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작품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배우이자 동료가 세상을 떠나면서 개봉을 앞두고 홀로 모든 홍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주지훈이다. 지인으로서 안타깝고 가슴도 아프지만 배우로서는 다른 작품과 똑같은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낀다는 그의 '탈출'을 만났다.
고(故) 이선균의 유작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 이하 '탈출')가 12일 스크린에 걸렸다. 이에 앞서 주지훈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났다. 영화 개봉을 앞둔 그가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는 건 늘 있는 일이지만 작품과 관련된 이슈가 있는 만큼 이전과 다른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의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선균은 지난해 10월부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총 3차례에 걸쳐 진행된 간이 시약 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모두 부인하던 그는 지난해 12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 가운데 '탈출'을 선보이게 된 주지훈은 "늘 떨리고 두근거려요"라고 덤덤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선균을 편하게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먼저 그를 떠나보낸 것에 관해서는 "지인으로서 가슴 아프죠. 어떤 일이었어도 안타까웠을 거예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또한 이번 작품을 통해 이선균과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춘 주지훈은 "너무 좋았어요. 둘 다 연기를 오래 했잖아요. 리허설도 철두철미하게 했고 이상하거나 불편한 건 솔직하게 말했죠. 다 베테랑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자신의 의사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도 비슷했고요. 자유롭게 연기했어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을 겪었지만 이로 인해 배우로서 더 큰 압박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주지훈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비공식작전' 개봉을 앞두고 <더팩트>와 만났을 때와 똑같았기에 이러한 답변에 더욱 힘이 실렸다.
주지훈은 "저는 데뷔 때부터 주연이었어요"라고 기자들을 웃게 하면서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이 정도의 압박감은 늘 있죠 인터뷰도 늘 혼자 하지 누구랑 같이 한 적 있나요"라고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마치 '탈출'의 조박(주지훈 분)처럼 말이다.
작품은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지훈은 인생 한 방을 노리는 렉카 기사 조박 역을 맡아 긴장감 넘치는 재난물에서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는 노란색 브릿지가 돋보이는 장발과 지저분한 주유소 옷을 입고 지금껏 본 적 없는 비주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본을 읽자마자 느낀 필(feel)대로 탄생한 스타일이라는 주지훈은 "조박이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손님의 돈을 빼돌리는데 1990년대 초반에 그런 형들을 봤거든요. 학교도 안 가고 자아를 표출하는, 그런데 나이도 어리고 돈도 없으니까 맥주로 머리를 감는 그런 이미지요"라고 캐릭터 구축 과정을 밝혔다.
"선입견을 갖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를 설득시키기 위해 예시로 드는 선입견은 활용하기 나름이죠. 불편하지 않게 잘 활용하면 아주 쉽게 설득시킬 수 있어요. 비틀면 신선하고요."
주지훈과 '신과 함께' 시리즈를 함께한 VFX(시각특수효과) 회사 덱스터 스튜디오가 '탈출' CG 기술에 참여했다. 헬기 추락과 다리 붕괴 등 규모감을 보여주는 장면부터 실험견들까지 생생하게 구현하며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 가운데 그는 오롯이 상상력에 의존해 많은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실제로 소화한 분량도 상당했다고. 특히 조박이 화려한 불 쇼를 펼치는 장면도 직접 연기한 거라고 전해져 놀라움을 안겼다.
이로 인해 침샘에 염증이 생겼다는 주지훈은 "호기롭게 하겠다고 했는데 제 뇌는 무서웠나 봐요. 뿜어내는 압력이 제 의지보다 커서 침샘 안으로 위스키가 들어갔대요. 며칠 고생했죠"라면서도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던 인물이 동료애가 발현되는 상황이라 전문가처럼 하지 않아도 됐어요. 제가 진짜로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라고 직접 소화한 이유를 밝혔다. 현장에 차력사가 준비돼 있었으나 직접 입으로 불을 뿜기를 택한 그의 남다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고통과 맞바꾸면서 탄생시킨 장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실제로 큰 몸을 작은 자동차 트렁크에 욱여넣었다는 주지훈은 "CG 분량이 그렇게나 많은데 트렁크 연기를 왜 실제로 시켰는지 의문"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실제로 너무 좁고 힘들었는데 앵글로 볼 때는 덜 좁아 보여서 일부러 더 몸을 구겨야 했죠. 많이 아팠어요"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최근 주지훈이 내놓은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흥행과 다소 거리가 멀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대중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지고 영화계의 위기가 이어지면서 그도 이전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는 것. 이에 주지훈은 "다 같이 결과물을 두고 분석하지만 수학도 아니고 답을 찾을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화를 많이 하면서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조롱과 비난은 무시하지만 비판은 수용한다는 주지훈은 극 중 조박의 톤이 다소 튄다는 의견이 나오자 "은색슈즈처럼 튀는 맛"이라면서도 굳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다른 감상평을 꺼낸 것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떤 이유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면 작품에 출연하거든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당연히 다를 거고 조박이 튄다고 느꼈다면 제가 굳이 할 말은 없어요.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던 '탈출'은 140개국에 선판매되며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에 주지훈은 "재난을 맞닥뜨린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이죠. 실험견들이 등장하지만 관객들이 얘네를 따라가는 게 아니에요. 저희 작품의 가치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팝콘 무비로서의 매력도 있고 재밌어요"라고 자신하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