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려웠지만 결국 다시 용기를 냈다. 배우 김세정이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를 마주한 방식이었다. 첫 사극, 그리고 한 작품 안에서 세 인물을 오가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세정은 물러서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했고 그 결과는 한층 확장된 연기로 이어졌다.
배우 김세정이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MBC 금토드라마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극본 조승희, 연출 이동현)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박달이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는 웃음을 잃은 세자 이강(강태오 분)과 기억을 잃은 부보상(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박달이의 영혼 체인지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판타지 사극 드라마다. 총 14부작으로 지난 20일 종영했다.
작품은 1회 시청률 3.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출발해 6.8%로 종영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세정은 "저한테는 너무 뜻깊었던 드라마 중 하나여서 많이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하다"며 "30대의 시작을 열어준 작품으로 제 30대를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를 작품이 아닐까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늘 숙제였어요. 이질감 없이 연기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마침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라는 좋은 작품을 만난 것 같아요. 30대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연기의 출발선을 밟아보고 싶었는데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김세정은 부보상 박달이, 세자빈 강연월, 세자와 영혼이 뒤바뀐 달이까지 전혀 다른 결의 세 인물을 오가며 매 회차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김세정은 "처음에는 너무 걱정되고 부담이 돼서 도망쳐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며 '사실 어려운 일도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지 않냐. 하기 직전이 제일 무서운 것 같다"고 털어놨다.
"세 캐릭터를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다가 각 인물의 삶에서 출발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연월이는 부잣집에서 자란 인물이라 온화하고 기품은 있지만 목소리를 크게 내봤을 것 같지는 않아 곱고 단아한 톤을 많이 섞었죠. 박달이는 소리도 많이 지르고 다닐 것 같아 강단 있고 멀리 뻗어나가는 목소리를 준비했고 강이 역할을 할 때는 태오 오빠와 녹음 파일을 주고받으며 세 가지 목소리를 정리했어요."
세 캐릭터 중 가장 어려웠던 인물은 연월이의 기억이 돌아온 달이였다. 김세정은 "어느 감정에 중점을 둬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도 저도 아닌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사투리도 표준어도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정리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가장 짧게 연기했음에도 연월이한테 애정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연월이를 생각하면 애틋해요. 제가 그동안 작품을 했을 때 과거 서사가 있는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처음 만나서 서사를 같이 쌓아가는 게 아니라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보니까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이 김세정에게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혼이 바뀐 인물까지 연기해야 했던 만큼 부담감도 컸다. 김세정은 영혼이 바뀐 연기를 경험한 선배 하지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부담이 너무 커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예전에 하지원 선배님하고 예능을 한 적이 있어서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는데 너무 흔쾌히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때 선배님한테 '남자와 여자의 영혼이 바뀌는 드라마를 들어가게 됐다'고 말씀드렸는데 선배님이 더 신나서 많이 알려주셨어요. 서로 대본을 바꿔 읽어보고 상대 배우의 습관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또 부담 갖지 말고 더 많이 표현해도 된다고 해주셔서 그 부분에 집중해서 연기했어요."
그렇지만 다른 작품을 참고해 연기를 준비하지는 않았단다. 김세정은 "연기 스터디에서 선배님들이 '사극이어도 말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톤에 갇히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 조언을 듣고 사극 톤을 준비하되 말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사투리를 쓰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는데 가수를 겸업하다 보니 발성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사극은 발성이 중요한 장르인데 그 부분만큼은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지금의 톤을 만들 수 있던 것 같아요."
세 인물을 연기하며 캐릭터와 닮았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을까. 김세정은 "저는 캐릭터와 저를 닮게 만들어가는 편인 것 같다"며 "인물을 표현할 때 최대한 저로서 생각을 많이 한다. 이번 캐릭터도 저와 닮은 부분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정말 큰 도전이었던 만큼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 덕분에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제는 정말 새로운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또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고 그 마음이 많은 분들에게 와닿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김세정 하면 가장 많이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긍정'과 '밝은 에너지'다. 인터뷰 자리에서도 김세정의 그런 씩씩하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김세정은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고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힘들었던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니죠. 그때 깨달은 건 자기 아픔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었어요. 어린 시절의 아픔을 돌아봐야 진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항상 제 아픔을 돌아보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때로는 나도 모르게 방어 기제로 '괜찮은데?'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럴수록 쉬어야 한다는 판단을 빨리 내려야 해요. 무엇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만 듣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상처가 되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디에든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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