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명주 기자] 레전드는 레전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열연하며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배우 고현정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또 한 번 증명하고 있다. 그는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캐릭터의 섬뜩한 아우라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안방극장에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다.
고현정은 지난 5일 첫 방송한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극본 이영종, 연출 변영주, 이하 '사마귀')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사마귀'는 잔혹한 연쇄살인마 사마귀가 잡힌 지 약 20년이 지나 모방범죄가 발생하면서 시작되는 고밀도 범죄 스릴러다. 프랑스 드라마 '사마귀(La Mante)'가 원작인 작품은 사건 해결에 나선 형사가 평생 증오한 사마귀인 엄마와 예상 못 한 공조 수사를 펼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현재 2회까지 방영됐다.
고현정은 극 중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수가 된 정이신 역을 맡았다. 정이신은 약 20년 전 다섯 명의 남자를 잔혹하게 살해해 사마귀라고 불리게 된 인물이다. 사마귀는 암컷이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곤충으로 알려졌는데 정이신은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했거나 아동 학대 가해자로 의심받았던 남성들을 죽이면서 사마귀라고 불리게 됐다.
작품 속 정이신은 과거 자신의 살인을 자백한 대가로 교도소 독방에서 음악을 듣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특별하게 지냈으나 세간에는 수감 생활을 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사마귀를 모방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강력범죄수사대 계장 최중호(조성하 분)는 범인을 잡기 위해 정의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교도소 밖에서 아들 차수열(장동윤 분)을 통해서만 이야기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정이신은 23년 만에 아들과 대면했다. 그는 차수열에게 결혼과 아이 여부를 물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가도 살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차수열을 향해 "피 냄새? 난 좋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나던 냄새잖니?"라고 도발했다.
이어 살인 현장을 직접 둘러본 정이신은 과거 자신의 살인 행위를 회상하며 차수열에게 범인에 대한 힌트를 줬다. 이를 통해 검거된 사마귀 살인 사건 모방범의 유력한 용의자 서구완(이태구 분)과 대면한 그는 서구완을 앞에 두고 "왜 그랬어?" "기분이 어땠어?" 등 여유롭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는 이내 자신의 질문들에 답을 하지 못하는 서구완을 보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에 정이신은 서구완을 조롱하며 자극했고 흥분한 서구완은 차수열이 정이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물론 차수열의 아내까지 세상에 밝히겠다고 발악했다. 그러자 정이신은 서구완의 머리를 쇠창살에 부딪히도록 강하게 내리쳤고 넥타이로 그의 목을 조르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를 말린 차수열에게는 "지금 죽여야 한다"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고현정은 정이신의 초연하면서도 섬찟한 면모를 자신만의 색깔로 구축해 전하고 있다. 특히 이제껏 드러낸 적 없는 외형이 캐릭터의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고현정은 헤어 의상 등 꾸밈을 최대한 덜어냈고 오랜 시간 수감돼 있던 사형수라는 설정에 맞게 검버섯 주름 등을 더한 분장으로 세월의 흔적을 전했다. 이 때문에 화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정이신의 공허한 눈빛과 표정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차갑고 무심한 인물의 분위기에 살인을 향한 캐릭터의 흥분을 더한 고현정은 보는 이들에게 도파민과 미스테리를 안겼다. 그는 차수열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장면에서는 나긋한 목소리와 여유를 전했다가도 살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번뜩이는 눈빛으로 정이신의 활기를 표현하며 섬뜩함을 자아냈다. 특히 차수열을 향해 "피 냄새? 난 좋아"라고 말한 장면과 사건 현장에서 과거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재연한 장면에서는 이를 즐기는 듯한 광기 어린 눈빛과 표정을 보여줬다.
고현정은 서구완과 대립하는 장면에서 정이신의 광기를 제대로 표출했다. 그는 서구완을 다룰 때는 여유롭고 능글맞은 말투와 제스처를 보였다가도 그를 폭행할 때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깔깔거리며 웃는 연기로 캐릭터의 비정상적인 면모를 그렸다. 이를 말리는 차수열에게는 살인에 목맨 사람과 같은 눈빛으로 "지금 죽여야 한다"고 말하며 캐릭터의 잔혹하고도 소름이 끼치는 모습을 완성했다.
이처럼 고현정은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연쇄살인마 캐릭터를 마치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작품을 향한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고 있다. 여유와 광기를 오가는 매끄러운 완급 조절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캐릭터의 감정을 밀도 있게 촘촘하게 그려내면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현정은 2회까지 많은 분량이 등장한 것이 아님에도 연기 하나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하고 있다.
그의 압도적인 활약에 작품은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사마귀'는 첫 회 시청률 7.1%(이하 닐슨 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동시간대 및 금토드라마 1위를 기록하며 전작인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의 첫 회와 마지막 회 시청률을 모두 넘어섰다. 2회는 6.9%를 기록했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상 폭넓은 시청자층을 보유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마귀'는 첫 회부터 호성적을 기록한 셈이다. 남은 회차에서는 고현정이 맡은 정이신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 이유 등의 스토리가 펼쳐질 예정이다. 작품 초반을 장악하며 소름끼치는 긴장감을 전하고 있는 그가 마지막까지 보여줄 활약에 기대감이 모인다.
'사마귀'는 매주 금, 토요일 밤 9시 50분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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