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배우'가 된 조여정이 '히든페이스'로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연기하기 어려운 지점이 가득했지만 도전을 택한 그는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있을 법한 인물로 그려내며 보람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다.
조여정은 20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히든페이스'(감독 김대우)에서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수연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개봉 전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기생충'(2019) 이후 5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게 된 소감부터 작품과 관련된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앞서 조여정이 출연한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덕분에 '아카데미 배우'로 불리는 그가 다소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오랜만에 신작을 선보이게 돼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이에 조여정은 "개봉하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한국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고요. 극장에 많이 오셔서 이 문화가 다시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히든페이스'는 실종된 약혼녀 수연의 행방을 쫓던 성진(송승헌 분) 앞에 수연의 후배 미주(박지현 분)가 나타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수연이 그들과 가장 가까운 비밀의 공간에 갇힌 채 벗겨진 민낯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색다른 밀실 스릴러를 그린다.
특히 '히든페이스'는 '방자전'(2010) '인간중독'(2014) 등을 통해 '고품격 에로티시즘'의 장인이 된 김대우 감독의 신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또 작품은 '파격 19금'이라는 키워드 뒤에 숨겨진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하며 시사회 직후 호평을 받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알면서도 스포일러로 인해 편하게 답변하지 못한 조여정은 "결말의 호불호는 이제 관객들이 판단해야죠.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세 캐릭터 모두가 각자 원하는 것 하나 정도는 다 가지고 끝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완성본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방자전'과 '인간중독'에 이어 '히든페이스'로 김대우 감독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 조여정이다. 이는 김 감독이 그동안 스스로 잘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한 부분을 먼저 발견하고 이를 꺼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줬기에 가능한 재회였다.
당시를 회상한 조여정은 "저에게 '스윗하지만 스스로에게 엄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이렇게 늘 길게 말씀은 안 하시지만 사람을 툭 건드리세요. 그래서 저는 감독님의 디렉팅을 잘 알아듣기 위해 '나는 어떤 인간이지?'라고 스스로 파악하려고 해요"라며 "'히든페이스'의 수연은 어떤 인물인지 대본 안에 많이 적혀있었죠"라고 김대우 감독을 향해 두터운 신뢰를 보여줬다.
극 중 수연은 성진에게 영상 편지만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 하지만 그는 그 어느 곳보다 가까운 집 안의 밀실에 갇힌 채 성진과 미주의 도발적인 모습을 지켜보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의 중심에 선다.
작품은 예상했던 고수위 베드신이 펼쳐지고 수연이 어떻게 밀실에 들어가게 됐는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에 따라 조여정은 밀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여러 감정을 폭발시켜야 하는가 하면 송승헌, 박지현과 여러 관계를 형성하며 다채로운 얼굴을 꺼내야 했다.
"수연에게 성진은 구색을 갖추기 위해 필요했던 거예요. '마에스트로가 남편인 첼리스트' 멋지잖아요. 이렇게 수연은 모든 행동에 의도가 있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요. 타인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는, 그렇게 자란 사람이죠. 영화에서는 인간의 나쁜 면을 그릴 수 있잖아요. 나만 아는 나쁜 생각을 드러내는 캐릭터인 만큼, 관객들도 보면서 혼자만의 설득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면서 박지현과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것에 관해 "제가 지현이 나이에 미주를 만났다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하더라고요. 이 친구의 눈을 보면서 믿고 갔고 저에게 좋은 자극이 됐어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 내내 수연을 '영화적으로만 상상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하는 조여정을 보면서 연기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지점이 가득했던 캐릭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수연은 조여정을 만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지만,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로 영화 안에서 존재했다.
기자들의 솔직한 감상평을 들은 조여정은 "현실에 있는 사람처럼 연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평을 들을 때 기쁘고 보람차요. 이러니까 다음에도 어려운 캐릭터가 왔을 때 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 안에서 여러 가지를 해보는 게 배우로서 제 목표에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캐릭터를 만나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고 있는 조여정이다. 하지만 그는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라며 어떠한 기준을 갖고 작품을 택하지 않는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조여정은 "계획을 세워두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아요. 대본을 받는 게 먼저니까 제가 다가가는 거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결의 글이나 캐릭터를 받으면 신선해요. 책이 와야 저의 반경이 넓혀질 수 있는 것 같아요"라며 "누군가가 '우리 이런 무대가 있는데 초대할게요'라는 걸 기다리는 입장이죠"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조여정은 "'히든페이스'는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이 가득한 작품인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밀실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오는 양쪽의 목소리를 스피커로 들으면 정말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반전은 덤이고요"라고 작품의 매력 포인트를 언급하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