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삶'의 변화는 배우 류승범이라는 한 사람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아내와 딸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가족의 곁에서 한층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긍정적인 변화를 맞은 류승범이다.
류승범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가족계획'(각본 김정민, 감독 김곡·김선)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아빠 철희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29일 첫 공개된 '가족계획'은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엄마 영수(배두나 분)가 가족들과 합심하여 악당들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이야기를 담는 작품이다. 총 6부작으로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한 편씩 공개된다.
이날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9년 만에 인터뷰를 하는 류승범의 태도였다. 과거에도 류승범을 봤던 기자들은 입을 모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에 류승범은 "나야 내 자신이니까 내가 변한 걸 잘 모르겠지만 오늘 인터뷰 온 분들이 이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만약 실제로 내가 변했다면 와이프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다"며 "자연과 살며 정신적으로 치유도 받았지만 그 이후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지낸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날 변화시킨 것 같다"고 밝혔다.
류승범은 앞서 지난 2019년 10세 연하의 슬로바키아 출신 여성과 결혼했으며 이듬해 득녀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류승범의 새로운 가족은 그를 여러모로 확장시켰다.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씩 달라졌다는 그는 이러한 변화가 있었기에 이번 '가족계획'에도 출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비단 '가족계획'뿐만이 아니에요. 물론 '무빙' 때 프랭크는 역할 자체는 빌런이었지만 대본을 받았을 때 작품이 지닌 모성애와 부성애에 끌려 출연을 결정했거든요.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할아버지의 마음도 철희와 영수의 마음도 공감이 가더라고요. 이제는 실질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조금 더 와닿는 것 같아요."
'가족계획'을 통해 처음으로 아버지 캐릭터를 맡게 된 류승범이다. 물론 극 중 등장하는 가족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긴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설정이 '아버지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지점이기도 했다.
류승범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했고 그 탈출구가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만들어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식이었다"며 "내가 처해 있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갈 정도로 평범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소망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시작은 다소 평범하진 않지만 평범한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도 끌렸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류승범 혹은 직전 '무빙'에서 보여준 강렬한 모습이 남아 있는 상태다. 때문에 '가족계획'에서 등장하는 차분하고 다정하면서도 허술하지만 헌신적인 철희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작 류승범은 이러한 '아버지' 철희의 모습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며 만족감을 내비쳤다. 그는 "실제로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많은 아버지들은 알 것"이라며 "가족의 평화를 위해 아빠는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내가 결혼하기 전에 이 이야기를 읽었다면 공감을 덜 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로서 찌그러져 있는 모습에 보자마자 '이거다'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이렇듯 내심 소심해 보이기도 한 철희지만, 가족들을 건드리는 순간 자비 없이 응징하는 냉정한 면모도 지녔다. 작품 자체가 '악당들을 응징한다'고 내세운 만큼 중반부부터는 류승범의 액션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철희라는 인물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이런 남자이자 남편, 아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죠. 진짜 강한 사람은 힘을 써야 할 때 쓸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 가족을 위해서는 찌그러져 있을 줄 알지만, 가족을 건드렸을 때는 힘을 쓸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힘을 쓰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긴장감 넘치는 작품의 분위기에서 때때로 웃음을 안기며 이따금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로서도 활약한다. 이는 류승범의 개인적인 바람이 담기기도 한 결과다. 그는 "대본을 읽으면서 피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다 보니 무섭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배우로서 어떻게 조금 더 융화시키고 숨을 고르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며 "나라도 조금은 환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철희에게 넣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족계획'은 류승범 외에도 배두나와 백윤식이 출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류승범은 "배두나와 백윤식 선생님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놉시스를 봤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함께하고 싶었다"며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 보니 역시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특히 부부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두나에 관해서는 "원래부터 존중하던 배우였다. 배두나만의 독특한 매력이 멋있다"며 "사실 영수라는 캐릭터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표현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전달해야 하다 보니 어려웠을 터다. 그 어려움을 배두나만의 연기로 살리더라. 덕분에 호흡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사실 '무빙'과 '가족계획'이 공개되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 공백기를 가졌던 류승범이다. 당시 연기에 대한 권태감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류승범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나' '내게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에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시간을 보냈단다.
그리고 최근 자신이 연기를 좋아했다는 걸 깨달으며 다시 배우가 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이에 류승범은 "지금은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가 위선을 떠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더 진심으로 연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오히려 연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게 위선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예전과 달리 배우라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나니 책임 의식과 직업의식도 더욱 생겼죠. 그리고 의식이 변하니까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고요. 확실히 새로운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기자가 이날 만난 류승범은 평소 명확한 계획을 세워두진 않는다고 하지만 확신이 있어 보였고 한결 편하고 밝아 보였다. 류승범 또한 9년 만의 인터뷰를 마친 소감을 묻자 "과거보다 조금 더 솔직해진 내 모습이 좋았다. 작위적이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고 즐겁게 말하려는 스스로가 느껴져서 재밌었다"고 전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초심이 있다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에요. 전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저절로 좋은 배우가 될 것이라고 믿거든요. 때문에 '좋은 배우'라는 틀에 갇히기보다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잘 다듬고 훈련하고 싶어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족계획'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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