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누구에게나 처음은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이 된다. 배우 노상현도 이를 기다리고 있다. 늘 직접 부딪히고 경험을 쌓으며 성장한 그가 또 한 번 도전을 펼친 스크린 데뷔작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배우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를 채워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노상현은 오는 1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에서 흥수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자신의 스크린 데뷔작의 개봉을 앞둔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난 그는 영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전하고 8년 동안 걸어온 배우의 길도 되돌아봤다.
작품은 눈치 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 분)와 세상과 거리 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노상현 분)가 동고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 영화다.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 중 '재희' 챕터를 원작으로 하며 영화 '탐정: 리턴즈'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노상현이 연기한 흥수는 성소수자로 남자를 좋아한다. 그동안 대중이 작품에서 많이 접했던 보편적인 캐릭터와 다소 거리가 멀기에 캐스팅 난항을 겪었다. 그렇기에 메가폰을 잡은 이언희 감독은 노상현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인물의 설정값이 자신에게는 전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는 그는 "이런 시련들 때문에 안 하고 싶지 않았어요. 스토리 라인이 너무 재밌었고 소재도 신선했죠. 설정 하나 때문에 망설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라고 덤덤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노상현은 '대도시의 사랑법'의 어떤 점에 끌렸던 것일까. 바로 매력적인 서사를 가진 흥수라는 인물과 작품의 메시지였다.
"성장 과정에서 흥수가 가진 아픔과 자신을 이해받지 못하면서 느낀 고립감과 수치스러움 등 억눌린 감정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며 "이를 유일한 친구인 재희가 어루어만져주면서 흥수가 떳떳해지고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을 찾아가잖아요. 이 메시지가 너무 좋았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대조되는 부분도 좋았고요."
이번 작품을 위해 성소수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수라는 인물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노상현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캐릭터와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는 그는 "누구에게나 남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잖아요. 그것이 의도치 않게 알려지면 수치심과 두려움, 불안을 느끼게 되죠. 이는 모두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털어놨다.
"취향은 코어에 근접한 요소의 가치잖아요. 성별과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취향도 바꿀 수 없어요. 그런데 코어의 정체성 중 하나를 거부당했을 때 오는 수치심은 굉장히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큰 아픔이고 상처가 됐을 거고요. 성소수자들을 만나면서 더욱 몰입이 됐어요. 그들의 감정과 스토리를 들으면서 더 진심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문제라서 훨씬 더 진지해졌죠."
학교도 여자도 흥미가 없는 흥수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비밀을 재희에게 들키고 만다. 하지만 재희는 흥수의 비밀을 소문내지 않고 동기로부터 아웃팅(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 폭로됨) 당할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고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한다.
노상현의 표현을 빌려 흥수가 재희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시발점이 되는 장면을 통해 오직 둘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재희와 흥수는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들을 뒤로한 채 의기투합 동거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나다움을 찾아가고 인정한다.
이를 만난 노상현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안고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 변화하는 인물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흔들리는 청춘의 얼굴을 꺼낸다. 여기에 춤추고 노래하며 반전 매력도 발산한다.
이렇게 배우로서 보여줄 게 많은 지점이 있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그는 "감정표현이 없고 마음을 닫고 있지만 유일하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재희와 있을 때는 자유분방하게 감정표현을 할 수 있었거든요. 이를 확실히 구분 지으려고 했어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되게 재밌었죠"라고 환하게 웃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노상현은 류승범의 작품을 보고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단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연기 경험을 쌓았고 애플TV+ '파친코'에서 선자(김민하 분)의 남편 이삭으로 분해 '병약 섹시'라는 수식어와 함께 글로벌 인지도를 쌓았다.
이후 그는 드라마 '커튼콜'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디즈니+ '사운드트랙#2' 등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특히 노상현은 목사부터 성소수자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들을 연기하면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도 입증했다.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본 그는 "왜 저에게 이렇게 극단적인 롤들이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특색있고 재밌는 것 같아요"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배우라는 직업의 장점인 것 같아요. 두려움도 느끼지만 도전해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된 캐릭터들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흥수를 연기할 때도 부담되는 지점은 없었어요. 배우니까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고 싶거든요.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더 넓은 스펙트럼이 될 수 있잖아요."
'대도시의 사랑법'은 노상현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재밌는 작품에서 대체 불가한 활약을 펼쳤던 그가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혀 다른 결의 캐릭터를 소화한 노상현은 "저는 작품에 따라서 출연을 결정하는 편인데 작품마다 결이 다르고 원하는 게 다르니까 늘 새롭게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유동적이고 빨리 적응해야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나의 결만 고집하고 제가 잘하는 것만 하고 싶지 않아요. 도전해 보고 성장하고 싶어요"라고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스크린을 통해 대중과의 만남을 앞둔 노상현이다. 그는 "담백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작품 자체가 너무 좋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도 있었거든요. 이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이 있어요.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