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극장에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던 영화 '휴민트'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한 작품의 분위기 반전을 넘어 한국 영화 산업 전반의 유통 구조와 흥행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남기고 있다.
지난 2월 11일 스크린에 걸린 '휴민트'(감독 류승완)는 관객 수 200만 명을 넘지 못하고 개봉 49일 만에 넷플릭스로 향했다. 그리고 영화는 공개 5일 만에 누적 1100만 시청수(총 시청 시간을 작품의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또 한국을 포함해 대만과 싱가포르 등 총 14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고 전 세계 67개국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휴민트'는 '베를린'(2013)과 '모가디슈'(2021)에 이은 류승완 감독의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이자 배우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등으로 탄탄한 캐스팅 라인업을 완성해 제작 단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어 작품은 코로나19 이후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성수기로 여겨지는 설 연휴 극장가에 출격했고, 개봉 첫날 11만 6747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인해 기대보다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하며 아쉬운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먼저 '휴민트'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 이하 '왕사남')의 기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정상을 탈환한 '왕사남'은 입소문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관객들을 불러 모았고, 2년 만에 천만 영화의 탄생을 알린 데 이어 지금도 식지 않는 흥행세로 역대 흥행 영화 2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왕사남'이다.
또한 '휴민트'를 둘러싼 관객들의 뚜렷한 호불호 반응도 한몫했다. 그동안 액션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류 감독의 신작이기에 이에 만족하는 후기도 많았지만, 채선화(신세경 분)를 제외한 여성 캐릭터들의 쓰임을 두고 불편함을 느낀 목소리도 꽤 나왔다. 같은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을 유리관에 가둬놓고 등급을 매긴 장면과 이를 주인공들의 총격 액션신에서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시퀀스가 불호 포인트로 작용한 것.
관객들의 입소문이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즘, '휴민트'는 긍정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했고 손익분기점(400만 명)은 커녕 198만 명에 그치며 극장 동력을 빠르게 잃었다. 그동안 류 감독은 코로나19에도 '밀수'(514만 명)와 '베테랑2'(752만 명)를 흥행시켰기에 이 같은 아쉬운 성적표는 관계자들은 물론 대중에게도 충격을 안겼다.
이후 '휴민트'는 개봉 49일 만인 지난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물론 극장 개봉 영화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IPTV 및 VOD 서비스나 각종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공개되는 건 자연스러운 순서지만, 스크린에 걸려 있는 와중에 빠른 속도로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한 건 다소 이례적이었다.
이와 관련해 배급사 NEW 관계자는 <더팩트>에 "현재 시장 환경에서는 국내 극장 개봉의 뜨거운 열기를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이어가며 수익 파이프라인을 다각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의 자막·더빙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이 한국 영화를 시차 없이 즐기게 함으로써 글로벌 한국 영화 팬덤을 확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적 선택"이라며 "앞으로도 작품별로 가장 적합한 배급 방식을 유연하게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휴민트'는 넷플릭스 공개 5일 만에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반전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더 나아가 작품의 재조명과 함께 뜨거운 화두였던 홀드백(극장에서 상영된 영화가 다른 플랫폼에 유통되기까지 유예 기간을 두는 제도)에도 업계의 이목이 다시금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극장가는 작품이 개봉하고 빠르게 OTT를 통해 공개된다면 극장가로 향하는 관객 수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투자가 위축될 수 있기에 홀드백으로 영화산업 유통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에 힘을 실었다. 이에 반면 제작사와 배급사는 장기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이 빠르게 OTT로 넘어가 손실을 만회하고 추가 수익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영화단체연대회의는 "홀드백은 극장이 오래 상영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적용하고 보호해 주는 룰이 돼야 한다. 영화업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대기업 극장체인의 의견만을 그대로 반영한 임오경 의원실의 영비법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휴민트'가 개봉 49일 만에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하며 흥행 실패 이후의 수순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상당 부분 만회한데 이어 전 세계 관객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새로운 느낌의 흥행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사례가 이례적인 일로 그칠지 전반적인 영화 산업 구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된다.
한편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액션 영화로, 전국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