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차승원에게 '폭군'은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영화 '낙원의 밤'으로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박훈정 감독과 재회하게 된 작품인 만큼 차승원은 그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임상 역에 완전히 몰입한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었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박훈정 감독의 믿음으로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차승원이다.

차승원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극본·연출 박훈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폭군 프로그램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청소부 임상 역을 맡은 차승원은 "영화 개봉을 앞둔 것과 다른 긴장감이 든다. 그래도 매력적인 작품에 참여하게 돼서 굉장히 좋다"고 공개 소감을 밝혔다.

'폭군'은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 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추격 액션 스릴러다. 작품은 총 4부작으로 지난 14일 전편 공개됐다.

차승원이 맡은 임상은 현역 시절 명성을 떨친 전설의 요원이다. 은퇴 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퇴직금으로 운행을 멈춘 기차를 장만했고 내부를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타깃을 제거하는 청소부 역할을 자처하며 돈을 모으는 중이다.

임상은 평소에는 공손한 말투와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영락없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하지만 업무를 수행할 때는 거대한 산탄총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무자비한 해결사로 돌변한다. 폭군 프로그램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리지만 관련되지 않은 인물을 마주할 때는 조금 어리숙한 모습을 보인다.

차승원은 이런 임상의 이질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공무원처럼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설정했다. 청소부 역할을 즐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며 "그래서 총을 들 때는 굉장히 민첩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외에 행동들은 모두 굼떠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 제 애드리브가 굉장히 많았어요. 자기 일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민첩한 모습을 보이지만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만났을 때는 조금 어리숙해 보이죠. 고등학생한테 끌려가면서 제가 말이 많은 이유도 그러한 연결 선상에서 생각했어요. 이런 것들이 액션하는 장면이랑 대비된다면 캐릭터가 더 입체화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죠."

차승원은 맨몸 격투, 칼, 총기 액션까지 각 인물들의 상황과 능력에 따른 다채로운 액션을 선보였다. 근접 거리에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산탄총을 주된 무기로 깔끔하면서도 화끈한 액션을 보여줬다. 먹던 핫바의 꼬치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는 등 색다른 액션으로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극 중 자경(조윤수 분)과의 치열한 사투가 차원이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차승원은 이 장면을 위해 2주 동안 꾸준히 연습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윤수하고 저하고 키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보니까 부상의 위험이 있어서 연습 기간이 좀 길었어요.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액션이 많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윤수가 좀 많이 다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윤수가 욕심을 계속 부리더라고요. 힘의 균형은 비등하지만 싸움 실력은 윤수가 저보다 더 뛰어나게끔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임상과 최 국장(김선호 분)과의 관계 또한 '폭군'을 즐길 수 있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비밀리에 폭군 프로그램을 운용해 온 최 국장, 그리고 그의 곁에서 걸림돌을 모두 제거하는 임상. 마지막에 최 국장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임상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주지만 최 국장은 임상이 올 거라고 믿고 있던 것처럼 놀라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차승원은 "임상도 최 국장을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고 최 국장도 임상의 수행 능력을 인정해 줬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임상이 최 국장의 선배예요. 어떤 부류든 아무리 후배라도 되게 어른 같아 보이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이 있잖아요. 그게 아마 최 국장이었을 것 같아요. 온전히 모든 걸 다 맡겨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 임상은 현장에서 일을 수행하는 능력은 훌륭하지만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이 있는 인물은 아니었을 거예요. 최 국장도 임상의 수행 능력을 인정했고 자신이 꿈꾸는 사상도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임상에게 일을 맡겼을 것 같아요."

차승원은 앞서 영화 '낙원의 밤'으로 박훈정 감독과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바 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폭군'에서 함께 보여줄 시너지에 많은 기대가 모였다. 차승원은 "처음에 감독님한테 '왜 나한테 이 역할을 주세요?'라고 물어봤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근데 감독님께서 '그냥 잘하실 것 같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저를 믿어주신다는 게 정말 감사했죠. 그래서 조금 더 시나리오를 살펴보고 현장에서 액션을 취할 때 더 신경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나를 이 정도까지 생각하고 믿어주고 있는데 나도 그거에 준하는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늘 들었던 것 같아요.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어요."

차승원은 오랜 기간 박훈정 감독과 얘기를 나눠 임상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임상이 요원이었을 당시 남들하고 같이 식사도 안 했을 거고 도시락을 싸서 혼자 먹었을 것 같단다. 이러한 사소한 얘기를 나눈 게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됐고 이 과정 자체가 재밌었다고 전했다.

차승원이 임상에게 완전히 몰입한 덕분에 그의 행동을 유추할 수 있었고 덕분에 캐릭터 성격에 맞는 애드리브 장면이 탄생했다. 박훈정 감독 또한 임상을 소화할 차승원을 믿었다. 두 사람의 믿음이 시너지를 발휘해 차승원 표 임상이 탄생했다.

"처음에 기자로 신분을 속이면서 폭군 목격자를 죽이는 장면이 나와요. 거기서 머리를 만지면서 '너무 발랐나', 죽인 뒤에 손을 씻는 장면도 모두 다 애드리브예요. '임상이라면 이런 걸 한 번 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했던 행동들이에요. 장면을 거듭할수록 캐릭터가 더 촘촘해지면서 몸에 익었고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에는 안 나오는 행동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것 같아요. 박훈정 감독님이 이런 건 저한테 많이 열어주시는 편이어서 마음 놓고 할 수 있었어요.(웃음)"

1988년 패션모델로 데뷔한 차승원은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영화 '선생 김봉두' '낙원의 밤' '독전', 드라마 '최고의 사랑' '우리들의 블루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온 차승원은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차승원은 "많이 누리고 사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 정도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해요. 배우로 활동하면서 절제해야 하는 것들도 물론 많지만 이 직업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것들도 정말 많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심하면서 특별한 일 없이 오래오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그러다가 또 다른 제 얼굴을 발견해 주는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 순간 느끼는 희열을 에너지 삼아서 계속 변주해 나가고 발전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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