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점점 더 멋없는 힙합…산소호흡기도 떼나


빅나티·미노이, 공감 없는 억지 갈등 조장
'쇼미더머니12'가 살린 불씨에 찬물
영광 잃은 그들만의 리그

빅나티(왼쪽)와 미노이가 최근 각각 스윙스와 우원재를 디스하는 곡을 공개했다. 원색적인 비난으로 채워져 있어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이어뮤직, 더팩트 DB

[더팩트 | 정병근 기자] 2010년대 중후반 호황기를 누렸던 힙합 신이 2020년대 들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억지스러운 갈등의 자리에 진짜 이야기와 치열한 음악성을 채워넣어도 부족할 판에, 누워서 침까지 뱉는 지경이 됐다.

최근 종영한 Mnet '쇼미더머니12'의 번외편 '야차의 세계'에서 래퍼 나우아임영은 치열하게 배틀을 이어가던 중 시종일관 몸을 사리는 한 래퍼에게 "힙합은 멋이야"를 외쳤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나우아임영은 본 무대로 돌아왔고, 이후 펼쳐진 '디스전'에서 김하온은 나우아임영에게 "힙합은 멋? 아니 실력이야"라고 일갈했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뒤에 숨기보다는 떨어지더라도 앞에 나서서 실력을 겨루고, 또 누군가는 모두를 숨죽이게 만드는 압도적인 랩 실력으로 자신의 힙합을 정의하는 그 두 대목은 3년 만에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온 '쇼미더머니12'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다. 각각 누군가를 '디스(Diss)'한 그 장면은 멋도 있었고 실력도 있었다.

힙합 신에서 '디스'는 아티스트 간의 치열한 음악적 증명과 기술적 쾌감을 유발하는 문화다. 국내에선 2013년 늦여름 있었던 '컨트롤 대란'이 대표적이다. 예술가로서 지켜내야 할 태도와 가치관을 두고 벌어진 다툼으로, 래퍼들은 같은 비트 위에 자신만의 은유와 펀치라인으로 싸웠다. 이는 힙합의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기폭제였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쇼미더머니12'에서 두 래퍼의 모습은 사그라지는 힙합 신에 활력을 다시 불어넣을 것만 같았다. 이를 비롯해 방송은 매너리즘을 타파하려는 포맷 변화와 신선한 루키들의 등장으로 화제성이 다시 올라오며 힙합 신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듯했다.

그러나 겨우 다시 살려낸 그 불씨는 몇몇 래퍼의 경솔한 행보로 인해 꺼졌다. 빅나티와 미노이가 각각 스윙스와 우원재를 '디스'하면서다. '디스'는 할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은 음악적인 쾌감도 명분도 없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비트를 채웠다. 두 래퍼가 힙합 신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치명타다.

쇼미더머니12에서 김하온(오른쪽)이 디스전에서 나우아임영에게 힙합은 실력이야라고 외치는 모습. 번외편인 야차의 세계에서 나우아임영이 몸만 사리는 한 래퍼에게 힙합은 멋이야라고 한 모습과 함께 가장 짜릿했던 장면이다. /Mnet 방송 캡처

더군다나 두 래퍼는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젊은 세대에 인기다. 그렇다 보니 자칫 낮은 수준의 이 디스곡이 힙합의 디스 문화를 대변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스윙스가 맞받아치기보다는 침착하게 타이르고, 우원재는 아직 반응을 하지 않으면서 단발성으로 끝나가지만, 이러나 저러나 힙합 신에 마이너스다.

이는 히트곡도 스타도 부재한, 자극적인 이슈가 있어야 주목을 받는 힙합 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2015년 '쇼미더머니4'에서 송민호가 선보인 '겁'은 진솔한 자전적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인 2016년 '쇼미더머니5'에선 비와이가 종교적 신념을 담아낸 'Day Day(데이 데이)'와 'Forever(포에버)'로 음원차트를 석권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이들의 음악은 힙합 신 전체에 대한 주목을 이끌었다.

그러나 점차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과시, 의미 없는 욕설, 특정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복제적 가사가 반복되면서 대중은 점차 힙합에 흥미를 잃었고, 그 결과가 '그들만의 리그'인 지금이다. 음원 차트 최상위권을 당연하다는 듯 휩쓸며 대중음악의 중심에 섰던 영광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그 사이 K팝 아이돌 음악은 정교한 기획력과 보편적인 메시지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고, J팝과 인디 음악 등 다채로운 장르가 부상하며 리스너들의 선택지는 넓어졌다.

공감의 문을 스스로 닫고, 누워서 침을 뱉는 힙합이 설 자리는 매우 좁아 보인다. 자극적인 이슈 몰이로 얄팍한 화제성을 좇는 방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뼈아픈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시기도 이미 지나가고 있다. 대중은 굳이 기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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