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원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는 알았지만 '조명가게'에서의 신은수는 한층 더 깊은 연기를 보이며 또 한 번 감동을 안겼다. 이에 섬세한 연기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신은수의 답변에는 배우 이정은과 김희원 감독이 등장했다. 모든 공을 두 사람에게 돌리며 소중한 경험을 가슴 한구석에 고이 간직한 신은수다.
신은수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원작·각본 강풀, 연출 김희원) 공개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엄마 유희(이정은 분)의 심부름으로 매일 조명가게에 들르는 고등학생 현주를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8일 8부작 전편 공개된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조명가게'는 지난 2023년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무빙' 이후 강풀 작가가 내놓는 새 작품이자 당시 배우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희원의 첫 시리즈 연출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때문에 강풀 작가의 새 세계관에는 어떤 배우들이 합류할지도 많은 기대를 모았다.
신은수는 김희원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번 작품에 합류했다. 지난 2016년 신은수의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가려진 시간'에서 새아빠와 딸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은 이후에도 꾸준한 인연을 이어왔다. 신은수는 "엄태화 감독님이랑 셋이서 1년에 몇 번씩은 주기적으로 만난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만난 데다 두 분 모두 술을 안 좋아해서 셋이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또 카페를 가곤 했다. 두 분 모두 대선배고 감독님이지만 대화하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고 밝혔다.
'조명가게'도 여느 날처럼 연기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야기를 듣게 됐다. 신은수는 "김희원 감독님께서 연출을 하게 됐는데 그 작품에 등장하는 현주라는 캐릭터가 나랑 잘 어울리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내게 잘 맞는 역할 있다고 해서 봤는데 나 역시 너무 좋아서 함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는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현장에 가면 호칭을 어떻게 할지 묻기도 했어요.(웃음) 편한 대로 부르라고 하셨는데 현장에 가면 감독님처럼 계시니까 자연스럽게 '감독님'이라고 불렀죠. 처음에는 '감독 김희원'이라는 의자도 신기했는데 배우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디렉팅도 해주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식으로 연기할지 같이 고민해 주는 감독님이라서 좋았어요. 아저씨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느낌이에요.(웃음)"
연출가로서 만난 김희원 감독은 어땠을까. 신은수는 "촬영하면서 느낀 감독님은 길을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해'라는 디렉팅보다는 '이런 식으로 하면 현주의 감정이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며 디테일한 예시와 설명을 덧붙여 납득하게끔 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 중 수돗가에서 손을 씻는 장면이 있는데 '차가움을 느낀다'는 감정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진짜에 가까운 행동이 있지 않나. 그럴 때면 직접 보여주면서 '이렇게 해봐도 되지 않을까?'라고 묻는 등 정말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준다"고 전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려웠을 것이라고 예상됐던 버스 사고 장면 역시 배우들은 큰 고충 없이 촬영을 끝냈단다. 신은수는 "당연히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고 실제로도 걱정을 많이 했다. 신기했던 건 버스를 아예 뒤집어서 촬영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미 감독님께서 설계를 많이 해 와서 우리는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연기만 하면 됐다. 그러다 보니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도 방송으로 제가 안 나오는 장면을 본 거잖아요. 대본에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었어요. 예상하지 못한 연출이 나올 때도 있었죠. 보면서 감독님이 과감한 시도와 선택을 했겠구나 싶더라고요. 특히 원테이크 장면 등은 보면서 감탄을 많이 했어요."
극 중 현주는 버스 사고 당시 타고 있던 승객 중 한 사람이었다. 사고 순간 옆자리에 있던 어머니 유희가 현주를 감싼 덕분에 목숨은 건졌으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사망한 유희는 현주만은 살리기 위해 조명가게로 심부름을 보낸다.
