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모자무싸', 구교환이라는 장르의 '정점'


20년째 영화감독 데뷔 꿈꾸는 황동만 役
허세와 열등감 오가는 입체적 열연

배우 구교환이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로 뛰어난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모습.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구교환이 아닌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는 이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구교환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불안과 열등감, 그리고 애써 아닌 척 버텨냈던 순간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극을 이끌고 있다. 지금의 구교환이 왜 대체 불가한 배우로 불리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모자무싸'다.

구교환은 지난달 18일 첫 방송한 JTBC 토일드라마 '모자무싸'(극본 박해영, 연출 차영훈)에 출연 중이다. 작품은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는 인간이 평화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총 12부작으로 8회까지 방영됐다.

구교환은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꿈꾸는 황동만 역으로 극을 이끌고 있다. 황동만은 문예 창작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 속에 주변 사람들에게 늘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버텨온 시간을 부정당하면서도 "난 내 무가치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릴 거야"라고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황동만은 결코 멋진 사람은 아니다. 친구의 성공을 질투하고 누군가의 영화가 잘되면 배 아파한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들 앞에서 괜히 허세를 부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날 선 말도 쉽게 내뱉는다. 자칫하면 한없이 지질하고 비호감으로 소비될 수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구교환은 그 안에 자리한 불안과 결핍을 촘촘하게 쌓아 올리며 황동만을 단순한 밉상 캐릭터로 남겨두지 않는다.

그래서 황동만은 결코 미워할 수 없다. 분명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 그를 응원하게 된다. 그의 허세와 공격성이 결국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겁이 많은 사람. 구교환은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을 놀라울 만큼 세밀하게 표현해낸다.

구교환은 모자무싸에서 20년째 영화감독을 꿈꾸는 황동만 역으로 섬세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특히 남의 영화가 잘되는 걸 견디지 못해 비난을 쏟아내는 장면에서는 구교환의 연기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준다. 황동만은 쉼 없이 말을 쏟아내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인물이다. 대사량도 많고 리듬감 역시 매우 중요하다. 자칫 과장되거나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구교환은 실제 누군가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잣말을 늘어놓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황동만의 결핍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장면이 집으로 돌아와 폭식하는 신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그 꿈 붙잡고 살 거냐"는 말을 들을 당시에도 황동만은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묵묵히 버티지만 그의 감정 워치에는 '허기'라는 단어가 떠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황동만은 냉장고 문을 열고 정신없이 음식을 꺼내 먹는다. 특별한 대사도 없는 장면이지만 구교환은 거칠게 음식을 먹는 행동만으로 황동만이 얼마나 공허한 사람인지, 또 얼마나 깊은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단순한 배고픔이라기보다 마음속 허기를 채우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특히 영화 제작 지원에서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된 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구교환의 섬세한 표현력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황동만은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고 억지로 웃어 보인다. 얼핏 보면 퇴근길 음악에 취한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울고 싶지만 정말 울어버리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아 애써 웃어보려는 사람에 가깝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빛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린다. 구교환은 그 미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황동만이 어떻게든 버티고자 하는 마음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장면 역시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별한 대사도, 얼굴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클로즈업도 없다. 그저 황동만은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러다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고 외치며 갑자기 몸부림치듯 달리기 시작한다. 결국 중심을 잃고 넘어져 바닥을 구르지만 그 모습마저 처절하다.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고 무가치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인간의 발버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구교환이 열연 중인 모자무싸는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 40분, 일요일 오후 10시 30분 시청자들과 만난다. /방송 화면 캡처

결혼식 장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늘 무시만 당하던 황동만은 톱배우 장미란(한선화 분)이 사촌 동생 결혼식의 축가를 부르러 오며 처음으로 자신의 체면을 세운다. 하지만 구교환은 이를 단순한 통쾌함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울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과 낯선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 굳어버린 자세까지. 기쁨과 슬픔, 어색함과 안도가 한꺼번에 스쳐 지나가는 황동만의 복잡한 감정을 표정만으로 완성해 낸다.

구교환의 진가는 황동만을 특별한 인물이 아닌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무가치함 때문에 괴로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초라해졌던 순간도 있었고 애써 괜찮은 척 버텨본 기억도 있었을 터다. 구교환은 황동만을 통해 시청자들이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구교환이 황동만을 연기한다는 표현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구교환이 아닌 황동만은 상상이 안 간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배우가 캐릭터를 표현하는 단계를 넘어 아예 인물 자체가 돼버린 셈이다.

캐릭터 자체는 충분히 미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인물을 입체적으로 설득해 내는 건 결국 배우의 몫이다. 그리고 구교환은 그 어려운 일을 너무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지금의 구교환이 왜 대체 불가한 배우인지 '모자무싸'가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자무싸'는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 40분, 일요일 오후 10시 30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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