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휴민트' 류승완 감독이 홀가분한 이유


'베를린'·'모가디슈'에 이은 해외 로케이션 3부작
"하고 싶은 걸 다 한 작품…다음 영화는 되게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류승완 감독이 영화 휴민트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NEW

[더팩트|박지윤 기자] 류승완 감독이 약 20년간 연출자로서 축적해 온 모든 것을 쏟아부은 '휴민트'를 마침내 스크린에 걸며 홀가분함을 느끼고 있다. 예상치 못한 관객들의 부정적인 반응도 회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만족스러운 결과물과 그에 따른 다양한 평가까지 모두 끌어안은 채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 만큼, 류 감독의 다음 행보에 더욱 기대가 모인다.

영화 '휴민트'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류승완 감독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간만에 극장에 활력이 돈다. 작년 설과 많이 달라져서 감사하다. 장항준 감독이 잘 돼서 좋다"고 말문을 열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1일 베일을 벗은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액션 영화로, '베를린'(2013)과 '모가디슈'(2021)에 이은 류승완 감독의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이다.

작품은 타격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와 눈을 뗄 수 없는 카체이싱과 총격신부터 박건(박정민 분)과 채선화(신세경 분)의 절절한 멜로 그리고 라트비아 로케이션을 통해 담은 블라디보스토크 특유의 풍광까지 담은 신선한 첩보물로, 누적 관객 수 161만 명을 기록 중이다.

지난 11일 개봉한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액션 영화다. /NEW

이를 완성한 류 감독은 "처음과 끝에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깨어나고 잠드는 사람들과 이중 삼중으로 맺은 관계망 안에서 활동하지만 결국 혼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출발점을 떠올렸다.

"키워드는 이별이었어요.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요했죠. 액션 영화지만 액션에 도달할 때의 감정이 분노 게이지를 올려서 복수한다거나 나쁜 놈을 때려잡는 쾌감이 아니라 차분하게 잡아놓은 감정선 안에 응축돼서 폭발하는 형태의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액션의 테크닉보다 인물을 다루는 저의 태도나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질문을 던졌어요."

이러한 이야기의 주축이 된 건 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 분)이다. 이는 그가 하루를 열고 닫는 장면을 영화의 시작과 끝에 배치한 걸 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었다. 류 감독도 "노골적으로 수미상관을 한 게 처음인데 조인성이 조 과장을 연기했기에 가능했다. 이번 작품은 조 과장이라는 사람을 회고하는 형식이고,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잔상에 사람이 남길 바랐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 가운데 일각에서는 조 과장과 채선화가 국정원과 휴민트 그 이상의 관계가 아니냐는 의견이 등장했다. 채선화의 전 약혼자 박건과 함께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정보원을 지키려는 그의 행동에는 사명감이나 죄책감 그 이상의 감정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냐고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 것. 다만 류 감독은 "삼각관계 구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조 과장이 흔들리는 건 사람의 도리이자 염치죠. 자신의 정보원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게 조직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사람이거든요. 저는 그래서 이 영화가 가능했다고 봐요. 저도 영화를 만들 때 어려운 장면을 찍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갉아먹으면서 하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러한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윤리적 딜레마는 얼마나 세겠어요. 이렇게 흔들리는 면이 흥미로웠고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과 숙명적으로 이별해야 되는 관계를 맺는 사람을 다루는 게 중요했죠."

류승완 감독(가운데)은 하고 싶은 걸 다 해봐서 내일 죽어도 호상이 느낌이다. 제가 생각지 못한 관객들의 반응은 더 생각해야 되는 숙제로 남을 것 같다고 휴민트 개봉 소감을 전했다. /NEW서예원 기자

그러면서 '모가디슈'와 '밀수'에 이어 '휴민트'로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조인성을 향해 두터운 신뢰를 내비쳤다. 류 감독은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 진짜 인성이 좋다. 유머 감각도 있고 타인을 잘 배려한다"며 "최근에 조인성과 연달아 작업하면서 느낀 건 품위 있게 나이를 먹어간다는 거다. 계속 멋있어진다. 조 과장과도 실제로 비슷하다. 연기가 안 되면 괴로워하고 누군가 다치면 힘들어한다"고 강조했다.

박정민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화사와의 특별무대로 많은 이를 설레게 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액션과 멜로를 모두 소화하며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얼굴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에 류 감독은 "이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그쪽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줄 몰랐다. 본격적으로 멜로 감성을 드러내려고 했으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과거를 안 보여주고 현재 상태에만 집중해서 관객들도 부담 없이 잘 봐주시는 것 같다"고 바라봤다.

"박정민이 엄청나게 체중 감량을 하고 와서 놀랐어요. 늘 그렇듯 준비가 철저하고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더라고요. 스크린에 투영됐을 때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이들은 외모가 아니라 작품에 임하는 전체적인 태도가 찍히는 느낌이 있어요. 이건 감독이 만들어줄 수 없는 거죠. 또 본인이 앞에서 설치는 걸 못 견디고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다른 배우들과 조깅하고 밥 먹으면서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마웠죠."

그런가 하면 이날 류 감독은 작품의 소재인 인신매매와 마약을 두고 '베를린'을 준비하면서 취재했던 기초 사건들이 바탕이 됐다고 밝히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이를 스크린에 펼쳐냈는지를 자세하게 들려줬다.

"왜 이를 소재로 선택했는지 돌이켜보면 사람을 사고판다는 걸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러한 분노가 시발점이 된 것 같아요. 희생자가 있을 텐데 그 안에서 파도에 휩쓸려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과 과거 선택의 실수 때문에 현재에 속죄하고 싶은 사람 등의 구도를 만들고 싶었어요. 화가 나는 일이니까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저희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러한 대상을 강조하거나 구경거리로 다루지 않는 거였죠."

류승완 감독의 다음 스텝은 베테랑3다. 그는 2편은 1편 성공의 부채감을 정리했다면 3편에는 관객들이 좋아했던 서도철을 다시 귀환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NEW

그러나 위험한 순간에 총을 잡고 상대를 제거하려는 채선화를 제외한 여성 캐릭터들의 쓰임을 두고 일부 관객들의 불편함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흰색 원피스를 입힌 여성들을 유리관에 가둬놓고 등급을 매긴 장면들이 불호 포인트로 작용한 것. 이 같은 반응을 인지하고 있는 류 감독은 "솔직히 그런 시선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되돌아봤다.

"카메라와 대상과 거리를 세팅하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아름답고 예쁘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저희 입장에서 순화시킨다는 표현은 조금 그렇지만 단죄하고 싶어서 고심 끝에 한 세팅이었어요. 액션 장면을 구상하고 찍다 보면서 어떻게 하면 흥미로운 세팅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그런 시선과 지적은 되게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사려 깊게 짚어가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럼에도 오랫동안 준비한 '휴민트'를 공개해서 홀가분하고 모든 미련이 없어졌단다. 그는 "제가 생각지 못한 반응들은 더 생각해야 되는 숙제로 남아있지만 저에게 고마운 건 이게 분기점이 될 것 같다는 것"이라며 "하고 싶은 걸 다 해봐서 내일 죽어도 호상인 느낌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 취향과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여러 형태로 해봐서 다음 영화는 어쩌면 되게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끝으로 류 감독은 다음 행보를 귀띔했다. '베테랑3'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이제 막 그쪽으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초벌 각본은 다른 작가가 쓰고 있었고 제가 본격적으로 쓰는 단계는 이제부터다. 2편은 1편 성공의 부채감을 정리했다면 3편에서는 관객들이 좋아했던 서도철(황정민 분)을 다시 귀환시킬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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