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내 이름은', 만듦새 대신 '알아야 할 제주의 봄'


이제는 모두가 알아야 할 역사적 참극 
염혜란 열연으로 완성한 시대적 슬픔 

배우 염혜란 주연의 영화 내 이름은이 오는 15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아직도 이름을 정하지 못한 4.3 사건 희생자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은 화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이름을 마주하게 된다. '내 이름은 제작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제작비 후원 등으로 마음을 보탠 이들의 이름이다.

'이름'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이름이 갖는 힘은 엄청나다. 그러나 이름은커녕 '제주 4.3 사건'으로 불리는 것조차 오랜 시간이 걸린 참극이 있다. 1990년대 후반 진상 규명이 시작된 후에도 많은 이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픈 역사 중 하나로만 치부되곤 한다. 그렇기에 '내 이름은'은 비록 잘 만든 영화는 아닐지라도 '꼭 알아야 할 진실'을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빛난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내 이름은'(감독 정지영)은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싶은 18세 아들 영옥(신우빈 분)과 까맣게 잊힌 1949년 제주의 아픈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염혜란 분)의 궤적을 쫓는 작품이다. 평화로운 제주 풍광 이면에 가슴 깊이 묻어뒀던 78년 전의 슬픈 약속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가장 아픈 비밀에서 찬란한 진실로 나아가는 두 세대의 뭉클한 서사를 그린다.

영화는 앞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돼 일찌감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베를린국제영화제 측은 '내 이름은'을 "비극적인 역사가 남긴 트라우마를 세대를 넘어 섬세하게 비추며, 오랜 침묵을 깨는 작업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작품은 '이름'과 '기억'을 매개로 제주의 거대한 아픔을 추적하며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화두를 남긴다.

초반부 영화는 제주를 배경으로 모자 사이라기엔 다소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정순과 영옥을 보여준다. 이내 아홉 살 이전의 기억을 찾기 위한 정순의 모습과 서울에서 전학 온 경태(박지빈 분)로 인해 갈등을 빚는 영옥의 학교생활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영옥과 친구들의 학교 이야기가 다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촌스러운 이름이 콤플렉스인 영옥과 단짝 민수(최준우 분), 그리고 교실의 권력 구조를 뒤흔드는 경태의 갈등은 시대의 폭력을 은유하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서사 전체로 볼 때 다소 늘어지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 내 이름은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내세워 국가적 폭력과 한국의 근현대사가 남긴 상처 등을 조명했다.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그럼에도 정지영 감독이 교차 연출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정 감독은 앞선 기자간담회 당시 "폭력에도 여러 매커니즘이 있겠지만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외부인이 들어와 질서를 다시 잡으려고 할 때 갈등이 시작되고 결국에는 집단 폭력화가 된다"며 "이건 비단 국가 폭력뿐만 아니라 학교나 일반 사회도 마찬가지"라며 4.3 사건이라는 국가적 폭력을 학교 폭력과 같은 선상에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내 이름은'은 비단 4·3 사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순의 가족사를 따라가다 보면 베트남 전쟁 참전 후 두 다리를 잃고 정신적 고통 속에 무너진 남편, 대학 시절 광주에 머물다 5.18 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딸까지 등장한다. 한 가족이 국가라는 거대한 폭력이 남긴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낸 피해자들이며 그들의 삶은 곧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집약한 구조다.

때문에 정순이 기억을 지울 수밖에 없었던 서사가 공개될 때면 '나라면 과연 정순처럼 이름을 지우지 않고 그 끔찍한 기억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비단 이들뿐일까. 현시대에는 정순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채 견디고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처럼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남기며 우리가 누리는 현재가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평화롭고 찬란한 제주의 풍광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1949년 봄의 비극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배우 염혜란과 신예 신우빈이 영화 내 이름은을 통해 모자로 자연스러운 호흡을 맞춰 눈길을 끌었다.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사실 작품의 만듦새 자체를 보자면 투박한 구석이 없지 않다. 영화의 배경을 모른 채 봐도 4.3 사건을 암시하는 장치들이 평면적으로 존재하고 작품 특성상 이렇다 할 반전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순의 상담 의사(김규리 분) 역시 경태의 어머니로도 등장하지만 깊이 있는 서사보다는 정순의 기억을 찾게 하는 기능적 역할에 머문다.

그러나 영화의 여운을 살리는 건 역시 염혜란의 힘이다. 정순을 연기한 염혜란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며 방관자일 수도 있는 인물을 섬세한 연기력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특히 후반부 모든 기억을 찾고 갈대밭에서 오열하는 정순의 모습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세월에 대한 죄책감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서린 통곡을 보여주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기에 염혜란의 정순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 속 혹은 과거의 인물을 바라볼 때 때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즉 정순은 어쩌면 시대가 낳은 가해자이자 방관자, 그리고 피해자를 모두 함축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을 통해 데뷔한 신예 신우빈의 연기력도 준수하다. 경직된 모습이나 다소 어색한 사투리 연기 등이 종종 보이긴 하지만, 엄마 정순과 마주하는 장면들은 실제 모자 사이를 방불케 할 만큼 자연스러운 호흡을 자랑한다. 특히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거나 애정 어린 투닥거림은 신우빈의 꾸밈없는 얼굴을 통해 서툴지만 속 깊은 10대 소년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매년 4월 3일, 고기 한 점조차 편히 먹지 못하며 그날을 기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4.3 사건을 알리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를, 진심 어린 사투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내 이름은'은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13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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