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현정 기자] 1995년은 한국 펑크(Punk) 록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크라잉넛이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공연을 펼치며 한국 인디 록과 조선 펑크의 시작을 알린 해이자 '테리우스' 신성우와 015B의 기타리스트 장호일, 넥스트의 베이시스트 이동규가 모여 결성한 밴드 지니의 첫 앨범 'Cool World(쿨 월드)'가 발매된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니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프로젝트 그룹으로 결성된 데다가 펑크 록 장르의 '(이런XX)뭐야 이건'을 타이틀곡으로 앞세운 파격적인 행보로 많은 화제를 모았고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지니는 신성우 장호일의 2인 체제로 1997년 발매한 두 번째 앨범 'Elephant(엘리펀트)'와 타이틀곡 '바른 생활'이 연달아 큰 히트를 기록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지니의 활동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신성우와 장호일이 각자의 일로 바빠지자 프로젝트 밴드라는 한계에 부딪히며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한국 대중 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지니인 만큼 당시 많은 음악 팬들은 이들의 재결성과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리고 2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 목소리에 화답하는 소식이 들렸다. 신성우·장호일과 함께 넥스트·노바소닉·에메랄드 캐슬의 베이시스트 김영석이 새롭게 합류해 지니의 재결성을 선언하고 2025년 4월 신곡 '거북이'와 'Log(로그)'가 수록된 싱글 'Time Leaper(타임 리퍼)'를 발표한 것이다.
일회성 컴백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제대로 밴드 활동을 하고 싶어서' 다시 뭉쳤다는 지니의 세 멤버는 3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백주년기념관에서 28년 만의 라이브 콘서트 'HELLO AGAIN(헬로우 어게인)'의 개최도 앞두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카페에서 지니의 신성우·장호일·김영석과 만나 이번 콘서트와 지니의 향후 활동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2025년은 지니의 데뷔 30주년임과 동시에 한국 인디 록과 조선 펑크가 3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혹시 이런 시기적인 부분을 고려해 재결성을 한 것이냐고 묻자 신성우와 장호일 김영석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걸 의도하면서 움직일 나이가 아니다"라며 웃었다.
신성우와 김영석은 지니의 재결성은 정말로 우연히 그리고 급격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신성우는 "각자의 일을 하면 흘러가다가 김영석이 불을 질렀다. 사실 나도 내심 원하는 게 있었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게 편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 담아줄 밴드를 하고 싶었다"며 "장호일과 지니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리를 하자는 말을 종종 했다. 그냥 흐지부지 이렇게 흘러가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랬다. 그때 마침 김영석이 지니를 다시 하자고 했다. 뛰어난 실력의 친구가 같이 하자고 하니까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장호일도 흔쾌히 수락해 다시 뭉치게 됐다"고 재결성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재결성의 결정적 역할을 한 김영석의 설명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주변에 같이 음악하던 친구들이 대부분 음악을 그만 뒀다. 지니가 아니면 갈 팀이 없다"며 너스레를 떤 김영석은 "'보컬 신성우'와 '기타리스트 장호일'이면 인지도 높고 음악 경력도 뛰어나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선 너무 좋은 재료인 셈이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니를 다시 하자고 하니까 흔쾌히 허락해서 서둘러 음원을 만들었다. 신성우와 장호일이 다 바빠서 서두르지 않으면 또 흐지부지될 것 같아서 빠르게 만들었다"며 "신성우와 술 친구기도 한데 그동안 술자리에서 밴드 만들자고 한 것을 다 합치면 30팀은 될 거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지니의 재결성이 확정되자 그 다음부터는 28년이라는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급물살을 탔다. 신성우는 "막상 하자고 하니까 또 금방 되더라"라고 말했고 김영석은 "사실 재결성을 하기로 하고 준비를 시작할 시기에 신성우가 가정이 생기면서 매우 바쁠 때였다. 그런데도 잘 진행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재결성된 지니는 이제 '프로젝트'를 뗀 정식 밴드다. 신성우는 "이제 프로젝트 밴드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하는 밴드다. 해외의 에어로스미스(Aerosmith) 같은 밴드를 보면서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그렇게 오랫동안 멋있게 활동하려 한다"고 약속했다.
다만 김영석과 장호일은 "이번 콘서트와 신곡들이 잘 되면 정식 밴드가 되는 거고 안 되면 또 프로젝트 밴드다. 우주의 기운이 모여야 한다"라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사실 이런 유쾌함은 지니가 가진 큰 매력이기도 하다. 지니의 이런 유쾌함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가 음악방송 출연이다. 신곡 '거북이' 발매 당시 지니는 MBC '쇼! 음악중심'에 2주동안 출연했다.
지니의 세 멤버는 "음악방송에 나간다고 하니까 다들 '형이 거길 왜 나가? 거긴 형이 나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반응이었다"며 웃었다.
