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는 긴 역사가 있고 오랫동안 국민과 애환을 나눈 장르다. 그러나 일부 장년층의 문화로 밀려나더니 특히 2000년대 들어 아이돌 중심으로 가요계가 재편되면서 변방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2019년 '미스트롯'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붐이 일었다. 당시 '반짝 인기'일 거라는 시선도 있었다. 이후 5년여가 지났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기와 입지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더팩트>가 트로트 열풍을 되짚고 지속 가능성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우리 김태연 공주님 자주 보고 싶어서 울산에서 이사 왔어요.". '더트롯쇼' 방청을 위해 인천 송도에서 왔다는 박(여. 71) 씨는 사실 얼마 전까지 울산에 살았다. 그런데 가수 김태연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의 무대를 찾아가고 응원하기에 더 접근성이 좋은 송도로 이사했다. 그러면서 박 씨의 삶에 더 활력이 생겼다.
2019년 트로트 열풍이 시작되면서 많은 이들이 트로트에 '입덕'했다. 지난 6일 SBS FiL, SBS M '더트롯쇼'가 생방송으로 진행된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도 트로트 팬들이 가득했다. "연예인을 좋아한 건 처음"이라는 박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좋아하는 가수를 볼 수 있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날 '더트롯쇼'를 방청하기 위해 상암동을 찾은 팬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폭넓었다. 그들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가수 역시 MC 김희재부터 2021년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당시 불과 9살의 나이로 최종 4위를 거머쥔 김태연까지 다양했다. 장년층이 확실히 많긴 했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불붙은 트로트 인기가 5년 넘게 지속되고 팬층이 다양해진 건 무엇보다 트로트가 젊어져서다. 가수들 연령대 자체가 확 내려갔고 그러면서 여러 색깔의 곡들이 나오니 무대도 다채로워졌다. '더트롯쇼'는 올드한 느낌의 트로트 무대에서 벗어나 가수와 곡에 맞는 색깔 있는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 문래동에 사는 정(여. 58) 씨는 "2020년 '미스터트롯' 때부터 김희재를 좋아했다. 1회 때부터 원픽이었다"며 "여러 번 방청 이벤트에 응모했는데 오늘 처음 오게 됐다. 너무 기쁘고 설렌다. '더트롯쇼'를 1회부터 한 번도 안 빼놓고 봤고 생방을 현장에서 보면 어떨지 굉장히 궁금했다"고 방청 소감을 전했다.
이어 "전문성 있는 트로트 음악방송이 생겨서 정말 좋다. 일단 MC가 통통 튀니까 분위기를 팍팍 살려주고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위트도 있다"며 "트로트가 옛날엔 솔직히 좀 올드했는데 젊어지면서 다양성이 생긴 거 같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부터 연세 더 드신 분들까지 좋아할 수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용인 수지에서 온 60세와 70세 여성 두 명도 김희재의 열성 팬이다. 그들은 "매번 응모하는데 오늘 처음 됐다.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 다 내려놓고 했더니 됐다"며 "뮤지컬 콘서트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갔다. 김희재가 가는 곳은 다 간다. 말도 센스 있게 잘하고 노래도 잘해서 좋아하게 됐고 그때부터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카메라 밖에서 더 빛나는 김희재 매력
김희재는 '더트롯쇼'의 마스코트다.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진행을 하면서도 중간 중간 재기발랄한 말과 행동으로 방송에 생기를 더한다. 그런데 그가 다가 아니다. 현장에서 본 김희재의 매력은 카메라 밖에서 더 빛난다.
김희재는 생방 시작 전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방청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 손하트를 만들며 팬사랑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때때로 깜찍한 포즈를 취하고 짧게 춤까지 추며 열기를 끌어올렸다. 1위 발표 전 VCR이 나갈 때도 무대에 올라 방청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등 진심을 다해 임했다.
