첫 장편을 부산에서 선보인 이 감독에게도 이번 영화제는 특별한 의미였다. 그는 "스스로도 감개무량하다"며 "촬영할 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작품에 임했다. 그러니 따뜻한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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