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정려원, '하얀 차를 탄 여자'로 얻은 용기


사건의 중심에 선 주인공 도경 役 맡아 스릴러 도전
"내려놓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해준 작품…해방감을 느꼈다"

배우 정려원이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정려원의 연기 차력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 등장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그는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안겨 준 '하얀 차를 탄 여자'로 관객들에게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정려원은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감독 고혜진) 개봉 전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났다. 영화 관련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처음이라는 그는 약 한 시간 동안 설렘을 가득 머금은 채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초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단막극으로 기획됐으나 'TV와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다'라는 테마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해 2관왕을 차지했다. 또 제22회 샌디에고 국제영화제에서 BEST INTERNATIONAL FEATURE(베스트 인터내셔널 피쳐)를 받았고 제66회 BFI 런던영화제 스릴 부문에도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단막극이 아닌 극장 개봉 영화가 되면서 '게이트'(2018) 이후 7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정려원이다. 이에 그는 "저희끼리 찍으면서 '영화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긴 했는데 영화로 개봉한다고 해서 놀랐다"며 "2부작이 영화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신기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려원은 피투성이가 된 언니를 싣고 병원에 나타나며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도경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지난달 29일 개봉한 '하얀 차를 탄 여자'는 피투성이 언니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정려원 분)이 경찰 현주(이정은 분)에게 혼란스러운 진술을 하면서 모두가 다르게 기억하는 범인과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그린 작품으로, 드라마 '검사내전' '로스쿨' 등의 조연출을 맡았던 고혜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정려원과 고혜진 감독의 인연은 2019년 첫 방송된 '검사내전'에서 시작됐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비슷한 취향 덕분에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고.

"고 감독이 넉살과 수완이 좋아요. 모든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있고 이 친구가 한 번 귓속말하면 배우의 연기가 좋아지더라고요. 타인을 존중할 줄 알고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끌고 가는 타입이었달까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선배님께 칭찬과 이쁨을 많이 받았죠."

이후 고 감독의 데뷔작에 출연하겠다고 약속한 정려원이다. 물론 '무조건 글이 좋아야 된다'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말이다. 그는 "글이 힘들면 오래 못 볼 수도 있지 않나. 대본을 보고 '고생길이 열렸구나' 싶었지만 너무 재밌어서 해봄 직했다. 일한다기보다 친한 사람끼리 '하나 만들어볼까?'라는 느낌이었다. 재밌으니까 이것저것 다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정려원은 이번 작품을 통해 호흡을 맞춘 이정은에 관해 삶의 태도가 아름다운 찐 어른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도 이분의 사고방식으로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그렇게 정려원은 피투성이가 된 언니를 싣고 병원에 나타나며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자 불완전한 기억을 안고 사건의 중심에 선 도경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목격자인 동시에 피의자로 몰릴 수밖에 없는 캐릭터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각기 다른 시각으로 세 번씩 비트는 만큼, 인물의 시선에 따라 여러 버전으로 설명되는 사건 안에서 새롭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정려원이다.

특히 그는 상처투성이인 얼굴과 맨발을 하고 불안에 떠는가 하면, 버석한 얼굴과 초점을 잃은 시선을 한 채 쉽게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눈물을 흘리며 극의 미스터리함을 배가시킨다. 그렇게 정려원은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얼굴을 성공적으로 꺼냈다.

2022년 2월, 코로나19가 극심했을 때 14회차 만에 완성된 작품인 만큼, 철저한 계산 끝에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정려원은 의도적인 접근이나 철저한 계산보다는 처한 상황에 몸을 맡기며 자연스럽게 그려냈다고.

"세 번씩 연기하는 게 괜찮으면서도 자기 의심을 했어요.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어 나가기 힘든 구조니까요. 그러다가 제가 저를 더 믿어야겠더라고요. 첫 촬영이 벽을 두들기면서 언니를 찾는 장면이었는데 힘든 신을 찍고 나니까 뼈대가 생기면서 캐릭터를 구축하기 쉬웠어요. 또 남들보다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대본을 보면서 울면 현장에서도 눈물이 잘 나요. 좋은 글은 상황에 몰입만 하면 되더라고요. 오히려 과할까 봐 걱정했죠."

정려원은 하얀 차를 탄 여자에 관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그렇다면 첫 스릴러 도전은 어땠을까. 정려원은 "해보지 않은 거다 보니까 레퍼런스를 만드는 게 힘들었다. 전문직은 한 번 해봤으니까 다음에 할 때 수월한데 제 안에 없는 걸 형상화시킬 때 설득되지 않으면 끝나는 게임이라 모 아니면 도였다"며 "'이게 될까?' 싶었지만 하면서 재밌었고 점점 확신을 얻었다. 서로 예뻐해 주는 현장이었는데 이게 흔치 않다는 걸 아니까 재밌게 불사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만난 이정은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정려원은 "삶의 태도가 아름다운 찐 어른이셨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도 이분의 사고방식으로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호기심도 많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신다. 후배들과도 격없이 잘 지내고 선배들이랑도 잘 지내신다. 이번에 '경주기행'을 같이 찍은 공효진과 이연이 왔는데 정말 언니를 어려워하지 않더라"고 무한한 존경심을 표했다.

"저도 하모니를 중시해요. 연기의 원동력은 화목한 현장이고요. 그래야 일의 효율이 굉장히 올라가고 그 에너지가 스크린에도 담기니까요."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모두가 의기투합해 성공적으로 끝냈기에 더욱 값진 결과물을 얻은 정려원이다. 그는 '하얀 차를 탄 여자'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준 작품"이라고 되새기며 "그동안 안 내려놨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이번에 하다 보니까 밑에서 찍은 샷이 많더라. 그걸 보면서 '은연중에 내려놓지 못한 게 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해방감이 있다. 이제 내가 모니터에 어떻게 잡히는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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