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공미나 기자] '4대 기획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YG엔터테인먼트는 강력한 성장 동력이 없다. 간판 아티스트들의 이탈 속에서 그 자리를 메워야 할 그룹의 성장이 더디다. 세대교체를 이뤄야 할 타이밍을 한참 놓쳤다. 결정 권한이 집중된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의 제왕적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내는 모양새다.
YG엔터테인먼트는 간판급 아티스트가 부재하다. 캐시카우였던 블랙핑크 멤버들은 모두 회사를 떠난 상황에서 제한적인 팀 활동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음원 강자' 악동뮤지션, '군백기'를 보내고 있는 위너, 내년이면 벌써 6년 차인 트레저, 작년 11월 출격시킨 베이비몬스터 등이 있지만 다른 대형 기획사 최정상급 그룹들과 비교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
YG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야심차게 밀고 있는 베이비몬스터는 지난해 11월 프리 데뷔 이후 지난 4월 멤버 아현이 합류하며 정식 데뷔를 알렸다. 이들은 지난 1년간 디지털 싱글 'BETTER UP(베터 업)', 첫 번째 미니앨범 'BABYMONS7ER(베이비몬스터)', 정규 1집 'DRIP(드립)' 등을 발매했으나 이들의 성장 속도는 경쟁 그룹과 비교했을 때 더딘 편이다.
베이비몬스터는 아직 히트곡이 없다. 타사 걸그룹이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과 비교된다. 에스파 'Next Level(넥스트 레벨)', 뉴진스 'Hype boy(하입 보이)' 'Attention(어텐션) 'Ditto(디토)', 아이브 'ELEVEN(일레븐)' 'LOVE DIVE(러브 다이브)' 'After Like(에프터 라이크)', 아일릿 'Magnetic(마그네틱)' 등이 모두 데뷔 1년 안에 나온 메가 히트곡이다.
팬덤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초동(발매 후 일주일) 면에서 베이비몬스터의 성적은 나쁘지 않다. 'BABYMONS7ER'가 초동 약 40만 장을 기록하며 걸그룹 데뷔 초동 신기록을 세웠고, 'DRIP'은 초동 67만 장을 넘기며 성장세를 보였다.
다만 경쟁 팀들도 음반 판매량이 높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음원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동시에 음반 판매량도 빠르게 늘려갔다. 주요 기획사 4세대 걸그룹 대부분이 히트곡도 있고 '밀리언셀러' 타이틀을 달고 있는 가운데 베이비몬스터는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
2020년 데뷔한 트레저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이면 데뷔 6년 차를 맞는 이들은 YG엔터테인먼트의 기둥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 타사 간판 보이그룹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과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데뷔해 소속사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는 하이브 소속 투모로우바이투게더(2019년 데뷔)나 엔하이픈(2020년 데뷔)과 크게 비교된다.
더욱이 트레저 이후 차기 보이그룹도 나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이뤄야 할 시기지만 이 마저도 기약이 없다. '좋은 인재를 데리고 있어도 보석처럼 숨겨 놓는다'는 뜻에서 '보석함'이라고 불릴 정도로 YG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데뷔 텀은 긴 편이기 때문이다.
하이브·SM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주요 기획사들은 '멀티 레이블' 방식을 도입했다. 멀티 레이블은 기획사들이 기존에 구축해 온 제왕적 경영을 벗어나 효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한 방식으로 통한다. 규모가 커진 K팝 기획사들에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멀티 레이블 체제의 도입은 필수불가결하다.
멀티 레이블 체제의 효시로 꼽히는 JYP엔터테인먼트는 제작본부를 나눠 아티스트를 관리했다. 이를 통해 본부별로 자율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성과도 측정해 일종의 경쟁 이식도 부여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빌리프랩 등 여러 레이블이 모여 있는 하이브도 각 레이블별로 결정권을 갖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기점으로 제작센터를 여러 개로 나눴다. 인력 분배와 컨펌 체계가 효율적으로 변한 SM엔터테인먼트는 이전보다 가수들의 앨범 발매가 더 활발해졌다.
반면 YG엔터테인먼트는 명목상 멀티 제작 체제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 한 명의 선택과 결정에 좌우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는 트레저와 베이비몬스터와 활동 계획을 공식 영상을 통해 직접 발표하는 등 전반에 전면으로 나서고 있다. 얼굴 마담 역할까지 직접 하고 있는 것.
이 같은 방식은 YG엔터테인먼트의 유연한 변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왕적 리더십은 단점도 있지만 제대로 발휘했을 경우 빠른 의사결정과 신속한 업무진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 반면 그 반대의 경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의 YG엔터테인먼트 행보는 후자에 가깝다.
이미 오래 전부터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은 SNS와 방송에서 앨범이 나오지 못하는 게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 탓이라는 뉘앙스를 종종 내비쳤다. 회사도 가수도 잘 나갈 때는 그나마 웃어넘길 수 있지만, 사실상 YG엔터테인먼트의 고질적인 문제와 잠재적인 리스크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리스크가 현실화 돼가고 있는 모양새다.
획일화된 음악과 미감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는 K팝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양현석 총괄의 색깔이 짙게 묻어나는 베이비몬스터는 데뷔 이후 줄곧 음악이나 뮤직비디오 등이 '촌스럽다'는 평을 받았다. 시대는 변했으나 YG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싱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K팝은 이제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서 하나의 산업이 됐다. 기업에 신제품 출시는 영속성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요한 일인 것처럼, 엔터테인먼트사에서 꾸준히 앨범을 내고 신인을 성공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시대적 운영 방식을 고수하며 위기를 자초한 YG엔터테인먼트는 이제 과감한 변화를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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