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황동혁 감독이 6년을 함께한 '오징어 게임'을 떠나보내며 "홀가분하다"고 표현했다. 시즌3까지 긴 여정을 이어오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했던 그는 호흡이 긴 시리즈 작품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이제는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황동혁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연출 황동혁, 이하 '오징어 게임3')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27일 베일을 벗은 '오징어 게임3'는 가장 친한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성기훈(이정재 분)과 프론트맨(이병헌 분)의 대결을 비롯해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마지막 운명이 담겼다.
2021년 시즌1이 첫 공개된 후 제작 기간까지 합치면 무려 6년의 대장정을 이어온 '오징어 게임'과 황동혁 감독이다. 이에 황 감독은 "말 그대로 시원섭섭하다"며 "너무 부담스러운 작품이고 기대도 많고 걱정도 많았는데 이제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 홀가분하다. 한편으로는 또 언제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아볼까 싶어 양가적인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고 긴 여정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사실 시즌1이 공개될 당시에는 OTT가 생소한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시작했던 '오징어 게임'이다. 이후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터지기 시작한 작품은 역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황 감독으로서는 처음부터 시즌2, 3까지 구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처음 시즌1을 만들었을 때는 아무도 이 작품을 몰랐고 기대도 없지 않았나. 그러다 시즌제 제작이 확정이 됐을 때 막연하게 기훈이 다시 한번 대결에 뛰어들게 되고 게임을 이기면서 끝낸 뒤 미국에서 딸을 만나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하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단다. 황 감독은 "이 작품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끝을 내야 할지 생각했다"며 "이후 세상을 둘러보니 희망적인 이야기로 끝낼 수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즌1을 만들었을 당시보다도 안 좋았다"고 털어놨다.
"기후로 인한 재앙도 한 해가 다르게 닥쳐오고 있고 그 와중에 정치적 혼란도 가중되고 있으며 전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이대로 살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지 않을까 싶었죠. 기성세대보다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진작에 접었기에 딸을 보러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을 겪고 종착점에 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 세대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걸 말하면서 마무리를 짓고 싶었어요."
황 감독이 작품에 담고자 한 메시지는 마지막 게임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이때 게임 공간은 공사 현장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황 감독이 의도한 바였다. 그는 "공사 현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과 세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높은 기둥과 탑을 세워놨지만 이미 무너져 내리기 직전인 모습이 가장 약한 사람들을 탈락시키고 있는 세상과 맞닿아 있지 않나"고 말했다.
어느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안전제일'이라는 표지판 역시 마찬가지다. 황 감독은 "실제로 공사장에서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나. 말은 안전제일이지만 현실은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이 사회도 비슷하다. 안전보다는 성장과 소비를 제일로 하는 세상이 됐다"고 짚었다.
"마지막 게임 나가기 전에 숙소 벽에 라틴어가 적힌 게 보여요. 로마 시대 묘지에 쓰여 있는 말인데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의미예요. 단순히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가 죽는다는 뜻만 담은 건 아니에요. 이를 통해 '오늘은 내가 가장 약자지만, 내일은 네가 가장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처럼 황 감독은 작품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 없이 담았지만, 시즌2와 3는 혹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즌제의 숙명을 피해 갈 수 없었던 것. 이에 황 감독은 "시즌제를 제작하고 공개하면서 깨달은 건 '이미 기대가 많이 생겼다'는 점과 그 기대가 누구든 자신만의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황 감독의 말대로라면 '오징어 게임'을 사랑한 팬들은 각자 메시지 혹은 게임 혹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관점으로 나뉘었다. 때문에 다양한 기대가 있는 만큼 다양한 혹평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황 감독의 지론이다. 그는 "긴 시리즈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팬들과 시청자가 작품의 주인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한편으로는 많은 논쟁과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극단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지금도 놀랍다"고 전했다.
"팬덤을 지닌 긴 시리즈를 한다는 건 힘들다"고도 털어놓은 황 감독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또 한 번 장기 프로젝트를 제안받는다고 해도 다시는 못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아요(웃음). 이를테면 치아도 제 일도 많이 잃었죠. 어떻게 하다 보니 6년의 여정을 하게 됐는데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때문에 이제는 조금 더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고 더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한 작품이 인기가 많다고 평생 그 작품만 하다 끝내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남아 있을 때 조금 더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서 장기 프로젝트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징어 게임3'는 공개 하루 만에 93개국 글로벌 넷플릭스 시리즈 TOP 10 1위에 등극했다.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건 앞서 한국의 문화인 K-팝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블스 헌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오징어 게임3'가 배턴을 이어받아 시리즈 부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에 그 중심에 있는 작품의 감독과 제작자로서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소회도 궁금했다. 황 감독은 "해 외 프로모션에 가면 웬만한 나라는 다 한국말로 인사한다. 이처럼 위상은 말로 할 수 없이 많이 변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한국 음식점이 늘었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은 대부분 현지인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위상은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고 높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묘사와 고증이 잘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안타까운 건 밖에서는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콘텐츠 업계가 힘들다는 점이에요. 영화관에는 사람이 없고 채널은 수익성이 없어 콘텐츠를 제작하기 힘든 상태까지 몰렸어요.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제 작품이 잘됐다고 혼자 좋아할 수도 없는 조심스러운 상황 같아요.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많은 관심이 존재하고 점점 팬이 늘어간다는 거예요. 이를 동력으로 삼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자체적인 전략도 내놓는 등 더 나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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