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다 알고 있을,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안중근 장군과 그와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 독립군들의 이야기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가 되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손에 땀을 쥐게 되고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지는 '하얼빈'이다.
24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리는 첩보 액션 대작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내부자들' 등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을 보여준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현빈 분)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고, 이 사건으로 인해 독립군들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박정민 분) 김상현(조우진 분) 공부인(전여빈 분) 최재형(유재명 분) 이창섭(이동욱 분)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인다.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분)가 러시아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늙은 늑대를 처단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고, 내부에서 새어 나간 이들의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하얼빈'은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역사가 곧 스포일러가 되는 영화다. 그럼에도 극장에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 OTT 플랫폼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절대 쉽게 찍지 않으려는 메가폰과 배우들의 치열한 고민과 뜨거운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블루 스크린이 아닌 몽골 라트비아 한국을 오가며 6개월 동안 촬영을 진행한 만큼, 작품에 담긴 광활한 배경들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는 안중근과 설원 위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전투 그리고 몽골 사막을 횡단하는 독립군들의 장면은 압도적인 스케일의 풍경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갖고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인물들의 결의를 느낄 수 있다.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현빈은 중압감과 부담감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국권 회복을 향한 의지를 굳게 다지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그 자체가 됐다. 그는 안중근의 외로움과 결단력을 동시에 보여주고, 하얼빈으로 향하며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까지 소화하며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여기에 박정민 조우진 박훈 이동욱 유재명 전여빈 등도 제 몫을 다 해내며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부 장면의 화면이 너무 어두워 집중력을 잃게 하는가 하면, 모두가 아는 역사적 사실을 다뤘음에도 조금 더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이끌어냈다면 짚은 여운과 울림을 안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남는다.
특별출연으로 힘을 보탠 정우성은 등장만으로 몰입도를 흐트러뜨린다. 전체적인 톤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로 시종일관 튀는 연기만 보여준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혼외자 이슈'가 더해지니 그의 분량이 필요 이상으로 길게만 느껴진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나 더 지난 과거에 벌어진 일이지만, 릴리 프랭키의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대사와 "불을 밝혀야 한다"는 현빈의 내레이션은 공교롭게도 지금의 현실을 관통하며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하얼빈'은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13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