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분명 쉽지 않았을 작품인데 정작 이를 소화한 배우 전소니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며 "저 별로 고생 안 했어요"라고 당차게 말한다. 그의 지론이 맞았다. 마음이 괴로우면 고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즐겁게 임했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재밌던 촬영으로 기억된 '기생수'다.
전소니는 최근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감독 연상호, 이하 '기생수')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품은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들이 등장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전담팀 '더 그레이'의 작전이 시작되고 이 가운데 기생생물과 공생하게 된 인간 수인(전소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가 원작이다.
6부작인 작품은 짧고 굵게 '기생수'의 한국판 이야기를 보여주며 공개 첫 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 이에 전소니는 "주변에서 재밌게 봤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다. 주로 서정적인 작품을 '드라마 좋더라' '이야기 괜찮더라'라는 말을 들었었다"며 "가까이 분들도 재밌게 본 게 처음인데 멀리 계신 분들까지 많이 봐줘서 1위라는 수치를 기록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소니의 말처럼 장르물 특히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작품은 처음이었던 전소니다. 때문에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도 '기생수'가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단다. 그는 "감독님께서 처음에는 수인이라는 역할과 원작과 다르게 전개된다고만 말씀해 줬다. 그림이 안 그려지는 작품은 정말 처음이었다"며 "그래서 오히려 대본이 쉽게 읽혔다. 궁금하니까 상상이 끊기지 않더라"고 전했다.
연상호 감독은 전소니가 독립영화로 활약할 때 눈여겨보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전소니는 "나와 어떤 작품을 함께할지 고민하다가 '기생수'를 제작하기로 했을 때 잘 어울릴 것 같아 생각났다고 하더라. 덕분에 나 또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모든 배우가 그렇지만 안 해봤던 장르와 캐릭터에 욕심이 있잖아요. 특히 연상호 감독님은 자신만의 색깔을 잘 보여주시는 감독님이에요. 때문에 제가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모습이 어떻게 담길지 궁금했어요. 많은 분들이 '고생했겠다'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저 별로 고생 안 했어요.(웃음) 고생은 CG가 했죠. 마음이 괴로웠으면 고생이었을 텐데 그저 재밌었어요. 마냥 궁금했던 것들을 해볼 수 있었던 기회이자 현장이라 즐거웠습니다."
전소니는 이번 작품을 통해 1인 2역에 도전했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수인과 기생생물 하이디의 기묘한 공생과 내적 갈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호평을 이끌었다.
원작을 알고 있던 전소니는 하이디가 어떻게 구현될지 가장 궁금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하이디까지 연기를 해야 하는 건 다소 늦게 알았단다. 전소니는 "처음에는 하이디를 연기하는 배우가 따로 있는 줄 알고 어떻게 호흡을 맞추고 '케미'를 만들어 낼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1인 2역을 해야 하는 걸 알았는데 처음에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전 하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잖아요. 하지만 정작 관객들이 볼 때는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볼 테죠. 때문에 하이디를 표현하는 게 두렵고 어려웠어요. 그러나 계속 이 생각에 갇혀있으면 더 어려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서 찾은 전소니만의 전략은 '분리'였다. 전소니는 "일단 수인이와 하이디를 분리시키고자 했다. 이후 수인이를 잘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이디는 감독님이 잘 만들어 줄 테니 나는 하이디를 만나기 전의 수인이를 최대한 잘 표현해 낸다면 두 사람의 '케미'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겠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하이디를 연기할 때 목소리 톤에 대해서도 여러 고민을 거쳤다. 전소니는 "감독님께 다양한 보기를 보여드렸었다. 아무래도 다른 기생생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과 비슷한 결을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낮은 톤을 냈다"고 전했다.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수인이의 내면에서 하이디랑 마주하는 장면이었다.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나이지만 알 수 없는 상대방과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전소니는 "평소에 연기할 때 상대 배우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상대가 나지 않나. 내가 어떻게 할지 알다 보니 긴 대화를 나 혼자 주고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중압감을 크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게 어떤 상황이어도 결국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다시 할 수 없죠. 더 잘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날 내가 한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게 전 오히려 다행이더라고요. 계속하고 다시 해도 된다면 멈추지 못할 것 같아요. 그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어차피 난 이날밖에 없으니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집에 가서 잊어버리자는 마음으로 임했어요.(웃음)"
구교환과의 호흡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구교환의 애드리브 이야기가 나오자 전소니는 환한 웃음을 보이더니 "자랑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해 취재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많은 시청자분들이 교환선배님의 '중학교 연극반 줄리엣' 애드리브를 좋아하더라. 선배님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내가 줄리엣이었다고 말하는 대사였다. 실제로 내가 중학교 때 줄리엣 아빠 역을 맡았었다. 그때가 생각나 말씀드렸더니 선배님께서 재밌어했다. 자랑하자면 내 아이디어였다"며 뿌듯한 웃음을 보였다.
'기생수'라는 하나의 도전을 끝낸 전소니는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계획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또 다른 작품을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고, 자신이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했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결국은 기억에 오래 남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실제로 배우가 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모든 게 유한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캐릭터로든 살아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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