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목숨 걸고 탈주하는 규남과 배우의 꿈을 꾼 이제훈. 얼핏 보면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끝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을 듯이 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게 해준 인물을 연기한 이제훈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명확한 메시지에 공감했고 평소 함께하고 싶었던 배우와 첫 호흡도 맞췄다. 그렇게 그는 전혀 후회 없는 '탈주'를 완성했다.
이제훈은 7월 3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에서 내일을 향해 질주하는 규남으로 분해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자신을 성덕(성공한 덕후)로 만들어준 '탈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품은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 분)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다. 이 가운데 규남은 군사분계선 인근 최전방 부대에서 10년 만의 제대를 앞둔 중사로,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나 실패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곳으로의 탈주를 꿈꾸는 인물이다.
규남을 만난 이제훈은 꿈을 향해 사투를 벌이는 인물의 간절함과 처절한 몸부림을 표현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제한하면서 체중 감량을 했고 거친 수풀과 진흙 늪을 지나는 힘든 촬영도 직접 소화하면서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연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누군가는 무모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탈주하는 규남을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그의 믿음이 돋보인 지점이다.
"제가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멈추거나 넘어지면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로 달렸어요. 뒤로 가면 갈수록 마른 장작처럼 피골이 상접하는 규남을 표현하고 싶어서 먹는 것도 제한했고요. 매일 운동하고 건강관리를 해서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0살에 목도하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너무 많이 달리니까 무릎이 안 굽혀지기도 했어요.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미안했죠. 결국 고질병이 생겼는데 '탈주'를 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탈주'는 이제훈을 성덕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는 202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로 객석에 앉아 있는 구교환을 언급하며 하트를 날렸고 이후 '탈주'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된 것. 이날 자신의 사심을 가득 담은 적극적인 어필이 통하면서 구교환과 배우 대 배우로 첫 호흡을 맞추게 된 순간을 회상한 이제훈은 "감독 구교환과 배우 이제훈의 만남도 상상하게 됐어요"라고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진짜 성덕이 됐죠. 시나리오의 대사와 표현을 보면서 '어떻게 연기하겠다'라는 예상을 하는데 구교환의 연기는 독특하면서도 재밌고 특별한 지점이 있어서 감탄하면서 봤어요. 극 중 현상이 립밤과 핸드크림을 바르는 단순한 설정을 독특한 매력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서 '관객들이 구교환에게 더 빠져들겠다. 출구는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돼요. 형이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서 '시켜주는 거 할 테니까 불러달라'고 했어요(웃음)."
이어 이종필 감독의 꼼꼼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여러 일화를 전하면서 그를 향한 두터운 믿음도 내비쳤다. 이종필 감독으로부터 규남의 세계와 인생이 디테일하게 적혀있는 수많은 페이퍼를 받았다는 이제훈은 "감하고 몰입하는 것 외에 제가 더 준비할 게 없었어요. 다음날 찍어야 되는 신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도 문자로 길게 보내주셨고요. 이렇게 감독님이 헌신의 글을 적어주시니까 허투루 할 수 없었죠. 더욱 진심을 담아서 연기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앞서 구교환은 <더팩트>와 만나 '탈주'를 선택한 이유로 이종필 감독과 이제훈을 꼽았다. 그렇다면 먼저 출연을 결정한 이제훈은 '탈주'의 어떤 지점에 끌렸을까. 목숨 걸고 탈주하는 규남을 보면서 배우의 꿈을 꾸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는 그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메시지가 분명했어요. 규남의 용기가 멋있었고 인간으로서 공감도 많이 됐죠"라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말렸거든요. 그래도 배우의 꿈을 키웠고 불확실성이 크지만 계속 도전했어요. 그 삶이 지금까지 이어졌고요. 불확실성이 있는 꿈이 실패할 수 있지만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규남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공감이 많이 갔어요. '내 갈 길은 내가 정한다'는 대사가 이 작품의 핵심이거든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죠. 각자가 설정한 목표와 꿈에 다가가는 방법과 속도는 다를 수 있지만 노력은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삶의 믿음이 있어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꿈을 꿨던 이제훈은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며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이렇게 큰 스크린을 자신의 얼굴로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룬 게 아닌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고 표현한 그다. 이는 작품을 향한 평가가 더욱 냉정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자신이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잘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꿈에는 완성이 없더라고요. 행복하기 위해 괴로운 순간을 많이 목도하면서 '이 삶이 옳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저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운명인 것 같아요. 작년에 죽음을 맞이할 뻔했어요. 억울했고 이제 막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막상 눈을 뜨니까 예전처럼 집중하고 몰두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타고 태어난 것 같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데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늘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배우라는 일에 책임감과 압박감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느끼고 있는데 그럼에도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서 저라는 사람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싶거든요. 100명 중 99명이 저를 사랑해도 1명이 싫어하면 그 한 명을 신경 쓰는 타입이에요. 반대로 99명이 저를 싫어해도 1명이 저를 응원해 주면 그 사람을 통해서 인생의 빛을 발견하고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죠.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인생을 살고 저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동안 여러 영화에 특별출연하며 관객들과 만났지만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를 스크린에 거는 건 '도굴'(2020) 이후 4년 만이다. 이 가운데 드라마 '모범택시2' '수사반장 1958' 등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며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한 만큼 새롭게 선보일 작품의 흥행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이제훈은 흥행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을 내비치면서도 관객들과의 만남 자체에 큰 설렘을 드러냈다.
"매 순간 흥행 부담은 있어요.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게 설레면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도 커요. 그래서 개봉 당일과 그 주말에 무대인사도 더 잡아달라고 했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GV도 참석할 예정이고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