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영화관은 도심 속 피서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영화관에서 혼자 또는 친구 연인 가족 등과 함께 쾌적하게 영화를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름을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 팍팍한 주머니 사정에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언감생심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방법은 있다. 보다 저렴한 푯값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작은 영화관으로 가면 된다. 돈 걱정은 덜면서 시원하게 특색 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영화관들을 정리해 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김명주 기자] 노인이라면 단돈 2000원에 시원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도 있다. 실버영화관은 어르신들이 폭염을 피해 저렴한 가격으로 고전 영화 한 편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물론 추억을 되새기며 삶의 낙을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실버영화관은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지난 2009년 개관한 이곳은 노인들이 365일 2000원에 국내외 고전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더팩트> 취재진은 어르신들의 놀이터가 된 실버영화관의 인기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건물 입구의 매표소에는 티켓 가격과 함께 상영 영화의 시간표가 부착돼 있었다. 평일 낮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매표소 앞은 영화표를 사러 온 노인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만 55세 이상은 2000원에 티켓을 살 수 있고 만 55세 이상 어르신을 동반한 일반인 역시 같은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 이외 일반인은 7000원, 청소년은 5000원에 표를 구매할 수 있다.
상영 영화는 1954년 개봉된 영화 '글렌 밀러 스토리'(감독 안소니 만)로 이날 하루 오전 10시 30분, 오후 12시 35분, 오후 2시 40분, 오후 16시 45분 네 차례에 걸쳐 상영이 이뤄졌다. 실버영화관의 상영작은 어르신들이 관심 가질 만한 1950~60년대 작품 위주로 정해지고 선정된 작품은 사흘에서 나흘간 상영된다. 매표소 아래 비치된 유인물에는 8월 상영작들의 상영 일자 및 시간이 표시돼 있었다.
'글렌 밀러 스토리'가 한창 상영 중인 시각 들어선 극장 안은 자리를 채운 관객들로 빼곡했다. 실버영화관의 상영관은 한 개로 객석은 총 300석인데 이날 12시 35분 시간대에는 객석의 3분의 2를 채운 약 200명의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했다. 실내 온도 26도로 극장은 선선했고 지팡이를 들고 중절모 또는 베레모를 쓴 노인들은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꼬고 숨죽인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은 저렴한 푯값과 함께 시원한 공간을 자랑하는 실버영화관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온 70대 김병나 씨는 "영화 보려고 자주 온다. 특히나 주말에는 꼭 오는 편"이라며 "티켓이 싸고 (영화관이) 시원해서 좋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어 "(영화를 보면) 재밌고 옛날 생각이 난다"고 덧붙였다.
친구끼리 왔다는 서울에 사는 70대 황 모 씨는 "7~8명이 같이 영화 보고 쉬러 왔다"며 "한 달에 세 번 정도 온다. 영화비가 싸서 자주 오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80대 A 씨는 "쉬러 종종 온다. 와서 영화를 볼 때도 있고 매점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있다"며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삶의 리듬을 찾기 위해 일부러 온다"고 이야기했다.
극장 앞 음료와 간식을 파는 매점 인근에는 어르신 약 30명이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일부는 혼자 앉아 조용히 신문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봤고 일부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었다. 이곳 매점에서는 어르신들이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헤이즐넛 향이 가미된 아메리카노, 달콤한 다방 커피, 가래떡 구이 등을 판매하고 있다. 아울러 마련된 테이블은 화려한 나전칠기 문양으로 눈길을 끌었다.
매점에서 일하는 직원 B 씨는 "제일 많이 팔리는 건 다방 커피다. 아무래도 달달하니까 어르신들 입맛에 맞는 것 같다"며 "간식류 중에서는 가래떡 구이가 많이 나간다. 구워서 나가다 보니까 드시면서 옛날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점 근처 공간에는 어르신들이 옛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골동품들이 장식장 안에 전시돼 있었다. 교과서부터 만화책, 인형, 재봉틀, 전화기, 시계, 성냥갑, 피아노, 수동 타자기까지 다양한 과거의 물건들이 놓여 있어 관심을 모았다.
이렇게 노인들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실버영화관은 그들이 자신들의 젊었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삶의 무료함을 달래는 것은 물론 처음 만난 사람과 말동무가 되고 과거의 추억을 나누는 공간인 셈이다.
매점 앞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만 84세 김성길 씨는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모르는 사람과도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끼리 의지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소외된 사람끼리 모여서 행복을 찾는 장소"라며 "어렸을 때, 젊었을 때 생각이 많이 나는 귀중한 장소"라고 강조했다.
김성길 씨가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만 90세 장 모 씨는 경기도에서 이곳까지 왔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오게 된다. 오면 사람들하고 시원한 곳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며 "몇 해 전 아내가 죽고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됐는데 이곳에 오면 덜 외롭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름철 실버영화관을 찾는 관객은 평일 하루만 500~600명, 주말에는 800~1000명 가까이 된다. 실버영화관을 설립한 추억을 파는 극장 김은주 대표는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라 그들을 위한 영화관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개관했다. 당시 어르신들에게 적당한 티켓 가격을 여쭤봤을 때 2000~3000원이라는 대답이 많아서 2000원으로 가격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티켓 가격이 저렴한 만큼) 운영의 어려움이 있다. 전체 예산의 10%가 안 되는 금액을 정부에서 지원받는 정도다. 자금난은 항상 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며 "모두 나이가 들고 늙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들었을 때 편하게 매일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어르신들이 영화 한 편을 보고 눈치 안 보고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제공하고 싶고 어느 정도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실버영화관은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에 위치하고 있고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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