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문화영 기자] '대히트'는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다. 초능력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활용했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9일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극본 주화미, 연출 조현탁, 이하 '히어로는')은 남다른 능력을 지녔지만 아무도 구하지 못했던 남자가 마침내 운명의 여성을 구해내는 판타지 로맨스다.
작품은 첫 회 시청률은 3.3%(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으로 다소 밋밋하게 시작했다. 당시 tvN '눈물의 여왕' 종영 직후라 과연 어떤 드라마가 왕좌를 차지할지 눈길이 쏠렸지만 '히어로는'은 아쉽게도 그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이후 시청률은 3%대와 4%대를 왔다 갔다 하며 눈에 띌만한 상승세를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히어로는'은 조용히 호평받으며 화제성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방송 2주 만에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에서 6위에 올랐고 200만 시청수(누적 시청 시간을 타이틀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 760만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이 밖에도 K콘텐츠 온라인 경쟁력 분석 기관인 굿데이코퍼레이션 공식 플랫폼인 펀덱스(FUNdex)에 따르면 5월 2주 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 결과에서 작품은 전주 대비 53.6% 급증한 수치로 2위를 차지했고 4주 차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또 콘텐츠 커뮤니티 키노라이츠가 발표한 5월 5주 차 통합 콘텐츠 랭킹에서 4위 이름을 올렸으며 누구나 좋아할 작품을 의미하는 '키노인증작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5월 28일 기준 펀덱스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순위에서 천우희와 장기용은 나란히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종영을 2회 앞둔 6월 1주 차엔 무섭게 뒷심을 발휘했다. TV-OTT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조사에서 장기용이 2위를 차지했고 드라마 화제성으로는 1위를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4.9%로 최고를 기록했다.
6월 12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작품은 누적 시청 시간 1980만 시간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6월 3일~6월 9일 기준) 부문에서 3위를 기록, 5주 연속 글로벌 톱10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28개국에서 톱10 진입에 성공하며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가져왔다.
이렇듯 작품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감'에 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이점은 '초능력'자지만 '초능력을 못 쓰는 것'이다.
흔히 초능력 드라마(영화)라고 하면 주인공들이 능력을 사용해 무언갈 이뤄내는 걸로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은 JTBC '힘쎈여자 강남순'과 디즈니+ '무빙'은 초능력 가족이 악당을 물리치고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히어로는'은 다르다. 제목에 '히어로'라는 단어가 있지만 초능력을 상실한 주인공들은 한없이 우울해하고 상실감에 사로잡혀있다. 이들은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공감'은 시청자를 사로잡은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각각 우울증, 불면증, 과체중, 휴대폰 게임 중독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또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 병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저 초능력을 되찾기 위한 가족들의 이야기 같지만 작품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실생활에 밀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장기용은 타임슬립 초능력을 갖고 있어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일련의 사고로 능력을 상실한 복귀주를 연기 중이다. 한때 소명감 있는 소방관이었지만 딸이 태어난 날 동료가 화재 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우울증에 빠진다. 매일 술만 마시고 현실을 비관한다.
복씨 집안 기둥이자 복귀주의 엄마 복만흠(고두심 분)은 예지몽 능력을 갖고 있지만 불면증에 걸리게 된다. 복귀주의 누나이자 복씨 집안 철없는 딸 복동희(수현 분)은 과거 잘나가는 슈퍼 모델이었지만 급격히 체중이 불어난다. 몸이 무거워진 탓에 비행능력을 잃고 사귀던 남자들은 하나둘 떠난다.
복귀주의 딸 복이나(박소이 분)은 아침 등교부터 하교까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게임을 하느라 가족의 말을 듣지 않고 가족행사에도 불참한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선생님의 걱정을 산다.
그러나 갑자기 복씨 집안에 나타난 수상한 여자 도다해(천우희 분)를 만나고 변한다.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와 초능력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단절됐던 가족이었지만 대화가 싹튼다.
복귀주는 방을 청소하고 어두컴컴한 방을 벗어나 햇볕을 쬔다. 복만흠은 도다해를 의심하긴 하지만 불면증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한다.
복동희는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복이나는 휴대전화는 잠시 접어둔 채 도다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또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귄다. 이처럼 주인공들이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공감하고 그 모습을 자신에게 투영한다.
도다해 역시 아픔이 있고 제대로 된 가족이 없다는 점은 '쌍방 구원'의 서사를 만든다. 찜질방 패밀리는 피를 나눈 혈연이 아닌 서로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다. 두 가족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의 가족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뭉클함과 위로를 선사했다.
지난달 2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조현탁 감독은 "과거 '히어로'였을 때 가졌던 초능력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과정이 코믹하기도 짠하기도 처절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실적인 히어로물이라 '현실'과 '판타지'가 부딪힌다. 판타지를 현실적으로, 현실적인 걸 판타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며 "요즘 가족의 의미나 가치가 급변하고 있는데 들고 있으면 무겁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픈 게 가족이다. 그런 뉘앙스를 작품이 담았다"고 전했다.
조 감독의 바람대로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넘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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