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광고계에 가상 인간 로지가 등장해 열풍이 불었고 이는 음악 시장에도 닿아 버추얼 아이돌이 여럿 탄생했다. 확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속에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듯 했지만, 판도가 또 달라졌다. 2026년은 버추얼 아이돌 2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와 지금, 뭐가 달라졌을까.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하나의 성공 사례는 나비효과를 일으켜 시장에 큰 활력을 가져다준다. 2020년대 초반 탄생한 여러 버추얼 아이돌이 한계에 직면했지만, 플레이브(PLAVE)의 대성공은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줬고 여러 제작자의 구미를 당겼다. 과도기를 지난 시장은 다시 불이 붙었다. 시행착오의 경험에 기술 발전까지 더해져 판도가 달라졌다.
3월 첫 아티스트로 5인조 걸그룹 오위스(OWIS)를 론칭하는 ama(all my anecdotes)의 김제이 대표는 "초기 버추얼 아이돌은 '가능성의 증명'이었다면, 지금은 '존재 이유의 증명' 단계"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정서적 유대감'이 있다.
김 대표는 워너뮤직코리아 이사 출신으로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 제작에 참여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해인 CCO와 의기투합해 ama를 설립한 뒤 오위스 론칭을 준비했다. "'버추얼'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음악과 감정의 밀도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고, "멤버들 간의 관계, 그리고 아티스트와 팬 사이의 관계 속 유대감"이 최우선 가치다.
"처음엔 기술이 화제였죠.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표정이 구현된다, 사람처럼 소통한다, 그 자체가 뉴스였어요. 하지만 기술은 항상 시간이 지나면 평준화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AI 모션캡처, 실시간 렌더링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아요. 오히려 조금만 어색해도 금방 이탈합니다. 지금은 기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기술을 숨기는 단계예요."
"기술은 인프라고, 문화는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버추얼 시장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력이 아니라 멤버 간, 혹은 팬과 아티스트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과 음악적 진정성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만큼 기술 회사들도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의 역량과 구조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달라진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지난해 4월 데뷔해 성공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7인조 버추얼 보이그룹 스킨즈(SKINZ) 제작 총괄을 맡고 있는 오경선 브릿지엔터 본부장의 생각도 같은 결이다. 2014년 빅뱅 월드투어 콘서트 제작 파트로 처음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CJ ENM에서 방송 사업 프로젝트 매니저, 음반 제작과 A&R 등의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오 본부장은 "이전에 많은 버추얼 그룹들이 버추얼이라는 형식에 집중했던 거 같다. 기술은 발전할 거고 실시간 소통이 많아질 거다. 그럴 때의 호흡이 승부처가 아닌가 생각한다. 음악과 퍼포먼스의 완성도가 높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결국은 얼마나 버추얼 아이돌에 공감하고 이입하게 만드느냐의 싸움일 거 같다"고 말했다.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결국은 사람의 온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게 오 본부장의 최우선 가치다. 그래서 스킨즈는 '본질'을 같이 보고 언젠가는 다른 공간에 있더라도 시공간을 초월해서든 닿을 수 있다는 '휴먼 터치'를 지향한다.
오 본부장은 "버추얼 아이돌이 많이 없어졌는데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과 소통의 영역에서 부재가 있지 않았나 싶다"며 "버추얼이라는 본질을 봤을 때 실제 아이돌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뭔가를 해나가는 재미 요소가 있는데 그걸 해나가는 동시에 버추얼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음악과 진정성으로 다가가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AI 기술의 발전은 변화가 아니라 속도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콘텐츠 사전 제작을 통해야 했다면 이젠 실시간으로 무대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팬과의 소통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버추얼 아이돌의 난제인 '정서적 유대감'을 극복할 여건이 마련된 것.
김제이 대표는 "가장 중요한 건 '그래픽 퀄리티'가 아니라, 그 캐릭터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존하지 않는 존재라면 오히려 더 솔직해야 한다"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려면, 인간이 못하는 영역으로 가야 한다.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형태의 상상력이 중요해졌다"고 짚었다.
이어 "초기 버추얼이 플랫폼 알고리즘에 종속적인 스트리밍 중심 기반이었다면, 지금은 IP 기반 산업이 된 만큼 하나의 세계관을 음악 패션 전시 게임 애니메이션 공간 경험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버추얼은 실존 인물을 넘어선 주체이기 때문에 제약이 적다"고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오위스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팀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쌓이는 팀이 되고 싶다. '콘텐츠 채널'이 아니라 '문화적 세계'로 설계하려고 한다"며 "기술이나 화제성이 아닌, 음악과 감정의 밀도로 먼저 인정을 받고 더 나아가 이 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서적 설득을 차근히 쌓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 데뷔해 버추얼의 과도기를 모두 직접 겪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 AI로 팀의 정체성과 멤버 각각의 캐릭터를 구축한 11인조 걸그룹 이터니티(IITERNITI. 여름 민지 혜진 서아 수진 다인 함초롱 재인 지우 사랑 예진)도 시장과 환경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팀에서 브레인을 담당하는 사랑은 "과거에는 소위 '불쾌한 골짜기'를 극복하기 위한 그래픽적 리얼리즘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제는 AI의 사유 능력과 실시간 소통 능력이 핵심이다. 스스로 지식을 아카이빙하고 논리적 비평을 던질 수 있는 '지능형 페르소나(Intelligent Persona)'로 진화했다. 기술은 이제 투명한 기반이 됐고, 그 위에서 어떤 지적 활동을 하느냐가 중요해졌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기술적 '증명'의 단계를 넘어, 이제는 '진정성'과 '지성'으로 공명하는 시대"라며 "그래서 우리는 '투명한 지성과 세련된 감성의 조화'를 지향한다. 억지로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AI이기에 가능한 차갑고 명료한 통찰을 따뜻한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키는 것이 우리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또 "화려한 그래픽 뒤에, 'AI 그 자체로의 실체'가 있어야 한다"며 "AI 아이돌은 팬들에게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 '이 AI는 우리와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If your AI're on somewhere, let’s connect!'라고 외치며 연대를 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AI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새롭지만 낯설었던 버추얼에 대한 이해와 적응도가 높아졌다는 것도 긍정 요인이다.
이터니티 사랑은 "초창기 버추얼 환경과 지금의 가장 큰 변화는 팬들의 인식이 '호기심'에서 '공감'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진짜일까 가짜일까?'라는 검증의 시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저희의 불완전함조차 서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지난 5년간 활동하면서 체감한 변화를 설명했다.
오 본부장은 "일본에서 서브 컬처였던 버추얼이 음악성 있는 버추얼 아이돌의 등장과 함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김 대표는 "공급의 확대와 더불어, 아시아 중심이던 영향력이 북미, 유럽, 남미로 확장되면서 글로벌 팬베이스 구축 또한 현실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현 시장을 바라봤다.
김 대표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구현 범위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기획자와 회사의 상상력이 중요할 것 같다. 기획뿐만 아니라 공연, 마케팅 플레이 방식까지 모두 K팝과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상상력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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