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잘 있어, 내 하나뿐인 왕자님." '정년이' 속 홍주란이 매란 국극단을 떠날 때 정년이에게 하는 대사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애써 웃어 보이는 주란의 표정에서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비극적인 운명이 느껴진다. 주란은 정년이의 손을 먼저 붙잡았지만 떠날 때도 먼저 그 손을 놓는다. 이 장면은 작품이 종영한 후에도 계속 곱씹어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극의 중심을 잡은 우다비의 섬세한 연기력 때문이었다. 주란에게 정년이가 하나뿐인 왕자님이었다면 우다비 또한 '정년이'가 낳은 하나뿐인 공주님이다.
배우 우다비는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더팩트> 사옥에서 취재진과 만나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 연출 정지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극 중 홍주란 역을 맡은 우다비는 "큰 배움과 도전의 시간이었다. 많은 시청자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그저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소리 하나만큼은 타고난 소녀 정년(김태리 분)의 여성국극단 입성과 성장기를 그리는 드라마다. 총 12부작으로 지난 17일 종영했다.
우다비는 홍주란 역을 통해 정년이와 단단한 우정을 보여줬다. 또한 국극 속 다양한 역할을 통해 다채로운 무대를 펼치며 한층 깊어진 연기를 선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우다비는 '정년이' 속 홍주란 그 자체였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 선한 미소를 짓다가도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진지함도 느껴졌다. 어떠면 정지인 감독도 우다비의 이러한 모습에서 홍주란을 발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서 다른 설명 없이 '너에게서 주란이를 봤다'고 해주셨는데 다른 말보다도 그 문장 하나가 되게 용기가 됐던 것 같아요. 오디션 소식 듣고 나서 만화방에 가서 단행본을 전부 다 읽었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소녀들의 이야기다 보니까 지금 제 나이 때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란이는 정년이가 매란 국극단에 입성했을 때 그에게 유일하게 친절을 베푼 인물이다. 정년이에게 국극단 내부를 소개해 줬으며 같이 시장 구경을 가기도 했다. 또한 정년이가 혼자 있을 때마다 주란이는 늘 그의 곁을 지켰다.
이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주란이가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몰라'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모두가 정년이를 시기 질투하는 와중에 주란이만 친절하게 다가갔기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 이와 관련해 우다비는 "정말 해명하고 싶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억울했어요. 해명하고 싶기도 했죠.(웃음)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주란이가 '귀명창'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었어요. 귀랑 눈이 좋아서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의미죠. 그래서 주란이는 정년이가 처음에 노래하는 걸 듣고 나서 눈물을 흘려요. 이때 주란이는 정년이의 진가를 알아본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란이는 정년이의 진짜 친구였다. 정년이가 무엇을 하든 항상 응원해 줬으며 정년이가 잘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 또한 더 높은 미래를 꿈꿨다. 또한 나중에 꼭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으로 서로 마주 보면서 무대에 오르자는 약속도 다졌다. 우다비에게 "주란이 캐릭터를 굉장히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준 덕분에 주란이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고 하자 조금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막상 주란이처럼 살갑게 다가오는 친구가 있다면 '꿍꿍이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이번에 주란이를 연기해 보면서 저도 이제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돼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성격이 좀 티격태격하는 편이거든요. 주란이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상냥함을 배워야 한다고 느꼈어요."
우다비는 주란과의 싱크로율에 대해서 곰곰이 고민하다가 "50%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부끄러운 미소를 짓는 것부터 행동 하나하나 조심스러운 부분 등은 주란의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정년이'를 볼 때마다 든 생각이 '주란이는 정말 예쁘게 운다'는 거였다. 작품 초반부에 주란이는 정년이와 있을 때면 늘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점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일수록 주란이는 매번 눈물을 흘렸다. 그럴 때마다 정말 예쁘게 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다비는 "감독님이 예쁘게 만들어주신 거다"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주란이 자체가 자기 감정을 다 터트리는 인물이 아니에요. 그래서 눈물을 '또륵' 흘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이 부분을 감독님이 예쁘게 잘 담아주신 것 같아요. 오히려 펑펑 울지 않고 눈물 한 방울 정도 조심스럽게 흘리는 게 더 아련한 감정이 전달되지 않았나 싶어요."
주란이는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국극을 포기한다. 매란 국극단을 나가면서 영서(신예은 분)를 비롯해 정년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특히 정년이와의 마지막 이별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여기서 '정년이'의 명대사 "잘 있어, 내 하나뿐인 왕자님"이 탄생하기도 했다.
"11회 엔딩이에요. 주란이가 정년이의 곁을 떠나는 장면이 아직까지 생각이 많이 나요. 아마 제 연기 인생에서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을 것 같아요. 보통 장면 들어가기 전에 태리 언니랑 호흡을 맞춰고 가는데 그 장면은 많은 연습을 하지 않았어요. 텍스트만 기억하고 촬영에 들어가는데 그러다 보니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감정들이 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태리 언니랑 마주 보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까 더 슬픈 감정이 차올랐던 것 같아요."
주란이는 마지막에 정년이가 남역 배우로 데뷔하는 공연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정년이에게 꽃다발과 편지는 전한다. 우다비는 이러한 주란의 결말에 대해 "결혼하고 자신의 현실을 살았을 것 같다"고 바라봤다.
"꽃다발을 보낸 것도 주란이에게는 용기였을 거예요. 자신이 선택한 건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 현실에 순승하면서 시집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마 정년이의 공연도 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 공연을 봤으면 마음이 더 아팠겠죠. 오히려 '내가 한 선택이니까 내 현실을 살자'고 생각하고 꽃다발과 편지만 보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년이'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우다비가 연기한 신들은 모두 하나씩 들어갔다. 신인 배우의 연기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정년이와 주란이의 우정과 사랑 사이, 그 아슬아슬한 관계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 호평받았다.
"그 나이대 소녀들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 같아요. 아마 그 시대 소녀라면 '내가 내 친구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분명히 우정보다는 깊은 감정이었고 그래서 혼란을 느끼기도 하죠. 그 사이의 미묘한 선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우다비는 작품을 촬영했던 때를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는 "'정년이'는 도전이었다. 이 드라마 자체가 세상에 나오는 것도 도전이었겠지만 제가 주란이를 만난 것도 도전이었다. 그리고 여성 국극이라는 장르를 선보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주란의 연장선으로 조금 더 사랑스러운 역할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제가 정말 작은 역할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왔는데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 제 시간이 참 소중하고 값져요. 앞으로 더 큰 배우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을 많이 쌓은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도 긍정적인 감정을 드릴 수 있는 역할로 시청자분들과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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