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당시 1000만 부나 판매되며 1990~2000년대를 사로잡았던 소설이 생생한 비주얼로 스크린에 구현되며 극장가의 흥행 복병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분위기에 탑승한 <더팩트>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되며 원작 팬덤은 물론 새로운 연령대의 관객들까지 제대로 사로잡은 '퇴마록'의 모든 것을 파헤쳐보며 시즌 2와 한국 영화 산업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퇴마록'이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으로 호평을 받으며 극장가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이에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완벽히 구현해 낸 제작자들은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에 감사함을 표하며 작품을 더욱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여러 시선을 선사했다.
김동철 감독과 박용건 아트디렉터, 박지호 CG수퍼바이저는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로커스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만나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과 어디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비하인드 등을 꺼내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이 선장이라면 아트디렉터는 비주얼적인 것을 점검하고 책임지고, CG수퍼바이저는 감독이 잡은 전체적인 틀과 아트디렉터가 비주얼적으로 해석한 것을 실무적인 측면에서 마무리하는 일을 한다. 아트디렉터는 "감독님이 모든 걸 다 컨트롤 할 수 없으니까 비주얼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컨펌한 다음에 정제된 의견을 드린다"고, CG수퍼바이저는 "3D 캐릭터를 구현해서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라이팅을 세팅하면서 하나의 아웃풋이 될 수 있게끔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1990년대에 쓰인 원작을 파악하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5년이다. 제작자들은 "'퇴마록'의 본질과 캐릭터성 그리고 주제 의식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우혁 작가의 바람을 지키면서도, 작품 공개 시점의 시대상에 맞추는 것과 텍스트로 된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이와 관련해 김 감독은 "현재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룩을 만들어서 선보이는 게 목표였다. 젊고 트렌디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다"고 작품의 방향성을 밝혔다.
이 가운데 박신부의 수염을 두고 이우혁 작가와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김 감독은 "작가님은 신부의 숭고한 이미지를 강조했고 저는 그 이전에 상처가 있는, 아직은 덜 성숙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소설을 보면 박신부의 역할은 게임 용어로 '탱커'다. 즉 방어하는 사람이라 든든한 이미지로 구축하고 싶었다. 파워를 강조했다기보다는 든든하게 버텨주는 이미지를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용건 아트디렉터는 관객들 사이에서 비주얼 캐릭터로 언급되고 있는 현암에 관해 "그런 댓글을 보고 충격적이면서도 고마웠다. 저희는 현암을 미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며 "대놓고 매력적인 것보다 튀지 않는 친근한 느낌과 함께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걸 의도했다.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좌우대칭이 아니고 삐뚤어지게 했다"고 전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영화처럼 로케이션 헌팅으로 많이 돌아다니면서 괜찮은 장소들을 물색했고, 실제 장소와 골조를 같게 하면서도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등 제작자들의 끝없는 노력 끝에 완성된 '퇴마록'이다.
특히 박용건 아트디렉터는 공포물과 오컬트물을 즐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작품을 보고 연구하면서 캐릭터들을 디자인 해나갔다고. "이런 장르들을 이제 좋아하게 됐다"고 너스레를 떤 그는 "처음에는 그냥 디자인했는데 너무 판타지적으로 나왔다. 그래서 성당 자체를 픽 하고 거기서 디자인을 추가했다. 특정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고 실제 장소를 찾아가는, 성지화되는 걸 바라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가 하면, GS25 편의점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등을 넣으며 관객들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에 제작자들은 "박신부와 장호법이 대화하는, 해동밀교로 가는 시작점이었다. 편의점 디자인에 제약이 많았고 가상의 편의점을 넣으려고 했는데 GS25의 장소 협찬을 받게 됐다"며 "(GS25 측에서) 애니메이션을 시도해 본 적 없다고 하시면서 저희가 쓸 수 있게 동의를 해주시고 소스를 주셨다"고 회상했다.
