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종영③] 이토록 꼼꼼한 고증이 주는 쾌감이란


"역사 고증은 확실히" 대사로 던진 자신감
가상 조선 콘셉트에도 담긴 디테일의 힘

멋진 신세계는 지난 20일 시청률 11.8%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SBS

[더팩트ㅣ강신우 기자] "아무리 이 '헬조선(지옥 같은 조선)'에 강상의 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역사 고증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배우 임지연의 이 한마디는 이 시대 콘텐츠 제작자들의 마음을 관통했다. 판타지라는 설정은 얼핏 뭐든지 허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더 집요하게 고증과 디테일을 파헤친다. 그리고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는 세밀한 고증이 만드는 멋을 명확하게 증명했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멋진 신세계'(극본 강현주, 연출 한태섭)는 희대의 조선 악녀 강단심(임지연 분) 영혼에 빙의 돼 악해진 무명 배우 신서리(임지연 분)와 자본주의의 괴물이라 불리는 악질 재벌 차세계(허남준 분)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드라마다.

첫 회 시청률 4.1%로 시작한 작품은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흥행 우상향을 이어갔다. 이후 6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돌파하더니 꾸준히 10% 안팎을 유지하며 탄탄한 시청층을 확보했고, 최종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인 11.8%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

글로벌 반응도 뜨거웠다.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공식 차트 집계 사이트 투둠이 공개한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쇼' 주간 시청 순위 1위까지 오른 '멋진 신세계'는 이후 줄곧 상위권에 자리했다. 또 넷플릭스 57개국 톱10에 진입하며 폭넓은 관심을 입증했다.

멋진 신세계의 흥행에는 배우들의 호연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연출과 역사 고증이 뒷받침했다. 사진은 지난 5월 배우 김민석 임지연 허남준 장승조 이세희(왼쪽부터)가 멋진 신세계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는 모습. /송호영 기자

이러한 흥행 뒤에는 배우들의 호연과 임지연 허남준의 로맨스 서사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연출과 역사 고증이 뒷받침했다. 제작진은 조선과 현대를 오가는 판타지 설정 안에서도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시대의 질감을 세밀하게 살렸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정통 사극 아닌 가상의 조선을 만들면서도 조선의 분위기와 맥락은 잃지 않으려 한 것이다.

기사 서두의 대사는 5회에서 현대 사회로 넘어와 신서리의 몸에 들어간 강단심이 사극 촬영장에서 조연출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숙의와 소용의 복식, 말투, 위계가 뒤섞인 촬영 현장을 본 강단심은 "역사 고증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외친다. 이는 지난달 역사 왜곡과 고증 오류 논란에 휩싸였던 MBC '21세기 대군부인'을 떠올리게 하며 더욱 화제가 됐다.

고증의 중요성을 작품 안에서 직접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부담이 큰 도전일 수도 있었다. 실제 작품이 허술하다면 이는 더 큰 비판과 조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를 영리하게 증명하겠다는 제작진의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멋진 신세계 제작진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극 중 조선과 현대의 한복, 신발 등에 차이를 뒀다. /SBS

우선 강단심이 입고 있는 한복과 현대 사극 촬영장에서 신서리가 입은 한복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조선의 강단심은 붉은색 당의에 기혼 여성을 상징하는 남색 치마를 입고 등장하지만, 현대 촬영장 속 신서리는 미혼 여성이나 새색시들이 주로 입는 초록색과 붉은색 조합의 한복을 입는다. 꽃신 역시 강단심은 굽이 없는 전통 꽃신을, 신서리는 굽이 있는 현대식 꽃신을 신어 디테일한 차이를 드러냈다.

여기에 신서리가 차세계에게 역조공으로 보낸 한문 시는 실제 조선 선조 시절 여성 시인 이옥봉의 시집 '옥봉집'에 실린 '몽혼(夢魂)'을 변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맨스 장면에 고전 시가의 정서를 끌어온 선택은 조선 여인의 언어와 현대 로맨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작품의 감정선을 한층 깊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왕비가 누에를 치며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던 국가 의례인 친잠례를 극 중에 녹여내는 등 조선 시대의 생활문화와 궁중 의식을 세심하게 반영했다. 단순히 한복이나 말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제도와 풍습까지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면서 세계관에 설득력을 더했다.

이에 대해 '멋진 신세계' 제작진은 <더팩트>에 "초반 사극 파트가 깊이 있고 격조 있게 살아나야 시청자가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세계관을 진짜로 납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정확한 사료'를 기반으로 한 클래식한 고전미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강단심의 대사는 제작진이 자기 자신에게 되묻는, 일종의 출사표이자 각오였던 셈이다.

멋진 신세계는 시대 배경에 따른 음악에도 차이를 뒀다. /SBS

각 시대의 분위기를 차별화한 음악 역시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멋진 신세계'는 현대극을 기반으로 전생의 서사만 사극으로 풀어냈기에 강단심의 감정 음악에는 양악을 기반으로 두고 최소한의 국악기를 섞어서 사용했다. 반면 신서리의 코믹한 장면에서는 꽹과리와 태평소를 추가하여 위트를 더했다"라고 디테일을 전했다.

한국사 강사 최태성의 반응도 화제가 됐다.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멋진 신세계' 드라마의 주인공 강단금은 장희빈을 떠올리게 하는데 장희빈은 경술환국으로 죽지 않고 갑술환국 이후에 죽는다"며 해당 내용이 역사 고증 오류가 아니라 극 중 독립적인 가상 세계관에서 비롯된 차이라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는 앞서 그가 '21세기 대군부인' 논란에 대해 "배우들의 출연료는 몇 억을 아낌없이 지불하면서 역사 고증 비용은 몇십만 원으로 왜 퉁치려 하나. 역사학계를 존중해 주기 바란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제작진은 "실존 인물인 장희빈의 생애와 미디어 속 재현 방식을 다룬 문헌인 '장희빈, 사극의 배반'을 위주로 깊이 연구했다. 오랜 시간동안 대중들에게 각인된 '악녀 장희빈'을 재해석해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인물인 강단심이라는 인물을 그려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역사 고증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강단심의 호통은 웃기지만 가볍지 않았다. 판타지는 자유로워도 세계관과 고증은 허술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세계가 꼼꼼할수록 시청자는 더 깊이 빠져든다. 꼼꼼하고 디테일한 고증이 주는 쾌감을 증명한 '멋진 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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