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현정 기자] K팝이 드디어 '그래미 제네럴 필드'에 입성했다.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는 전미 레코딩 예술과학 아카데미는 7일(현지 시각)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의 각 부문 후보를 발표했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역시 '제네럴 필드'로 통칭하는 6개 부문의 본상이다. 로제의 'APT.(아파트)'가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와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후보에 오른 것을 비롯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Golden(골든)'이 '올해의 노래'에 하이브의 미국 현지화 그룹 캣츠아이(KATSEYE)가 '베스트 신인(Best New Artist)'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K팝으로 분류되는 곡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2023년 방탄소년단이 영국의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의 앨범 'Music of the Spheres(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의 피처링 아티스트 자격으로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후보에 오른 적이 있으나, K팝 가수가 자신의 곡으로 '제네럴 필드'에 해당하는 6개 부문의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그래미 어워즈의 '제네럴 필드'에 오른 것은 수상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도 가요계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사건이다. 1959년 시작된 그래미 어워즈는 미국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수상 기준으로도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그래미 어워즈의 후보 선정과 수상자 결정은 지극히 까다롭고 폐쇄적이다. 그래미의 후보선정과 수상자 결정은 약 1만 5000여명 내외로 추정되는 심사위원의 투표를 통해 후보자가 선정되며 그렇게 선정된 후보는 다시 최종 투표를 거쳐 수상자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 후보자와 수상자 선정에 권한이 있는 심사위원은 백인 남성 위주로 구성돼 백인 남성, 영어권 음악, 컨트리 장르에 해당하는 아티스트가 유독 선호되고 힙합이나 메탈 등의 장르와 흑인, 여성 등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이어졌다.
심지어 과거에는 후보 선정 과정에 '재심사 위원회'가 존재해 후보 선정 결과를 임의로 바꾸기도 했으나 후술할 '위켄드(Weekend) 패싱 논란'으로 이 과정은 사라졌다.
이러한 폐쇄성과 보수성으로 인해 미국 래퍼 에미넴(EMINEM) 등은 그래미 어워즈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으나 그래미 어워즈의 보수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런 와중 그래미 어워즈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사건이 바로 '위켄드 패싱 논란'이다.
위켄드가 2020년 발매한 네 번째 정규 앨범 'After Hours(애프터 아워즈)'니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수상은 커녕 후보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해당 앨범의 수록곡 'Blinding Lights(블라인딩 라이츠)'는 2021년 '빌보드 올타임 HOT 100 차트' 1위에 오르며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노래로 공인 받기도 해 그래미 어워즈의 위켄드 패싱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왔다.
해당 논란으로 인해 2021년 제63회 그래미 어워즈는 역사상 최악의 시상식이라는 오명과 함께 역대 최저 시청률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위켄드 패싱 논란'으로 그 위상에 큰 상처를 받은 그래미는 부랴부랴 재심사 위원회를 삭제하고 여성과 다양한 인종 위주로 구성된 2710명의 새로운 전문가를 신입 회원으로 위촉하는 등의 후속 조치에 나섰다.
그 결과 2022년 제64회 그래미 어워즈는 실크소닉(Silk Sonic)이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상을,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가 베스트 신인을 수상하며 오랜만에 백인이 아닌 아티스트가 제네럴 필드를 휩쓰는 결과가 나왔으나 한 번 고꾸라진 시청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특히 보수적이고 올드한 시상식이라는 이미지는 젊은 층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어 그래미 어워즈의 고민은 깊어지는 중이다.
이에 그래미 어워즈가 젊은 층에 인기 있는 K팝을 끌어 안아 새로운 시청자 확보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이미지의 희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사실 빌보드 뮤직 어워즈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등 미국 주류 시상식에서 K팝을 끌어 안은 것은 오래된 일"이라며 "'APT.'와 'Golden' 의 히트를 계기로 그래미 어워즈도 뒤늦게 이런 흐름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임 평론가는 "그래미 어워즈도 젊은 층의 외면과 시청률 하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K팝도 그렇고 아프로 계열 등 그래미 어워즈가 젊은 층에 인기 있는 음악과 장르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측면도 있어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그는 "그래미 어워즈가 '위켄드 패싱 논란' 이후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투표인단을 대폭 늘렸고 투표 권한이 있는 회원 중에는 한국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K팝의 '제네럴 필드' 후보는) 그래미 어워즈 특유의 보수성과 퍠쇄성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