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문화영 기자] 맡는 작품마다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얼굴을 갈아 끼우는 이정은이다. 영화 '기생충' 속 가정부로 잘 알려졌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이정은 그 자체로 소화한다. 이번엔 '본캐(본 캐릭터)'는 취준생, '부캐(부 캐릭터)'는 시니어 인턴으로 변신해 20대와 50대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다.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한 이정은은 데뷔 초 줄곧 연극과 뮤지컬에서 활동했다. 이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서빙고 보살 역과 '미스터 션샤인' 함안댁 '쌈 마이웨이' 금복 역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출연하는 TV 작품마다 좋은 성과를 냈다.
이정은이 이름을 제대로 알린 건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다. 작품은 전원 백수로 살아가던 기우(최우식 분)네 가족이 부잣집에 기생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다.
극 중 이정은은 입주 가정부 국문광을 연기했다. 저택에서 일하는 오랫동안 일했지만 기우네 가족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를 쫓아낸다.
그러나 국문광은 지하실에 있는 남편을 챙기기 위해 다시 돌아오고 이때부터 그의 역할이 급격히 커진다. 특히 비를 맞은 채 인터폰으로 문을 열어 달라고 말하는 연기와 기우네가 모두 한통속임을 알게 되자 표정 말투가 바뀌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국문광의 재등장으로 영화의 분위기와 장르가 180도 바뀌었다는 호평이 쏟아졌고 그는 제40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인생 2막을 열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됐다. 그러나 이정은은 다음 작품 선택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2020년 영화 '내가 죽던 날'로 <더팩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기생충' 이후 부담도 느끼지만 계속 연기할 거다. 계속 잘할 순 없지만, 때로는 엎어지겠지만 그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정은은 이런 부담을 명품 연기로 해소했다. 이후 출연한 '타인의 지옥이다'(이하 '타지옥')에서 고시원 주인아주머니 엄복순을 맡은 그는 당시 원작인 웹툰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해 화제가 됐고 같은 해 출연한 '동백꽃 필무렵'(이하 '동백꽃')에선 딸을 버렸지만 치매에 걸려 돌아온 엄마로 변신해 공효진과 애틋한 모녀 관계를 그렸다.
'타지옥'에선 기괴한 분위기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르는 악역이었지만 '동백꽃'에선 언제나 딸을 지키는 엄마의 마음을 표현하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극과 극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후 '우리들의 블루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소년심판' '운수 오진 날' 등에 출연하며 억척스러운 생선가게 사장, 판사, 간호사 등 다양한 직업군을 연기했고 "해당 직업에 20년 이상 일한 사람 같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가운데 이정은은 20대와 50대를 오가는 캐릭터로 또 한 번 '천의 얼굴'을 보여준다.
JTBC 새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극본 박지하, 연출 이형민 최선민)는 어느 날 갑자기 노년 타임에 갇혀버린 취준생(취업 준비생)과 낮과 밤 올 타임 그에게 휘말린 능력 있는 검사의 기상천외한 인턴십과 로맨틱 코미디를 그린 드라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감성적인 멜로부터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코믹한 장르까지 선보인 이형민 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다. 극 중 정은지와 이정은이 각각 노화와 회춘의 굴레에 갇힌 '본캐' 이미진과 '부캐' 임순을 맡아 2인 1역을 선보인다.
이정은이 연기할 임순은 해가 뜨면 시니어 인턴으로 출근하는 중년 여성이지만 해가 지면 이미진으로 변신한다. 오랜 공무원 시험 준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이미진은 어느 날 30년이나 폭삭 늙어버린다. 거울을 보고 경악한 그는 이를 기회로 긴 백수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고 임순이라는 가명으로 서한지청 시니어 인턴에 도전한다.
임순은 몸만 50대이고 신체 두뇌 능력은 20대다. 능수능란한 중국어 실력을 뽐내고 엑셀 프로그램까지 뚝딱 해낸다. 그는 암벽등반부터 위장 침입까지 불가능한 미션을 깔끔하게 해내며 다재다능한 매력을 뽐낸다. 거침없는 그의 행보에 함께 일하는 계지웅(최진혁 분) 검사는 당황해하지만 불도저 인턴 임순의 활약에 남다른 '케미'가 형성된다.
앞서 이정은은 제작진을 통해 정은지와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한 비법으로 "정은지의 언어와 움직임을 구현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율동이나 말투까지 따라 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아이돌 출신인 정은지를 따라가긴 쉽지 않았다"며 "이미진이 주변 인물을 대하는 방식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무원 시험을 8년이나 준비한 취준생 미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미진이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출연 계기를 전했다.
이정은은 임순의 성격으로 '96년생' '칼퇴' '자전거를 탄 미스터리 여사님'이라는 키워드를 꼽은 뒤 "젊어서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하나 세상이 녹록지 않고 바라는 바를 이룰 땐 이미 나이가 들어있는 삶의 아이러니한 부분을 짚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감독은 이정은을 캐스팅한 이유로 "임순 역할은 젊은 감성과 그루브를 잘 이해하고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이정은이 임순을 해준 것은 최고의 축복"이라고 전해 본 방송에 기대감을 높였다.
이정은의 새로운 모습이 담긴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15일 밤 10시 30분에 첫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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