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정병근 기자] 고(故) 이순재만큼 뜨겁게 연기 열정을 불태운 배우가 있었을까. '직진 순재'는 열정과 방향성을, '야동 순재'는 그의 도전과 다양성을 함축하는 수식어다.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원로 배우 이순재가 25일 새벽 향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출연한 KBS2 드라마 '개소리'로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는 젊은 시절에도 빛났지만 우직하게 내딛은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더 찬란하게 꽃피운 배우였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줬다.
이순재는 지난해 대상을 수상한 후 "제 기억으로 KBS가 대한민국 방송의 역사를 시작한 해가 1961년도다.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를 시작한 곳에서 첫 작품을 했지만 이후 TBC로 건너갔다가 1980년도에 돌아왔다. 이후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늘 준비하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의 연기 인생은 KBS의 역사보다 긴 1956년 시작됐다. 그의 출연작은 드라마와 영화를 아우르고 수백 편에 이르러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연극 '지평선 너머'로 배우로 데뷔한 그는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섰고 지난해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 전까지('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 시들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순재는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갔다. 칠순의 나이던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해 근엄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코믹한 이미지로 전 국민의 친근한 할아버지가 됐다. 당시 얻은 '야동 순재' 캐릭터는 그의 도전과 변신 그리고 열정과 의지를 잘 보여준다.
칠순도 한참 지난 2013년 출연한 tvN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쉼없이 배우고 정진하며 나아갔는지 삶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낯선 언어의 메뉴판을 하나, 명소의 간판을 하나 보더라도 무슨 내용인지 오랫동안 관찰하고, 힘이 들 게 분명한데도 더 많은 곳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걸었다. 그래서 얻은 수식어가 '직진 순재'다.
그러한 삶의 자세는 '개소리' 때도 빛났다. 촬영을 위해 거제까지 20회 이상 4시간 30분씩 차로 이동했다. 청춘들도 하기 버거운 여정을 아흔의 배우가 해냈다.
이순재는 대상 수상 소감에서 "아직까지도 가천대학교 석사 교수로 13년째 근무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개소리' 촬영을 위해 거제를 오가 시간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학생들이 '걱정마세요'라더라. 눈물이 나왔다", "결국은 결론을 냈고 어려움을 극복했다. 늦은 시간까지 격려해준 시청자 여러분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이순재는 2000년대 들어 공로상을 두루 받았다. 그러면서도 2007년 MBC 연예대상 대상, 연기대상 황금연기상, 2011년 제20회 금계백화장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단순히 오래 한 배우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숨쉬는 최고의 배우임을 증명한 것. 그 정점이 KBS 대상이다.
이순재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 배우'로 빛났고 모든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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