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사월과오월은 70년대 서정적인 노랫말로 통기타의 붐을 일으켰던 포크계의 상징 보컬 듀오다. 리더 백순진을 필두로 김태풍 김정호 이수만 등이 번갈아가며 멤버로 활약했다.
71년 중앙대 작곡과에 재학중이던 백순진은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하던 이수영을 통해 친동생 이수만을 소개받았다. 이수만은 음악다방에서 오디션을 거쳐 첫 앨범을 녹음했다. 그런데 녹음만 하고는 건강상의 이유로 빠지고 김태풍이 합류했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 '화'는 백순진이 연인에게 바친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수만 특유의 보이스가 매력적으로 와닿는다. 가수보다는 방송 MC를 거쳐 훗날 SM 수장이 되는 이수만은 이곡을 통해 당시 목소리만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셈이 됐다.
75년 김태풍이 유학을 떠나고 고 김정호가 영입됐지만 성격상 주변의 간섭을 싫어했던 김정호는 두 달 만에 사월과오월을 탈퇴한다. 결국 2기 멤버 김태풍이 다시 합류하게 되고, 김정호는 DJ 이종환의 주선으로 유니버샬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화', '등불', '장미', '옛사랑', '바다의 여인', '욕심없는 마음' 등 사월과오월이 불러 히트한 곡은 많다. 이중에서도 포크송이 한참 유행할 무렵 백순진과 이수만이 듀오로 부른 곡 중에서는 '옛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어스레한 등불의 밤이/ 외로움에 아픈 마음에 차곡 차곡 쌓입니다/ 우리님이 가신 뒤에는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 하염없이 긴긴 밤들을 싫도록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화요일은 옛님과 헤어 지던날/ 전날에 즐거웠던 일들이 추억에 물들은 날/ 잊지 못할 옛사랑'(사월과오월 '옛사랑' 가사)
팀의 리더 격인 싱어송라이터 백순진 작사 작곡(편곡)의 이 곡은 포크 블루스 장르다. 73년 첫 독집 타이틀로 발표됐다가 2006년 CD로, 2015년 LP로 재발매됐다. 가요팬들 사이에선 지금도 '바다의 여인'과 함께 가장 많이 기억하는 추억의 노래로 꼽힌다.
사월과오월은 발표하는 음반마다 포크 록 장르의 명반으로 평가받았다. 리더 백순진의 의지에 따라 이들은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는데 그 결과 다채롭고 공간감 깊은 밴드 사운드를 구현해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5인조로 탄생한 '들개들'이다. 듀오 활동을 병행하면서 포크 록 밴드를 결성한 것인데 키보드 민병진, 드럼 김찬, 리드 기타 백순진, 세컨드 기타 김태풍, 리드 보컬 이수만으로 구성됐다.
1974년 7월 13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밴드 창립 기념 공연을 열지만 별도 음반을 남기지는 않았다. 다만 신세계레코드의 '골든 포크앨범 9집' 재킷 모델로 흔적을 남겼었고 김정호와의 친분으로 영화 '이름 모를 소녀'에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이 무렵 발매된 정규 3집은 따라 부르기 쉽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로 사랑받았다. 이 앨범에서는 단순한 포크송이 아닌 포크 록을 선보였는데 앞서 73년 발표한 정규 2집에서 이미 통기타 음악을 벗어나려는 시도와도 무관치 않다.
사월과오월은 당시 유명했던 포크듀오 둘다섯, 어니언스 등과 함께 각종 MT와 OT, 캠프파이어 등에서 단돌 초청되는 인기 그룹이었다. 특히 사월과오월이라는 명칭은 국내 가요계에서 최초로 우리말로 지은 이름이다.
60~70년대엔 에드포, 라나에로스포, 투에이스, 트윈폴리오, 어니언스 등 영어 그룹명을 선호했다. 처음부터 한글이름으로 데뷔한 듀오는 사월과오월이 처음이다. 싱어송라이터 백순진이 늘 중심이었다.
백순진은 한때 뮤지컬배우로도 활약했고, 샤프항공 주식회사 CEO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샤프국제항공 주식회사 CEO 대표이사 부회장, 한국항공운송총대리점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14년 함께 하는 음악저작인협회 이사장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