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강태오는 서두르지 않는 배우다. 한 번의 성공보다 다음 얼굴을 고민하고 익숙한 선택보다 새로운 길을 택해왔다.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도 그 선택의 결과였다. 강태오는 이번 작품에서 인물을 단순히 연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내면을 끝까지 파고들려 했다. 그 고민의 시간이 강태오가 좋은 배우가 됐다는 것을 증명했다.
배우 강태오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MBC 금토드라마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극본 조승희, 연출 이동현)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왕세자 이강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는 웃음을 잃은 세자 이강과 기억을 잃은 부보상(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박달이(김세정 분)의 영혼 체인지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판타지 사극 드라마다. 총 14부작으로 지난 20일 종영했다.
작품은 1회 시청률 3.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출발해 6.8%로 종영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강태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는 사극인 만큼 한국적인 미를 많이 보여줄 수 있어 그 부분에서도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번 작품은 강태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2019년 방영된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 이후 6년 만에 도전한 사극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태오는 '런 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감자연구소' 등 현대극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다. 그는 "사극을 '녹두전' 이후 6년 만에 하다 보니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팬분들이 '녹두전' 속 율무를 많이 기억해 주셔서 기대도 크셨을 텐데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어요. 그래서 유튜브에서 율무 영상 모음집을 찾아보며 '아 내가 이때 이런 톤을 썼구나' 하고 참고했죠. 율무와는 다른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참고는 많이 했어요."
강태오가 연기한 이강은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깊은 상처를 안고 복수를 준비하는 인물이다. 빈궁과 똑 닮은 박달이를 만나며 흔들리는 감정을 경험하고, 이내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후 달이와 몸이 바뀌는 사건을 겪으며 혼란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깨닫고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다소 복잡한 설정이기 때문에 '녹두전'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이 더 어려웠다고. 강태오는 "연기해야 할 인물이 강이도 있고 달이도 있다 보니 두 사람의 서사를 모두 깊이 이해해야 했다"며 "연기는 혼자 표현하는 작업이지만 서로 합의된 지점이 있어야 해서 정말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세정 씨와 피드백을 정말 많이 주고받았어요. 제 생각을 세정 씨에게 전달하고 세정 씨의 생각을 제가 이해해야 했죠. 혼자 준비하는 시간도 중요했지만 둘이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았어요. 떨어져 있을 때도 통화나 문자로 '이 부분 한 번 읽어줄 수 있어?'라고 부탁하곤 했죠. 톤을 카피해야 하는 장면도 많았거든요. 촬영하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고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기 과정에서 혼란을 겪은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집중해도 가끔 강이를 연기해야 하는 장면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와 NG가 난 적도 있었다"며 "시청자분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세정 씨와 서로 연기에 대해 평가해 주고 현장에서 계속 조율했어요. 근데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달이 몸에 들어온 상태를 연기하는 게 오히려 편해지더라고요. 강이는 감정적으로 격한 장면이 많은데 달이로 연기하는 장면에는 재밌는 요소도 많았거든요. 감독님께도 그 연기가 더 편하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어요.(웃음)"
특히 초반에는 '따라 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강태오는 "가수들이 노래를 녹음할 때 박자를 익히듯이 세정 씨에게 대사를 녹음해 달라고 부탁해 계속 들으며 따라 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사투리를 쓰는 게 아니라 세정 씨가 사용하는 화법의 사투리를 그대로 가져와야 했어요. 그래서 세정 씨가 사용하는 충청도 사투리를 계속 듣고 따라 하면서 악센트와 리듬을 익히려고 노력했죠.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촬영 일정이 워낙 바빠서 초반에 학습한 걸 토대로 '내가 세정이라면 이렇게 하겠지'라는 상상력으로 접근했어요."
단순히 영혼만 바뀌는 것이 아닌 강태오는 캐릭터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특히 달이의 정체를 알게 된 후 억눌러왔던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절절한 감정 연기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강태오는 "처음에 대본을 보고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정말 너무 슬퍼서 많이 울었다"고 떠올렸다.
"어떤 표정이나 기술적인 걸 떠나서 그저 한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근데 대본을 계속 보다 보니 오히려 감정이 무뎌지는 거예요. 촬영 당일 감정이 안 올라오면 어떡하나 부담도 커졌고요. 그래서 전날 슬픈 노래를 계속 듣고 리허설 때도 혼자 시간을 보내며 감정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세정 씨의 표정을 보는 순간 다시 감정이 복받쳐 올랐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통해 강태오는 사극으로 또 한 번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그를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은 2022년 방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그는 극 중 이준호 역을 맡아 "섭섭한데요"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인기 상승세 속 입대해 공백기를 맞았지만 강태오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회사에서는 아쉬워했지만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군대를 다녀왔다"며 "전역 후에도 작품이 끊이지 않고 '감자연구소'와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를 연달아 보여드릴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역 후에는 '우영우'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감자연구소'라는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를 선택했고 6년 만의 사극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했죠. 앞으로는 어두운 딥한 멜로나 아직 해보지 못한 장르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저 스스로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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