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신예은은 '정년이' 속 허영서 그 자체였다. 그저 잘하고 싶은 욕심 하나만으로 1년간 소리 연습에 매진했고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극중극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더 글로리'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으로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이지만 그래도 잘할 수 있는 확신을 주고 싶었단다. 자신만의 연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정년이'를 통해 연기를 즐기는 방법을 배웠단다.

신예은이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 연출 정지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극 중 엘리트 연습생 허영서 역을 맡은 신예은은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12부작이 짧다는 걸 이번 작품에서 처음 느꼈다"며 "예전에는 작품이 끝나면 후련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좀 많이 슬펐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김태리 분)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린다. 총 12부작으로 지난 17일 종영했다.

작품은 드라마 최초로 '여성 국극'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여성 국극'은 1950년대 전후로 인기를 모았던 민족 음악극의 한 장르다. 당시 파격적으로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아 소리뿐만 아니라 무용과 연기까지 선보였던 선구적인 종합공연예술이다. 신예은은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관객 입장에서도 너무 재밌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평소 안 해봤던 스타일링까지 도전해 봤어요. 이런 분장을 해볼 일이 거의 없잖아요.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분들이 입고 있는 무대 의상이나 군무 이런 걸 보면서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한국의 문화구나 싶어서 감탄하면서 봤죠."

신예은이 맡은 허영서는 연기 소리 춤 못 하는 것이 없는 매란 국극단의 엘리트다. 하지만 정년이가 매란 국극단에 들어오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허영서는 정년이의 연기를 보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을 느낀다. 있는 힘껏 정년이를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정년이의 무서운 재능에 불안감을 느낀다.

신예은은 허영서 또한 국극 배우고 자신도 연기를 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허영서의 입장에 공감이 가는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영서를 연기하면서 점차 변화했다고 밝혔다.

"영서를 만나기 전에는 저도 영서처럼 제가 가진 장점을 보기 전에 부족함을 더 먼저 신경 쓰는 사람이었어요. 제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거에 에너지를 정말 많이 썼죠. 하지만 영서를 만난 후로부터는 제 장점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영서는 가진 게 너무 많고 재능도 엄청 뛰어난 아이인데 본인은 그거를 잘 모르잖아요. 어쩌면 저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제 주변 분들과 시청자분들은 저의 재능을 알아봐 주셨는데 제가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어요."

허영서는 완벽한 집안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인물이지만 늘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때로는 정년이와 계속해서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한다. 신예은은 이런 허영서의 모습에 시청자분들이 공감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영서는 많은 분들한테 사랑받을 캐릭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분들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감정이지 않을까요. 누구나 다 인정받고 싶고 1등하고 싶은 마음은 있잖아요. 그게 영서로 잘 표현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영서는 생각보다 단단한 아이예요. 상대의 실패를 보고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공과 잘난 점을 보고 성장하려고 하죠. 그 점이 제가 영서한테 배울 점이라고도 느꼈어요. 누군가는 남의 실패를 보고 안도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기도 하는데 영서는 그런 애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는 영서가 가진 캐릭터의 특성도 있겠지만 신예은이 영서의 서사를 설득력 있게 전달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신예은 또한 "영서는 저만 할 거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주변에서 좋은 반응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예전에는 항상 어린 친구들이나 제 또래분들만 저를 알아봐 주셨는데 요즘에는 엄마 아빠 세대 분들도 많이 알아봐 주세요. 아직 제 이름은 잘 모르시지만 '영서야 사인 좀 해줘'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영서로 저를 알아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뿌듯해요."

'정년이'에서 캐릭터의 성장 서사도 돋보이지만 소리 무대 또한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특히 '정년이'는 극중극을 스쳐 지나가는 요소로 사용하지 않고 30분가량의 무대를 모두 풀로 보여줘 호평받았다. 그렇기에 배우들 입장에서는 극중극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을 터다. 소리와 연기, 춤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했기에 신예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정년이'를 하면서 다섯 작품을 동시에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준비 기간도 실제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보다 굉장히 짧았으니까요. 시간에 쫓기고 부담도 많이 됐지만 현장에서 힘을 받으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돌아보니 다 좋은 추억으로 남았어요."

신예은은 '정년이' 속 무대 중에서 '바보와 공주'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또한 '춘향전'이 제일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는 "'바보와 공주'는 '정년이' 속 유일하게 밝은 캐릭터였다. 하고 싶은 거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춘향전'은 제일 먼저 준비했던 무대이기도 했고 소리가 굉장히 어려워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소리 연습하는 과정 자체는 정말 재밌었어요. 근데 제가 고음이 잘 안 나오는 목소리거든요. 연습을 하면 할수록 목이 자꾸 나가고 소리는 잘 안 나오는 거예요. 병원에서 '당분간은 연습하지 마세요'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저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사람인데 연기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된 거예요. 그래서 리딩 때 감독님께서 '영서는 오늘 리딩 여기까지만 해'라고 하셨어요. 그때 '나는 소리를 그만해야 하나. 연기를 연습하지 말아야 하나' 이런 혼란도 왔었어요. 남들보다 목이 많이 약했다 보니까 지치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죠."

하지만 그럼에도 신예은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정년이' 속 국극 무대를 완성도 있게 꾸몄다. 그는 "레슨을 오래 해주시진 않았다. 소리는 많이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스스로 고음에 접근할 때까지 연습했다. 8시간 정도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막막하긴 했죠. 만약 작품 들어가기 전에 한 달의 시간만 있었다고 했다면 저는 이 작품이 너무 탐났더라도 안 했을 것 같아요. 한다고 했는데 제가 제대로 못 하면 안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정년이'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중간에도 계속 연습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무용수처럼 완벽한 모습은 못 보여드려도 나중에 다 끝났을 때 '이거 한 번만 더 할 걸 그랬다' 이런 후회는 안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완성한 작품인 만큼 신예은은 '정년이'를 떠나보내는 게 많이 아쉬웠다고 전했다. 특히 마지막 방송을 볼 때는 눈물까지 흘렸단다. 그는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이제 마침표를 찍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서가 국극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처럼 저 또한 '정년이'를 통해 연기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동료들과 정말 오랜 시간 같이 연습하고 소통하면서 동료애도 많이 생겼고 작품에 임하는 마음과 대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이성적인 편이었다면 지금은 좀 감정적으로 바뀌기도 했어요. 많은 게 달라졌지만 저는 영서처럼 이제 스스로를 더 잘 챙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매번 모든 일을 다 즐길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즐길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subin7134@tf.co.kr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