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정려원·이정은, 연기 차력쇼로 빚어낸 '하얀 차를 탄 여자'


여성 간의 연 녹인 밀도 높은 스릴러물의 등장

29일 개봉한 하얀 차를 탄 여자는 피투성이 언니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이 경찰 현주에게 혼란스러운 진술을 하면서 모두가 다르게 기억하는 범인과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그린 작품이다. /㈜바이포엠스튜디오

[더팩트|박지윤 기자] 서로 모순되는 증언들이 쏟아지면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독창적인 구조 안에 여성 간의 유대와 배우들의 눈을 뗄 수 없는 열연이 더해진 밀도 높은 스릴러물이 등장했다. 사건이 일어난 밤의 진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질문과 여운을 동시에 남기는 '하얀 차를 탄 여자'다.

지난달 29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감독 고혜진)는 피투성이 언니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정려원 분)이 경찰 현주(이정은 분)에게 혼란스러운 진술을 하면서 모두가 다르게 기억하는 범인과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그린다.

작품은 폭설이 휘몰아친 새벽, 흉기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은서(김정민 분)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이 "살려주세요"라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상처투성이인 얼굴과 맨발을 하고 수술실 앞에서 불안에 떨던 그는 현장에 도착한 현주에게 칼에 찔린 사람은 친언니 미경이고, 자신에게 결혼할 남자라고 소개한 연인 정만(강정우 분)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설명한다.

정려원(위쪽)은 피투성이가 된 언니를 싣고 병원에 나타나며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도경 역을, 이정은은 사건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는 경찰 현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바이포엠스튜디오

하지만 현주는 어딘가 모르게 계속 불안해 보이는 도경의 혼란스러운 진술을 들으면서 감춰진 진실을 직감하고 이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도경이 조현병 진단을 받았던 점과 그의 언니 미경(장진희 분)은 칼에 찔린 인물이 아니고 병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였다는 걸 알게 된다.

이와 함께 미경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고 정만은 헤어진 연인을 감금한 전과가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다. 이 가운데 수술을 마치고 깨어난 은서는 "범인을 봤다"고 말문을 열며 수상할 정도로 도경과 다르면서도 딱 맞아떨어지는 진술을 해 경찰들을 더욱 혼란에 빠트린다.

네 명의 인물이 얽히고설켰으나 두 명은 어딘가 모르게 의심스러운 진술을 하고 다른 두 명의 행방은 묘연하다. 눈 속에 증거가 사라진 그날 밤, 모두가 다르게 기억하는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범인의 정체는 누구일까.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드라마 '검사내전' '로스쿨',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등의 조연출을 맡았던 고혜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당초 2부작 단막극으로 기획됐지만 영화의 형태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 작품이다.

메가폰을 잡은 고 감독은 하나의 사건을 각기 다른 시각으로 세 번씩 그려내는데, 다르게 구성한 화면 비율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매끄럽게 오가며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러면서 처음 접한 정보가 이후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함께 저마다의 아픔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이를 숨기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며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여성 서사도 밀도 있게 그려낸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당초 2부작 단막극으로 기획됐지만 영화의 형태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 작품이다. /㈜바이포엠스튜디오

다만 스릴러물을 꽤나 본 관객들이라면 숨겨진 진실의 존재 자체를 쉽게 눈치챌 수 있는 만큼, 이에 도달하기까지 전개되는 사건을 둘러싼 과도한 설명은 보는 이에 따라 집중력과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듯하다.

신선한 초반 전개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각으로 비트는 세 번의 재구성이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상세하게 풀이되며 관객들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 인물의 모호한 표정과 의미심장한 대사, 장면의 디테일에 집중할 필요 없이 범인을 잘 알려주는 것.

이러한 아쉬움을 채우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불완전한 기억을 안고 사건의 중심에 선 도경으로 분한 정려원은 목격자인 동시에 피의자로 몰릴 수밖에 없는 인물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또한 그는 버석한 얼굴로 다양한 감정이 담긴 눈물을 끊임없이 쏟아내다가도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미스터리함을 배가시킨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조명한 사건 안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롭고도 다채로운 얼굴을 꺼내며 짙은 여운과 잔상을 남긴다.

사건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는 경찰 현주로 분한 이정은은 이번에도 믿고 보는 연기로 극을 힘 있게 이끌며 관객들의 눈과 귀가 된다. 여기에 김정민 강정우 장진희 등은 신선한 마스크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앞서 작품은 제22회 샌디에고 국제영화제에서 BEST INTERNATIONAL FEATURE(베스트 인터내셔널 피쳐)를 수상했고 제66회 BFI 런던영화제 스릴 부문에도 공식 초청됐다. 또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과 코리안 판타스틱 배우상(정려원)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개봉 전부터 작품성과 배우들의 연기력을 인정받은 작품이 일본 영화가 남다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지금의 박스오피스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08분이다.

jiyoon-1031@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