생방을 마친 뒤 이날 '더트롯쇼'에 출연한 박성온 김태연 두 어린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김희재는 그때도 든든하게 옆에서 두 사람이 긴장하지 않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후 두 가수와 함께 방청석 바로 앞까지 와 일일이 인사를 했다. '희며든다'는 표현처럼 팬들이 김희재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김희재는 <더팩트>에 "트로트를 사랑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매주 '더트롯쇼' 방청객을 꽉꽉 채워주고 계신다. 트로트 가수 중 한 사람으로서 너무 감사하고 또 자랑스럽다"며 "트로트가 이렇게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트로트에 담긴 우리 인생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공감해 준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트로트를 정말 사랑하기에 가수 분들이 박수를 받고 행복하게 노래하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가수 분들이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게 하는 것 역시 MC의 역할이지 않나"라고 마음가짐을 전했다. 그러면서 "트로트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동료 가수들과 즐겁고 행복한 '더트롯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팬들 관심과 사랑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진행을 하는 김희재 뿐만 아니라 출연 가수들도 열과 성을 다해 최고의 무대를 만든다. 이날은 강예슬 곽영광 김태연 김호연 노지훈 두자매 박군 박성온 빈예서 설하윤 영기 윤태화 이솔 이찬원 진해성 한혜진이다. 이들의 무대는 신났다가 구슬프고 또 애절하다가도 흥이 넘쳤다. 트로트 단일 장르지만 지루할 틈이라곤 없었다.
김태연 설하윤 한혜진은 이날 각각 신곡 '홍키통키' '설렌다 굿싱' '밑창' 무대를 선사했다. 김태연과 설하윤은 '더트롯쇼'를 통해 신곡 첫 무대를 선보였다. 트로트 가수들은 신곡을 내도 설 무대가 별로 없는데 '더트롯쇼'는 그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두 대의 지미집을 비롯해 여러 대의 카메라로 무대를 다이내믹하게 담아냈다.
이날 신곡 '설렌다 굿싱' 첫 무대를 선보인 설하윤은 <더팩트>에 "굉장히 일렉트로닉한 '설렌다 굿싱'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여러분들이 가끔 일상이 지치고 힘드실 때 '설렌다 굿싱'을 들으시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신곡 발표 소감과 바람을 전했다.
더불어 "트로트에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시고 활성화 되니까 저도 동료 가수 분들도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활발하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거 같다. 그래서 '더트롯쇼'에 오면 늘 축제 분위기고 설렌다"며 "관객 분들이 표정과 함성에 트로트 열기를 새삼 더 느낀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MC 김희재를 비롯해 출연 가수들의 이런 진정성은 트로트 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마련이고 트로트 열기가 지속되는 요인이 아닐까.
20대부터 70대까지 열광.."삶의 질 좋아졌다"는 팬들
김태연 팬이라는 50대 남(여) 씨는 "트로트를 별로 안 좋아했다. 태연이를 좋아하다 보니까 태연이가 부르는 트로트를 좋아하게 됐다. 국악을 해서 고유의 탁음이 있다. 거기에 빠지면 다른 노래 안 들린다"며 "트로트는 우리 국민 정서에 잘 맞지 않나. 노래에 애환도 많이 들어가 있고 대중성도 있고 인기가 계속 갈 거 같다"고 말했다.
트로트의 매력은 20대 젊은 세대에도 닿았다. 생방송이 끝난 뒤 강예슬의 퇴근길을 기다리던 황(여. 23) 씨는 "미니 팬미팅처럼 얘기를 나누고 가는데 오늘은 곧바로 스케줄이 있다더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트로트는 중동성 강한 멜로디에 가사가 쏙쏙 박히는 게 매력이고 강예슬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배(여. 22) 씨는 강혜연을 좋아하는데 강혜연이 걸그룹으로 활동할 땐 관심이 없다가 오히려 트로트로 전향한 뒤 팬이 됐다. 강혜연의 또 다른 팬 이(여. 25) 씨는 "트로트 팬들 중에서 우리가 어린 편인데 트로트는 세대 통합의 노래다. 전 자주 방청을 왔는데 매 무대가 달라서 볼 때마다 새롭다"고 트로트의 매력을 설명했다.
팬들의 성원은 가수들에게 힘이 되고 이들의 왕성한 활동은 팬들에 활력을 준다. 김희재 팬이라는 이(여. 70) 씨는 "요즘 친구들 만나면 혈색이 달라지고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고 말했고, 함께 있던 팬들은 "스트레스가 풀리고 화도 없어졌다. 제가 행복하니 가족도 행복해지고 삶의 질이 좋아졌다. 트로트 인기가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우린 끝까지 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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