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직전 기자들과 다시 만난 장재현 감독은 작품 개봉 전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기쁨과 부담의 공존이 된 흥행 스코어지만, 앞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 안에서 새로운 걸 찾아내며 관객들과 만나겠다는 생각뿐이다.
'파묘'의 메가폰을 잡은 장 감독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흥행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그는 천만 돌파를 앞둔 소감부터 작품을 둘러싼 여러 이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22일 스크린에 걸린 '파묘'는 개봉 3일째 100만 4일째 200만 7일째 300만 9일째 400만 10일째 500만 11일째 600만 16일째 700만 18일째 800만 24일째 900만 고지를 밟으며 적수 없는 흥행 질주를 펼치고 있다.
먼저 장 감독은 "항상 손익분기점만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어요. 영화를 보면 감독 입장에서 아쉬운 것만 보이고요.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리둥절해요.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홍보하는 분들도 좋아하니까 저도 덩달아 좋죠"라며 "주위에서 이런 시간이 평생 또 오지 않을 수 있다더라고요.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어요"라고 흥행 소감을 전했다.
매 장면 자신의 실수만 보인다고 밝힌 장 감독은 그중에서도 김고은의 대살굿을 가장 아쉬운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배우들이 진짜 잘해줬는데 제가 50% 정도밖에 못 담은 것 같아요. 촬영을 하루만 더 했으면 더 잘 담았을 것 같은데 배우들이 보여준 거에 비해 제가 부족했죠"라고 덧붙였다.
작품은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K-오컬트 세계관을 탄탄하게 구축한 장 감독과 배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의 만남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베일을 벗은 '파묘'는 신선한 소재와 디테일한 연출 그리고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으로 이뤄진 묘벤져스(파묘+어벤져스)의 열연과 시너지에 힘입어 관객들의 'N차 관람'을 이끌며 극장가를 장악했다. 이에 장 감독은 "배우들이 역할을 잘 소화해 줬고 궁합도 잘 맞았어요. 마케팅도 적절하게 잘 해주셨고요"라고 흥행 요인을 짚으며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관객 타겟층을 설정하지 않았어요. 늘 첫 번째 관객은 저예요. 제가 재밌는 거 위주로 영화를 만들거든요. 그리고 초심은 영화에서 드러나요. 이번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오락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매 장면을 재밌고 처음 보는 것들로 만들고 싶었죠. 체험적인 오락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고 안전한 걸 택하지 않았어요."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이름부터 차량번호까지 작품에 숨어있는 '항일 코드'를 비롯해 여러 디테일을 발견하며 작품을 함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다. 다만 장 감독은 이 같은 장치를 이스터 에그(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이 아닌 정보적 밀도를 높이기 위한 디테일이라고 설명했다.
"보는 이들을 해석하게 만드는 건 영화의 실패라고 생각해요. 재밌게 보셨으니까 더 파고 싶으신 거겠죠. 그런데 이를 의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이에요. 오히려 말끔한 영화를 좋아해요."
더 나아가 관객들은 극 중 무당 화림(김고은 분)과 봉길(이도현 분)의 관계에 집중하며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룬 스핀오프물을 내달라는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장 감독은 '파묘'가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을까. 그의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감독판만큼은 "길고 지루할 것"이라는 이유로 낼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충 만들면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제 연출관은 그렇지 않아요. 포장지가 멋져도 이야기의 내실이 없다면 저에게는 만들 수 있는 가치가 없어요. 좋은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면 만들 수 있겠지만 흥행을 위해 만드는 건 제 연출관과 맞지 않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그런데 캐릭터들이 매력 있으니까 드라마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장 감독은 작품을 둘러싼 부정적인 여론에도 응답했다. 앞서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은 '파묘'를 두고 "좌파 영화"라고 공격했다. 이에 장 감독은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가지각색이죠. 그쪽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있다면 어쩔 수 없어요.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그걸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 네티즌들은 작품 속 캐릭터들이 화를 피하기 위해 얼굴과 몸에 한자를 적은 축경 문신을 보고 '중국에서는 얼굴에 글을 쓰거나 새기는 행위는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행위다. 한국인들이 얼굴에 모르는 한자를 쓰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조롱했다. 이 같은 반응을 접한 장 감독은 "곧 중국 영화 '패왕별희'가 재개봉하더라고요. 중국에서도 한국 영화를 자유롭게 개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라고 응수했다.
장르적 한계로 인해 마니아층만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나홍진 감독의 '곡성'(687만 명)을 넘어 한국 오컬트 장르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파묘'다. 이에 힘입어 한국 오컬트 영화 최초로 천만 영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로써 '파묘'는 '서울의 봄'에 이어 흥행 질주를 이어가며 '잘 만든 영화는 관객들이 본다'는 새로운 흥행 공식을 입증했다.
지난해 개봉해 천만 반열에 오른 '서울의 봄' 흥행에 감사함을 표한 장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큰 생명줄이 됐죠. 이어 '파묘'도 잘 되면서 관객들을 재단하지 않고 영화에 집중하면 되는구나를 다시 깨달았어요"라며 "또 극장에 사람이 많아지니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저희가 관객들로 꽉 찬 극장을 보면서 '이 맛에 영화한다'고 했어요. 이런 열기가 얼마 만인지 너무 좋아요"라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끝으로 장 감독은 앞으로의 행보도 귀띔했다. 구체적인 건 없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자신이 좋아하는 오컬트라는 장르 안에서 새롭고 재밌는 이야기를 찾을 거라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시선을 대중과 마니아로 굳이 구분 짓지 않고 재밌고 새로운 이야기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감독 입장에서 기쁨과 부담이 공존하는 흥행이에요. 앞으로 영화를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많은 분이 관심을 주시는 거에 기쁨도 느끼죠. 했던 걸 또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좁은 바운더리 안에서 새로운 걸 찾고 진보해 나가고 싶어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100% 주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했던 걸 또 편하게 하는 건 제 연출관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