신은수는 "현주의 기본은 해맑고 밝으며 호기심이 많고 오지랖이 넓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친구가 점점 이상한 일을 겪으면서 달라진다. 이 과정을 단계별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놀라고 두려워하고 결국에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신은수의 현주가 유독 눈에 띄었던 건 매 장면 허투루 보내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때문이다. 일례로 유희랑 같이 우산을 쓰는 장면이나 버스에 타서 투닥거리면서 짓는 표정은 실제 모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놀라운 건 모든 콘셉트는 대본에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신은수의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현주처럼 해맑고 고등학생 친구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싶었다. 약간은 '흥칫뿡' 같은 느낌도 표현하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제 원래 성격은 밝은 편이에요. 엄마와도 각별한 편이다 보니 초반의 현주가 연기하기는 편했던 것 같아요.(웃음)"
초반의 현주가 밝아서일까. 현주와 유희의 서사가 공개될수록 괜스레 더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신은수는 이 과정에서도 '단계'를 집중했다. 그는 "경계의 세계에서 현주는 처음에 너무 이상한 일이 일어나니까 답답했을 터다. 내 말을 들어주는 건 엄마밖에 없어서 엄마한테 계속 말을 하는데 엄마가 답이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짜증과 화도 났을 것"이라며 "이후 화를 낸 뒤에는 괜히 미안했던 것 같다. 그리고 승원을 만나 자초지종까지 듣게 되며 미안한 마음은 더욱 커졌을 것이고 동시에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희가 죽은 상태이며 자신을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지금까지 조명가게에 보냈다는 걸 알게 된 현주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 엄마를 기다린다. 고요하지만 처연한 현주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신은수는 "작품을 보면 유희가 들어오자마자 현주가 울기 시작한다. 아마 현주는 이미 엄마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승원에게 조명가게가 무슨 의미인지를 듣고 엄마가 제 조명을 찾으러 갔다는 걸 알게 됐을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조명을 갖게 되는 순간 어떻게 될지를 알고 있었겠죠. 엄마를 기다리며 이 생각을 계속했을 것 같아요. 또 엄마가 들어오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등도 생각했겠죠. 하지만 막상 엄마가 들어오고 엄마의 손에 들려 있는 조명과 얼굴을 보면 눈물부터 나는 거죠."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 신은수는 온 에너지를 쏟아냈단다. 그는 "아무래도 감정의 폭이 컸던 장면이지 않나. 모든 걸 쏟아내야 했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니까 내 기운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더라. 오랜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느낌은 오랜만이라 계속해서 기억에 남았다"고 돌이켰다. 이어 "당시 이정은 선배님이 절 계속 안고 토닥여줬다. 근데 원래 누가 달래면 더 울게 되는 거 알지 않나. 나 역시 포옹과 토닥임에 주체할 수가 없어서 한동안 계속 울었다"고 전했다.
신은수는 자신이 이토록 현주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함께 호흡을 맞춰준 이정은의 존재를 꼽았다. 그는 "선배님은 뭔가를 해주지 않고 옆에 계시고 함께 연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 배우가 몰입을 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분이다. 엄마의 눈빛으로 날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현주로서 존재할 수 있는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조명가게'에 훌륭한 선배님들이 출연하잖아요. 그중에서도 정은 선배님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왜냐하면 전 이번 작품에서 제가 연기를 하고 있다거나 방송 장면을 보면서도 연기를 했다는 느낌을 잘 못 받았거든요. 제작발표회 때부터 항상 하는 말인데 정은 선배 덕분에 현주로 있을 수 있었다고 느낄 만큼 선배님의 연기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작품은 이제 막 전 회차가 공개됐다. 몰아보기 위해 마지막 회만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에게는 희소식인 셈이다. 이에 신은수는 '조명가게'를 정주행할 시청자들에게 관전 포인트를 귀띔했다. 그는 "공포랑 호러라는 장르 때문에 무서워서 고민하는 분들이 있던데 초반 살짝만 견디면 다양한 감정을 마주할 수 있고 그만큼 관통하는 이야기도 너무 많은 작품이다. 특히 참 따뜻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추운 연말에 따뜻한 감정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싶다"고 전했다.
"저에게 '조명가게'는 촬영 기간이 길진 않았지만 매 촬영이 임팩트가 컸던 작품이었어요. 배우로서 느끼는 것도 많고 작업 자체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거든요. 때문에 가슴 한구석에서 박힌 밝은 빛으로 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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