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박은빈을 떠올리면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믿고 보는 배우. 너무 자주 쓰여 이제는 익숙한 표현이 됐지만 박은빈은 그 말이 왜 오랜 시간 당연하게 따라왔는지를 납득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넘어 작품과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시청자를 향한 책임감까지. 그가 3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배우 박은빈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원더풀스'(극본 허다중, 연출 유인식)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순간이동 초능력자 은채니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날 박은빈은 노란색 비니와 연두색 체크 셔츠를 착용한 채 취재진 앞에 섰다. 극 중 은채니의 비주얼을 연상케 하는 모습에 이유를 묻자 그는 "'원더풀스' 대본리딩 때 입었던 의상이다. 그동안 완전 정반대인 성격의 차기작을 준비했다 보니 제가 은채니의 모습으로 도움을 받아야 답변을 잘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인터뷰는 보통 작품이 공개된 뒤 진행된다. 특히 '원더풀스'는 촬영 이후 공개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박은빈은 조금이라도 더 은채니답게 이야기하기 위해 스스로 캐릭터의 흔적을 다시 찾아 입었다. 그 작은 디테일만으로도 그가 작품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상 이제 박은빈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대중은 거의 없을 거다. 1996년 아동복 광고 모델로 데뷔한 박은빈은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그 30년의 시간 동안 박은빈은 누구보다 차곡차곡 자신의 연기 세계를 넓혀왔다.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대표작을 하나만 꼽기 어려울 만큼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렇기에 박은빈이라는 배우를 단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배우에게 매 작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박은빈은 늘 다른 선택을 해왔다. 작품마다 말투와 눈빛, 호흡까지 완전히 갈아 끼우며 '박은빈이 연기한다'가 아니라 '그 인물이 존재한다'는 감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느꼈던 건 박은빈은 그 과정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원더풀스'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원더풀스'는 1999년 세기말 우연히 초능력을 가지게 된 동네 모지리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에 맞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초능력 코믹 어드벤처다. 총 8부작으로 지난 15일 전편 공개됐다.
박은빈은 "작품이 시청자분들께 닿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던 만큼 공개가 되고 나서 감사한 분들이 많이 스쳐 지나갔다"며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헌신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보니 공개가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 노트를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은빈은 이번 '원더풀스' 역시 예외가 없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도 직접 캐릭터 노트를 가져왔다. 빼곡히 적힌 글씨, 여러 권으로 나뉜 노트는 그가 이 작품을 얼마나 오래 붙들고 고민했는지를 짐작게 했다. 누군가는 재능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박은빈은 치열한 성실함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이었다.
"초능력물이기도 하지만 은채니가 캐릭터성을 확고하게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의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은채니만의 독창적인 말투와 행동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박은빈이 집중한 은채니의 키워드는 '개차반'이었다. 그는 "뒷모습만 봐도 '개차반'이라는 인상이 확 느껴졌으면 했다"며 "또 말투만 들어도 해성시의 유명한 '개차반'인 은채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배우로서 설득시켜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길이 은채니를 통한다는 부제가 있듯이 은채니를 그런 통로로 만들고 싶었던 게 제 목표였어요. 그래서 만화적인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차반'이라는 키워드는 지켜나가고 싶었죠. 제가 또 어떤 작품에서 '개차반'이라는 별명이 생기겠어요.(웃음) 그 별명만큼은 확고하게 지키고 싶다는 일념으로 연기했죠."
또한 박은빈은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까지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는 "감독님께 제가 '이렇게까지 한다는 얘기는 없었잖아요'라고 장난을 많이 쳤다"고 말하며 웃었다.
"각오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신체를 많이 썼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액션을 이렇게까지 해본 건 처음이다 보니 색다른 경험이라 재밌기도 했어요. 물론 어렵고 힘든 부분도 분명히 있었죠. 초능력이라는 게 안 보이는 걸 보인다고 상상하면서 해야 하다 보니 어려웠어요. 하지만 배우로서 상상력도 많이 발휘했고 완성된 모습을 보니까 뿌듯하고 보람 있더라고요."
유독 텐션을 높여 연기해야 했던 만큼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박은빈은 "다행히 제가 경력을 허투루 먹지는 않았는지 박은빈과 캐릭터를 분리할 수 있는 힘이 확고하게 생겼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제가 비축하고 있는 힘을 캐릭터에다가 끌어다 쓸 때면 박은빈으로서는 절전 모드로 살아가고, 또 이게 끝나면 플러그를 꽂고 충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끝나고 나서도 작품을 잘 마쳐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컸고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기다리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었죠."
아동복 모델로 시작한 박은빈은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실제로 이날 박은빈이 "올해 데뷔 30주년이다"라고 말하자 현장에서는 감탄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은빈은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면서도 "팬분들이 이번 30주년을 되게 의미 있게 생각해 주신다. 그래서 저도 기념비처럼 삼고 싶은 느낌이 있어서 30주년이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도록 올해 하반기를 잘 지내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의외로 담백했다. 박은빈은 "취향에 맞았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안 맞았다면, 다음에 또 다른 캐릭터로 만회를 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한 문장 안에서 박은빈이라는 배우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오롯이 느껴졌다. 데뷔 30주년이 된 지금도 매 작품 캐릭터 노트를 쓰고, 인터뷰 자리에서도 조금 더 진심 어린 답변을 전하기 위해 캐릭터의 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 혹여 작품이 누군가의 취향에 닿지 못했다면 다음 작품으로 다시 설득해 보겠다고도 말한다.
30년의 시간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실함과 책임감, 작품과 캐릭터를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 대중들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결국 지금의 박은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이 오랜 시간 박은빈을 믿고 보는 배우라 부르는 이유이자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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