음악방송 출연과 관련해 장호일은 "음악방송은 정말로 전혀 계획에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타이밍이 잘 맞았다. 딱 우리의 신곡이 나왔을 때 음악방송 PD가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영석은 "'쇼! 음악중심' PD가 원래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잘 아는 사이다. 음악방송 PD가 되고 록 밴드를 섭외하고 싶었는데 마침 우리의 신곡이 나와서 출연해 달라고 했다"며 "나중에 들어보니 MBC 내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는데 지니라고 하니까 다들 신기해 했다고 하더라. 우리가 출연하고 '쇼! 음악중심'에 밴드들의 출연이 많아졌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신성우는 "일단 PD를 만나고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물었다"며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실제로도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나 앞으로 지니의 음악방송 출연은 다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장호일은 "두 번 나갔으면 많이 나갔다. 경험을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새벽에 나가는게 어렵다. 이제 체력이 딸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이런 유쾌함과 더불어 지니가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그 특별한 음악성이다. 실제로 '(이런XX)뭐야 이건'이 수록된 'Cool World'는 헤비메탈부터 하드록 펑크 힙합 전자음악 발라드 등등 온갖 장르와 실험적인 곡이 수록된, 지금 들어도 혁신적인 앨범이다.
이에 신성우는 "그때는 녹음실이 곧 연습실이었다. 거기서 '뭐해볼까? 뭐래볼래?' 하면서 녹음을 했다. 펑크 장르인 '(이런XX)뭐야 이건'도 그렇게 탄생한 거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장호일은 "당시 가요계는 장르 음악이 명확하게 형성이 안 돼서 한 가수가 이런 저런 장르를 다 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Cool World'에는 여러가지 음악이 있었고 'Elephant'에서는 조금 더 장르를 색을 정했다. 예전에는 그게 미덕이었는데 장르 음악이 정립되고 앨범보다 싱글 위주로 돌아가는 요즘 환경에서는 그때같은 '종합 슈퍼마켓'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제 새롭게 지니의 음악적 방향성의 키를 쥐고 있는 김영석은 추구하는 목적지를 "크로스오버"라고 답했다.
김영석은 "지니의 초창기를 기억하면 펑크가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그때는 관심은 있지만 본캐로는 하지 못하는 음악들을 부캐로 한 거다"라며 "이제 와서 하나의 장르로 묶어서 가기는 어렵고 크로스오버로 다양한 장르를 다루려고 한다"고 밝혔다.
신성우는 "나도 좋다. 한 장르에 치우친 건 우리가 못 한다. 경력이 많고 경험과 지식도 많다. 메시지에 따라서 장르는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메시지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거북이'는 28년만에 다시 뭉친 지니가 전하고 싶은 첫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혹시 '코끼리'에 이은 동물 시리즈를 따로 구상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신성우와 장호일은 "그건 아니다"라며 웃었다.
신성우는 "최근 몇년간 사는 게 엉망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비판하는 메시지보다 용기를 주려 했다"며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었다. 살다보니 '뚜벅뚜벅'이 가장 무적의 포지션인 것 같다. 뚜벅뚜벅 기본을 지키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왜 저걸 잊고 있었을까' 깨달을 때가 있다. 그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대놓고 말하기보다 거북이에 빗대어 표현했다"고 '거북이'에 담긴 의미를 전했다.
반면 장호일의 바람은 좀 더 현실적이었다. 장호일은 "의도한 건 아닌데 '(이런XX)뭐야 이건'이나 '바른 생활'이 아직까지도 스포츠에서 응원가로 많이 쓰이더라"라며 "그래서 이번에는 시작부터 응원가 느낌으로 만들자고 했다. 내년에 월드컵도 있으니 어떻게든 그 특수를 누렸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놔 웃음을 선사했다.
장호일의 바람처럼 '거북이'가 월드컵 응원가로 인기를 얻을지는 2026년이 돼야 알 수 있는 일이고 지금 지니가 가장 집중하는 일은 당연히 콘서트다.
김영석은 "지니로 뭉쳤지만 각자 음악 신에서 활동하던 게 있으니 사랑받았던 음악들을 다 할 작정이다. O15B와 신성우 솔로 대표곡은 당연히 하고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도 신성우가 부를 거다. 또 신성우가 신해철과 톤이 비슷하다. 추모 공연에서 호평을 받았던 신해철의 곡도 할 것 같다"고 예고했다.
신성우는 "28년이나 기다린 팬들에게 미안해서 여러가지 음악을 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재미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음악도 스포츠 선수와 비슷해서 올라가기 전에 음악적으로 복기를 하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목소리는 늙지 않는다고 하는데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든다.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숙성된 것 같은 느낌이 있더라. 잘 준비하겠다. 일단 오래간만에 엄청 팬과 만나고 싶다"고 28년 만의 콘서트에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앞으로 평생 지니로 활동하겠다고 각오한 만큼 신성우와 장호일 김영석은 이번 콘서트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다양한 곳에서 지니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장호일은 "나는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걸 좋아해서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하고 싶다. 밴드는 라이브다"라며 "사실 이번에 지니 재결성을 하며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록 페스티벌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신곡이 나올 때엔 이미 대부분의 록 페스티벌 라인업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지금은 재결성도 했고 다음 후속곡도 준비됐으니 내년엔 꼭 록 페스티벌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신성우는 "내가 항상 팬에게 하는 말이 '기대하는 만큼 부응하겠다'다. 이번에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지니의 이런 끝없는 열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장호일의 마지막 말이 답이 됐다. 장호일은 "음악을 록으로 시작했고 기타리스트의 마음에는 언제나 록이 있다"고 말했다.
고작 28년으로는 지니의 열정과 록 스피릿을 꺼트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