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유아인 리스크를 떠안은 채 공개된 '종말의 바보'.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다며 돌 맞을 작품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과 달리 지루한 서사와 설정 오류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유아인 지우기도 실패했지만 작품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종말의 바보'다.
지난 27일 전편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말의 바보'(극본 정성주, 연출 김진민)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D-200,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럼에도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예견된 종말 속 살아가는 세경(안은진 분), 성재(전성우 분), 인아(김윤혜 분)등의 이야기를 그린다. 비록 내일 세상이 끝나더라도 자신의 할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종말의 바보'는 공개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작품을 향한 기대는 아니었다. '종말의 바보'는 마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아인의 작품이다. 지난해 8월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유아인이 마약 혐의로 입건되면서 무기한 연기가 된 바 있다.
이후 유아인 리스크를 떠안은 채 공개를 확정 지은 '종말의 바보'는 포스터와 스틸 컷, 언론 홍보 등에서 유아인을 배제했다. 감독도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유아인의 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유아인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작품 자체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기에 시청자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작품을 시청했다.
하지만 '종말의 바보'를 힘 있게 끌고 가기 위해선 유아인의 서사가 필요했다. 유아인은 극 중 생명공학연구소의 연구인이자 세경과의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 하윤상 역으로 출연한다. 1화 초반에는 세경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잠깐 얼굴을 비추지만 2화 극 말미 세경을 보러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을 시작으로 3화부터는 전반적인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간다.
유아인의 분량을 지웠다고는 하지만 어설프게 제거한 탓인지 이야기의 몰입감을 깨트리기 일쑤다. 또한 인물들의 서사가 끊기는 경우가 있어 작품을 다 보고 나면 풀리지 못한 궁금증이 많이 남는다. 가령 세경과 윤상이 추후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와 윤상이 진행했던 연구, 사이비 종교 수련원의 정체 등의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작품의 몰입감을 떨어트린다.
비단 유아인의 분량만이 문제가 아니다. 작품은 눈앞에 닥친 종말 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그린다. 문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의 세계)치고 너무 잔잔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매회 한 시간 분량, 12부작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에는 서사가 다소 빈약해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재난 작품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연출은 찾아보기 어려워 보고 즐길 거리도 부족하다.
또한 일부 설정에도 오류가 발생한다. 소행성 충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각종 온라인 서비스가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국무위원들의 회의가 생중계된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수시로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들이 어떻게 생중계를 진행할 수 있었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온라인 서비스가 멈췄다는 설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게다가 유아인 역할을 지우기 위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품의 마무리가 애매하다. 이에 시청자들은 "내가 지금까지 뭘 본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종말이 예견된 상황 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에 작품에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하지만 이 인물들의 서사에 모두 집중하느라 다소 혼란스럽고 산만하게만 느껴진다.
이렇듯 빈약한 서사가 주된 문제점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매우 빛났다. 특히 극의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 안은진의 연기력은 빛을 발했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종말이 다가올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표현한 그의 얼굴에서는 매회 새로운 모습이 엿보인다. 특히 본인보다 주변 사람을 먼저 챙기는 선함과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달려드는 정의로운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강단 있게 표현해 극의 중심을 잡았다.
세경의 친구이자 많은 권력을 갖고 있진 않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강직한 군인 역을 맡은 김윤혜의 새로운 얼굴도 반갑다. 보급 수송과 치안 유지를 책임지는 전투근무지원 대대를 이끄는 중대장인 그는 묵직하지만 차분한 목소리 톤으로 모든 장면을 소화했다. 특히 서로를 지켜주고 싶은 세경과의 관계를 애틋하게 표현해 따뜻하면서도 가슴 절절한 '케미'를 완성했다.
세경의 제자인 소민(김보민 분), 진서(김강훈 분), 하율(김도혜 분)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다른 모습도 관전 포인트다. 종말이 다가오면서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된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아이들만의 방법.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버텨내는 모습과 세경과의 애절한 관계를 잘 형성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유아인 리스크를 떠안았기에 공개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던 '종말의 바보'. 하지만 작품은 유아인 편집이 문제가 아니라 12부작이라는 긴 러닝타임 안에 진행된 지루하면서도 찝찝함만을 남긴 서사였다. 배우들의 돋보이는 연기력이 오히려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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