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정준원에게 '유부녀 킬러'는 '도전' 그 자체였다. 첫 주연으로서 오른 시험대였고 캐스팅 단계부터 홍보 활동까지 예상치 못한 잡음도 이어졌다. 그러나 정준원은 이를 피해 숨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쪽을 택했다. 우려에는 연기로 답했고 부족했던 부분은 인정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험을 통과한 '유부녀 킬러'는 정준원에게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하게 만든 작품으로 남았다.
정준원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MBC 금토드라마 '유부녀 킬러'(극본 김은희, 연출 윤종호)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권태성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유부녀 킬러'는 세상에서 가장 살벌한 직업을 가진 어느 '워킹맘'(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일을 하는 여성)의 고군분투 '워라밸'(일과 개인 삶 사이의 균형) 사수기를 그린 드라마다. 총 14부작으로 지난 12일 종영했다.
작품은 1회 시청률 7.4%(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로 순조롭게 출발한 뒤 자체 최고인 10.7%까지 치솟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정준원은 "촬영한 시간이 길었는데 시청자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그 모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다.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준원이 연기한 권태성은 유보나(공효진 분)의 남편이자 열혈 탐사보도팀 기자다. '킹피셔'(공효진 분)를 집요하게 취재하는 기자인 동시에 아내의 비밀까지 감싸안는 진중한 인물이다. 최종회에서는 모든 진실을 마주하고도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겠다는 변함없는 선택을 하며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다만 정준원이 처음부터 권태성으로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유부녀 킬러'는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실사화 소식이 전해진 뒤 캐스팅을 두고 일부 원작 팬들의 우려가 나왔다.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두고 부정적인 시선도 공존했다.
하지만 정준원은 원작의 권태성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정준원은 "대본을 받았을 때 오히려 판타지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이렇게까지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가 있을까'라는 점이었다"며 "이 인물을 내가 어떻게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정준원만이 할 수 있는 권태성을 아예 새롭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원작을 보면 저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굳이 참고하지 않았어요. 권태성은 다정한 아빠이자 남편이고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기자잖아요. 그런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멋있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잘 표현한다면 시청자분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 믿음은 결과로 이어졌다. 정준원은 가정에서의 권태성을 연기할 때는 특유의 다정한 미소와 생활 밀착형 연기로 따뜻함을 더했고 기자로 나설 때는 예리한 눈빛과 묵직한 톤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남편과 아빠, 기자라는 여러 얼굴을 오가면서도 자신만의 색을 입힌 권태성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정준원이 가장 집중한 감정은 '사랑'이었다. 정준원은 "보나에 대한 사랑에 가장 포커스를 맞춰 놓고 연기했다. 초반의 서사가 잘 쌓여야 나중에 태성의 선택과 극한의 감정들이 시청자분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아내를 지키려는 마음은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나에게 포커스를 두고 작품을 바라봤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연기는 항상 너무 어렵고 힘들죠.(웃음) 그래도 다행히 후반부 장면들을 실제 촬영 후반부에 찍을 수 있었어요. 저한테도 인물과 작품에 대한 정서가 많이 쌓여 있는 상태였어요. 워낙 효진 선배가 잘 서포트해 주셔서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정준원은 방송 전 자신을 향했던 우려를 조금씩 지워나갔다.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향한 물음표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연기에 대한 호평으로 바뀌었다.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연기로 일부를 설득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또 하나의 자신감이 됐다.
정준원은 "보시는 분들이 아쉽거나 불만을 느끼는 부분을 제가 전부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라도 설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며 "연기자에게 '연기를 잘 소화해 냈다'는 것보다 좋은 칭찬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자신감을 조금 더 얻게 됐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첫 주연이었던 만큼 부담도 당연히 됐어요. 걱정되고 불안하면서도 설레고 기대됐죠. 그래도 다행히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주어진 역할의 연기만 잘 소화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책임감 같은 것들을 많이 알고 배웠어요. 그런 의미에서 연기자 정준원이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작품을 무사히 마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유부녀 킬러' 홍보를 위해 출연한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예상치 못한 태도 논란에 휩싸였다. 첫 예능 출연에 대한 긴장과 부담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를 두고 일부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정준원은 이 역시 피해 가지 않았다. 그는 "첫 주연을 맡았고 작품 홍보를 목적으로 출연한 만큼 정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며 "제 입장에서도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예전과 달라진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캐스팅을 둘러싼 우려부터 예능 태도 논란까지, 정준원에게 '유부녀 킬러'는 연기 안팎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무조건 외면하거나 변명으로 덮으려 하지 않았다.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연기로 답했고 부족했던 부분은 인정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다시 '성장'의 몫으로 가져갔다.
이처럼 자신에게 닥친 시간을 묵묵히 통과하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15년 영화 '조류인간'으로 데뷔한 정준원은 오랜 무명 시기를 거친 뒤 지난해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구도원 역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정준원은 이 모든 걸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제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딱 1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어요. 그런데 절대 'YES(예스)'라는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순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연기하고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고 나름의 재미도 있었어요. 잘 견뎌내고 버텨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유부녀 킬러'는 정준원에게 단순한 작품 이상으로 기억될 것 같단다. 그는 "전작을 통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는데 늦은 나이에 수면 위로 올라온 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습득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며 "지나고 보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 모든 과정이 '유부녀 킬러' 안에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앞으로는 궁금한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새로운 작품에 나온다고 했을 때 '이 배우가 이번에는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하고 흥미가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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