박지호 CG수퍼바이저는 "솔직히 저는 GS25에서 파는 군고구마나 치킨 등의 이미지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최대한 현실을 녹여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진행됐다. 관객들의 반응도 되게 좋더라"고 했다.
남도형, 최한, 정유정, 김연우 등 국내 유명 성우들과 함께하게 된 과정도 설명했다. 작품의 톤이 극 영화에 가깝다 보니까 실제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성격 등 종합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가상 캐스팅을 설정하고 캐릭터를 디자인하기 시작했고,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지금의 목소리 라인업을 완성했다고.
김 감독은 "캐릭터와 어울리는 목소리 톤과 연령대에 집중했다. 뽑고 보니 유명한 성우님들이셨다"며 "성우님들도 '퇴마록'을 재밌게 보셔서 각자가 캐릭터를 연구해 오셨고 저희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우 최귀화 외에 처음부터 끝까지 가상 캐스팅 라인업이 유지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주헌이 작사 및 작곡한 몬스타엑스의 'BEASTMODE(비스트모드)'를 엔딩곡을 고른 이유도 밝혔다. 'BEASTMODE'를 포함해 센 힙합 비트의 곡 5개가 후보였고, 모든 노래를 영화 엔딩에 붙여서 감상했다는 제작자들은 "그전에는 이 곡을 몰랐다. 작품과 어울리게 작곡을 한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비트와 가사 모든 게 찰떡이었다"고 높은 만족도를 표했다.
주헌과 직접 만나지 못했다는 김 감독은 "VIP 시사회때 직접 말을 걸고 싶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러지 못했다. 되게 좋게 봐주셨고 기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저희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좋게 봐주시고 '원했던 것을 찾은 느낌'이라는 피드백을 해줬다고 들었다"고, 산업부 관계자는 "영화를 보고 감동하셨고 다음에는 영화나 드라마 OST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이번 작품 제작 과정에서 자신이 반대한 의견들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박지호 CG수퍼바이저는 "솔직히 저는 상업 음악을 반대했다. 괴기스러운, 가사가 없는 느낌의 곡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완성본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웃음을 안겼다.
그가 반대 의견을 낸 또 하나의 부분은 바로 자막이었다. '영상의 일부 공간을 활용하는 게 적합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그렇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자막을 넣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그 시절에는 무협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음악에 신경 쓰다 보니까 대사가 묻힐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측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산업부 관계자는 "처음에는 대사가 잘 안 들려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자막을 넣고 나서 캐릭터의 선호도 결과가 정반대로 나왔다"고 효과를 언급했다.
또한 이날 박지호 CG수퍼바이저는 '퇴마록'의 설정을 더 현대화시키자고 의견을 냈다고 최초 공개했다. 삼성역에 있는 봉은사처럼, 해동밀교를 도시로 갖고 오고 싶었다고. 이에 따라 승희는 더 스타일리시하게, 현암은 더 멋있게 구축하려고 했다고.
하지만 '원작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김 감독의 의견에 설득됐다는 그는 "지금 보니까 감사할 따름이다. 원작 팬덤이 무섭더라. 감독님의 결정이 맞는 것 같았다"며 "그리고 우리는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제작적인 측면에서 뚝딱 만들 수 있으니까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비밀의 종교 해동밀교와 145대 교주 서백옥의 글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에 10~20대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음을 숨기는가 하면, 중간중간 넣은 코믹 포인트 등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제작자들은 아직 많은 관객들이 발견하지 못한 디테일도 공개해 흥미를 유발했다.
이들은 "성당에 나오는 악귀인 아스타로트의 문양이 박신부가 예전에 구하지 못했던 소녀가 입고 있는 옷에 피로 맺히는 문양과 같다"며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눈치채시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많이 발견하지는 못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제작자들은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이 점은 성공한 것 같다. 'N차 관람'을 해주시는 관객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그분들 덕분에 저희가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며 "복잡한 현실에서 한 번 정도는 즐기셨으면 좋겠다. 유치하고 촌스럽고 클리셰 덩어리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 번쯤 극장에서 보시면 속 시원하고 재밌게 보고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