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전도연이 데뷔 34년 차에 또 한번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여전히 작품이 고프고 현장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천생 배우이기에 가능한 행보다.
전도연은 영화 '리볼버'(감독 오승욱)에서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수영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개봉을 앞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난 그는 "'우리 영화가 이렇게 웃겼었나?' 싶었어요"라고 말문을 열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전도연은 "대본상으로 블랙코미디 장르가 아니었는데 영화를 보니까 블랙코미디더라고요. 8월에 개봉하다 보니까 시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할 때는 그렇게까지 재밌는지 몰랐고요. 좋은 느낌의 당황이었달까요"라고 영화를 본 소감을 솔직하게 전했다.
작품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수영(전도연 분)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뢰한'(2015)으로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며 세밀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오승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리볼버'는 작품 갈증이 있던 전도연이 당시 어두운 대작을 쓰고 있던 오 감독에게 '밝고 경쾌한 저예산 작품을 하나 하자'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넷플릭스 '길복순'을 찍기 전이라서 작품적으로 텀이 있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작품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안했고 감독님도 흔쾌히 동의했어요"라며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은 경쾌하고 통쾌한 게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완성된 걸 보니까 재밌어서 당황스러웠죠"라고 회상했다.
이렇게 '무뢰한' 이후 9년 만에 오승욱 감독과 재회한 전도연이다. 감독이 같기 때문에 두 작품에서 비슷한 무드를 느낀 그는 관객들에게 비슷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그렇게 감정을 최대한 걷어내고 차갑고 건조한 얼굴을 완성한 전도연은 무표정함 위에 다층적인 감정을 입히며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수영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얘기만 반복하잖아요. 대사도 많지 않고 무표정이니까 똑같은 걸 반복하는 느낌이라서 지루했어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색이 수영에게 묻어져서 더 다채롭고 다양한 느낌의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리볼버'에 색을 불어넣지 않았다면 보기 힘든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제가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임지연과 지창욱을 만난 소감을 전했다. 먼저 임지연이 자칭 '한예종 전도연'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그는 "서로의 일에 집중했어요. 윤선이를 임지연이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당차고 일을 열심히 하더라고요. 촬영이 끝나고 홍보 활동을 하면서 저 친구가 재밌고 귀엽다는 걸 알았어요. 그전에는 윤선이를 연기하니까 나오는 텐션인 줄 알았거든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일명 '향수 뿌린 미친개'라고 불리는 앤디 역을 맡아 광기 어린 얼굴을 꺼낸 지창욱에 관해서는 "이번에 처음 같이 해보면서 '연기를 이렇게 잘하는 배우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사실 대본상 앤디는 뭐가 별로 없는 인물이었거든요. 지창욱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거예요. 그래서 놀라웠어요. 실제로 앤디 같은 모습을 갖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라며 웃어 보였다.
또한 특별출연으로 힘을 보탠 이정재도 언급했다. "그분은 늘 똑같다"고 말한 전도연은 "시간이 지나도 젠틀하고 한결같아요. 솔직히 바쁘신 분이 이 현장에 있는 걸 보면서 '이정재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뿐만 아니라 9년 만에 재회한 오승욱 감독을 향한 애정도 내비쳤다. 알고 지낸 시간만큼 감독과 배우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를 알아갔기에 보다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전도연은 "'무뢰한' 때 감독님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날카로운 글이 좋았는데 현장에서는 되게 타협하는 편이었어요. 저도 김혜경을 연기하면서 날이 서 있는 상태라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감독님이 원하는 걸 다 해보고 싶었어요. 긴 시간 동안 감독님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인간적으로 편해져 있었고요"라고 말했다.
1990년 CF로 데뷔한 전도연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고 '밀양'(2007)으로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렇게 그는 대체 불가한 행보를 걸어오고 있지만 대중의 예상과 달리 작품이 많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배우로서 갈증을 느끼는 시기도 찾아왔다고.
특히 전도연이 오승욱 감독에게 밝고 경쾌한 작품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도 말이다. 이후 tvN '일타 스캔들'로 대중에게 밝은 작품을 선보였고 넷플릭스 '길복순'으로 보다 감독들에게 편한 배우라는 이미지를 심어줬고 또한 27년 만에 연극 '벚꽃동산'을 통해 무대를 사랑하게 된 그다.
이날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본 전도연은 "자랑스러워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냐고 따지면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회자될 수 있는 작품을 찍어왔거든요. 앞으로도 제 필모그래피에 누가 되지 않을 작품으로 채워나가고 싶어요. 잘 산 거 같아요. 열심히 타협하지 않고 전도연스럽게요"라고 자신했다.
"사실 칸에서 상 받았을 때 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기대가 없어졌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은 것 같아요. 제가 식물을 보면서 '어떻게 한결같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개하고 또 지고요. 저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만개한 상태가 영원할 것 같지만 또 죽은 것 같다가 또 살아나잖아요. 이게 반복인 거 같아요. 제가 가진 모든 걸 영원히 누릴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이건 찰나였듯이요. 앞으로 계속 그럴 것 같아요."
배우로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여전히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도연은 "이 일을 하면서 계속 뭔가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비워야되는 거더라고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비워내려고 했어요. 이게 저를 버티게 하는 시간이었고 저는 결국 연기할 때가 제일 저답고 즐거운 것 같아요. 아직도 현장에서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라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끝으로 전도연은 "'리볼버'는 묵직하고 씁쓸함을 안기기보다 블랙코미디 장르에 더 가깝지만 이야기는 단순하거든요. 단조롭고 서사도 약하지만 이를 완성하는 건 출연한 배우들이에요. 감독님이 배우들의 향연이라고 말씀하시는 데 영화를 보면 아실 거에요"라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