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문화영 기자] 수사물에 최적화된 배우 이제훈이 추억의 박영한 형사로 완벽 변신했다. 아날로그 수사의 낭만으로 젊은 세대에게 카타르시스를, 박 반장 활약을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주며 전 연령대를 사로잡았다.
지난 18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수사반장 1958'(극본 김영신, 연출 김성훈)은 한국형 수사물의 역사를 쓴 '수사반장'의 프리퀄로 박영한 형사가 서울에 부임한 1958년이 배경이다. 야만의 시대, 소도둑 검거 전문 박영한 형사가 개성 넘치는 동료 3인방과 뭉쳐 부패 권력의 비상식을 상식으로 깨부수며 민중을 위한 형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배우 이제훈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수사반장 1958'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정의로운 청년의 모습을 갖고 있는 그는 거듭 10부작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미니시리즈를 했지만 16부작이 아닌 10부작은 처음이었다. 금방 끝나버린 아쉬움이 컸지만 감동도 어마어마했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올해 탄생 53주년을 맞은 '수사반장'은 18년간 880회 방송, 최고 시청률 70%를 넘은 레전드 수사 드라마다. 배우 최불암이 연기한 박 반장은 형사 캐릭터의 기준점이 됐고 지금까지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오마주로 활용되고 있다.
'수사반장 1958'은 첫 회 시청률부터 10.1%(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이제훈이 목표로 한 19.58%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마지막 회 10.6%로 MBC 드라마 흥행 계보를 이었다.
극 중 이제훈은 최불암이 연기한 박영한의 청년 시절이자 반장이 되기 전 이야기를 그린다. 박영한은 대책 있는 깡을 장착한 난공불락의 '촌놈 형사'다.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지만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쇠뿔 같은 단단함과 통찰력을 가졌다.
이제훈은 원조 박 반장 캐릭터를 완벽 소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톤 말투 등을 복사본처럼 따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최불암처럼 되지 않자 박 반장에 함몰되기 보다 최불암 그 자체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불암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단다.
"(최불암) 선생님이 박영한은 '범인을 잡고 싶은 화가 있다. 이를 가슴속에 새기고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처음부터 반장이 아니었기에 종남서에서 사건을 겪고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어요. 동료들을 만나고 박 반장이 됐을 때의 '성장 스토리'가 프리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선생님 말씀처럼 화를 분출하려 거칠게 했고 결혼 후 반장으로 가는 과정이 오리지널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했어요."
최불암은 첫 회와 마지막 회에 특별출연해 극의 풍성함을 더했다. 이제훈은 최불암의 연기가 진한 여운을 남겼으며 작품을 통해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영광과 스스로의 자랑거리가 남았다고 전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최불암이 진행하는 KBS '한국인의 밥상'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도 밝혔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드라마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잘 안 갔어요. 작품을 마무리하며 뿌듯하고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전설적인 국민드라마 프리퀄에 출연할 수 있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오리지널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선물 같은 드라마예요. 아직 못 보신 분들은 OTT로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수사반장 1958'은 확실히 기성세대에게 통했다. 실제로 이제훈을 보고 '수사반장' 이야기를 꺼내는 어른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층에게도 통했다. 이제훈은 인기 비결을 '궁금증'으로 정리했다.
"우선 그 시대를 그리는 드라마 현저히 적다는 거요. '그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무엇을 입고 먹고 어떤 집에서 살아갈까' 생소하다 보니 궁금증이 재미요소로 작용한 것 같아요. 또 현재와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아날로그-첨단의 간극이 있지만 결국 핵심적인 건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또 사건을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 있고요."
작품은 매회 다른 사건으로 구성된다. 이제훈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8회 '촉법소년'편을 선택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과 그 사회에서 아이러니함을 느꼈다는 것이 이유다. 추가 설명 역시 박영한스러웠다.
"법적으로 정해진 나이지만 오히려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분노를 안 할 수 없으면서도 세상의 개탄스러움을 느꼈어요. 뭐가 맞고 그른지 혼란스러웠고요. 성숙한 생각과 사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저지른 악마 같은 행동을 한 소년들이 기억에 남아요."
전설의 형사 4인방의 '팀워크'는 작품을 끌고 가는 요소다. 박영한 김상순(이동휘 분) 조경환(최우성 분) 서호정(윤현수 분)이 작품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사건을 해결하고 악당을 물리쳐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이 중 박영한은 맏형이자 리더로서 팀을 이끌어간다. 그러나 이제훈은 박영훈이 주축이 되기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향했다고 한다.
"대본에서 박영한이 지시하고 생각을 피력하는 게 많았는데 각자 캐릭터의 의견이 모여 수사 방향이 정해지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대사를 나눠줬고 대화로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죠. 여기서 '티키타카'도 볼 수 있고요. 신인시절 선배들이 독려해 주고 기회를 줬기에 저 역시 (후배들이) 현장에서 편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요."
이제훈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시그널'과 '모범택시' 시리즈에 이어 '수사반장1958'까지 유독 '수사물'이 많다. 이에 인간 이제훈의 이미지 역시 '정의롭고 불의에 참지 않은 청년'으로 굳어졌다. 평소 이제훈의 성격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아울러 지난해 '모범택시2'로 SBS 연기대상 주인공이 됐기에 올해 MBC 연기대상에서도 대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사람에 관심을 갖다보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궁금했어요. 사건사고가 포인트가 되고 권선징악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갈구하고 사필귀정 혹은 인과응보로 자연스레 세상을 바라봤어요. 이게 작품 선택과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캐릭터까지 연결되는 듯해요.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면 가슴의 화가 끓어오르는 건 사실이에요. 지난해 MBC 연기대상에 시상자로 초대를 받았는데 올해엔 '수사반장' 식구들과 참여해서 즐기고 싶어요. 수상 여부보다 '축제다'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통해 힘들었던 부분을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이제훈은 올해에도 계속 달린다. 6월 2일, 데뷔 이래 첫 팬미팅을 열고 7월엔 영화 '탈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근엔 '시그널2' 제작 소식까지 나왔다. 이 가운데 이제훈은 기획사 대표로서 목표도 갖고 있다. 그는 현재 컴퍼니온의 대표 3년 차다.
"'평생 연기할 거니까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그런데 고정지출비가 늘고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식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요.(웃음) 제가 연기를 하지 않아도 회사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여러 방면과 각도로 회사 운영을 생각하고 있어요. '탈주' 개봉을 앞두고 예능과 유튜브 출연을 계획하고 있어요. '도굴' 이후 3년 만에 극장 개봉이 가슴이 뛰어요. 김은희 작가님이 '시그널2'를 집필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 역시 대본 리딩하고 촬영하는 날을 꿈꾸고 있어요. '시그널'을 완주하며 박해영을 상기하고 젖어들거예요."
끝으로 이제훈은 '수사반장'의 또 다른 프리퀄이 제작된다면 "출연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쉬운 이유도 큰데요. 이후 이야기를 그리게 되면 더욱 깊이 있고 재밌는 부분들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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