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매번 "좋아서, 끌려서" 발을 내디딘다. 막상 직면한 현실 앞에서는 '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했지?' 싶다가도 어느새 몸을 던져 구른다. 스스로를 '망각의 동물'이라 칭하며 웃어 보이지만, 그 망각의 이면에는 치열한 노력과 단단한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배우 진기주가 이번에도 '망각' 덕분에 자신의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추가했다.
진기주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각본 이남규, 연출 홍종찬)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특전사 출신으로 교육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거침없이 돌진하는 감독관 임한림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참교육'은 무너진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을 지키기 위해 창설된 교권보호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교권보호국'(이하 교권국)이라는 신선한 설정을 내세워 교육 현장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피해자의 편에서 서서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는 인물들의 통쾌한 행보를 담았다.
작품은 지난 5일 10부작 전편 공개된 가운데,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 1위를 차지하고 3일 만에 비영어 TV쇼 글로벌 1위에 오르며 글로벌 인기를 증명했다.
진기주 역시 단체 대화방에서 순위가 바뀔 때마다 동료들과 축하를 나누며 인기를 실감하는 중이다. 특히 50만 명 가까이 늘어난 SNS 팔로워와 촬영장에서 만나는 선배들 심지어 아역 배우까지 자신을 알아봐 줄 때 변화를 체감한단다.
그는 "평소에 연락을 잘 안 하거나 내 작품을 절대 안 보던 친구들까지 이번엔 '잘 보고 있다'고 연락을 줘서 정말 신기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글로벌 반응도 놀랍다. 특히 내 개인적인 과거 이력이나 이전 직업들까지 해외 팬분들이 찾아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걸 보면서 '이런 것까지 알고 계신다고?' 싶어 믿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작 '언더커버 하이스쿨'에서 기간제 교사를 맡았던 그는 이번 '참교육'에서는 교권 현장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국 감독관을 맡아 결이 다른 캐릭터를 소화했다. 이에 절권도를 베이스로 한 거친 액션은 물론 과거의 아픔을 딛고 단단해진 내면까지 표현해야 했다.
때문에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두려움도 있었단다. 그러나 진기주는 "난 매번 망각의 동물 같다. 대본을 볼 때는 마냥 좋고 끌려서 하겠다고 해놓고 막상 닥치면 '내가 이걸 어떻게 하려고 했지?'라는 후회가 반복된다"며 웃어 보였다. 이내 그는 "임한림을 마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액션스쿨에 처음 갔을 때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내 몸을 보면서 무술감독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고 돌이켰다.
"어떻게 이겨냈냐고요? 그냥 '감독님 얼굴에 근심이 안 생기게, 웃을 수 있게 내가 더 많이 연습해서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였기 때문에 관련 영상들을 끊임없이 보며 간접적으로나마 열심히 흡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전작 '언더커버 하이스쿨' 촬영이 끝나자마자 쉴 틈 없이 액션 훈련에 돌입했다. 이미 '참교육'은 크랭크인이 된 상태였기에 무술팀이 현장에 가지 않는 날이면 매일같이 연습실을 찾아 몸을 부딪쳤다. 2월 말 시작된 여정은 8월 말 촬영이 끝날 때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고된 훈련 과정을 버티게 한 건 실제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또한 감독과 작가에 대한 깊은 신뢰, 그리고 함께하는 '드림팀' 선배들이었다.
"작가님과 감독님의 전작들을 너무 좋게 봤어요. 특히 감독님의 전전작인 '소년심판'을 보면서 무거운 화두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다고 느꼈거든요. 이 작품도 감독님과 함께라면 안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대본을 받고 함께하는 선배님들의 성함을 보는데 드라마 속 교권국 4인방처럼 그야말로 '드림팀'이더라고요. 대본 속 '지켜주겠다' 같은 단어들도 마음을 찌르르하게 만들어서 매료됐습니다."
'드림팀'이 함께하는 현장인 만큼 촬영은 늘 유쾌했고 이는 수많은 애드리브로 이어졌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되 오합지졸 같은 인간적인 빈틈과 재치를 살려내고자 했던 배우들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였다.
진기주는 "현장에서 감독님이 컷을 늦게 하셔서 애드리브로 이어지는 장면이 정말 많았다. 일례로 납치당한 근대(표지훈 분)를 구해서 나온 뒤 화진(나화진 역) 선배가 응급차 쪽으로 가고 남겨진 상황도 거의 애드리브였다. 또 내가 액션 하기 전에 머리를 묶는데 화진 선배가 뒤에서 '머리 묶네, 야야 묶지 말라'고 하는 것도 다 애드리브였다. 받아주는 선배님 덕분에 머리를 묶는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극 중 일부 발성 장면만 편집된 장면을 두고 과하다는 호불호 평이 나오기도 했다. 진기주는 이러한 반응 역시 담담하고 유연하게 수용했다.
"말씀하신 대로 그런 반응 또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청하시는 분들의 패턴은 정말 다양하잖아요. 어떤 회차만 골라 보시거나, 엔딩부터 보시거나, 혹은 짧은 영상으로만 접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각자의 시청 방식에 따른 피드백이라고 생각해요."
진기주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대사는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임한림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피해 학생에게 건넨 "교권국을 한 번 믿어 봐. 언니가 지켜줄게"라는 말이다. 진기주는 "한림이가 고등학생 때는 교권국이 없었지 않나. 본인이 그 시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그 말을 뱉고 있는 스스로를 한림이도 참 대견해하고 칭찬해 줬을 것 같아서 가장 와닿았다"고 말했다.
진기주는 앞서 제작발표회 당시 처음 대본을 보고 매회 피해자들이 보호받는 순간마다 울컥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작품은 처음부터 계속해서 '좋은 어른'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에 진기주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의 정의도 궁금했다. 잠시 숨을 고른 진기주는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어른이 돼가고 있는 서툰 사람들을 넓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신을 전했다.
대학 시절 공대에 진학해 밤새 팀원들과 프로젝트를 하며 학교에서 양치하는 로망을 품었던 소녀는 어느덧 카메라 앞에서 동료들과 치열하게 에너지를 주고받는 배우로 성장했다. 데뷔 후 매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제 '가족'을 넘어 '캐릭터에 대한 갈증'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원동력이 가족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온전히 캐릭터가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머리로는 '이제는 체력을 비축하고 쉬어야 할 시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면 저도 모르게 또 몸을 던지게 돼요.(웃음)"
이러한 망각의 성향 덕분일까. 진기주는 '참교육'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차기작 '슬리핑 닥터'로 또 한 번의 변신을 준비 중이다.
"서로가 서로를 치유해 주는 이야기가 주된 포인트예요. 대본을 보는데 상대방의 대사가 마치 인간 진기주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이번엔 가운을 입은 개원 원장님의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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