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노래교실은 음악 소통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한번에 수 백명에서 수 천명 회원들이 인기 강사들의 선곡 노래를 배우고 따라부른다. 그만큼 입소문 효과도 크다. 노래는 자꾸 부를수록 친근해지는 속성이 있고, 그럴수록 신인들에겐 홍보가 늘 절실하다.
수십년 인기사다리를 타고 레전드 가수로 자리매김한 기성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신곡을 소개하는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 사라지거나 대거 축소되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자신의 노래를 들려줄 통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김성기 박미현 송광호는 '대한민국 노래교실 3대 천왕'으로 불리는 스타강사다. 이중에서도 박미현은 37년째 노래교실에서 활약하며 수도권에서만 수 천명의 회원을 거느린 '으뜸 강사'로 우뚝 서 있다.
좋아하는 뭔가에 푹 빠져 살고, 그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박미현은 노래로 세상을 지배하며 마음의 힐링이 필요한 이들을 치유한다. 그가 처음부터 스타강사였을까.
"저는 매일 오늘을 산다고 생각해요. 37년째 변함없이 오늘을 살고 있죠. 열정을 살려서 한 스탭 한 스탭 밟아 오다보니 어느순간 많은 분들이 일타 강사로 인정해 주시는 거 같아요. 한술 더떠 스타로까지 치켜세워주시니 부끄럽지만, 더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느새 그는 레전드 가수들조차 목을 매는 상황이 됐을만큼 노래강사로 폭발적 인기를 누린다. 그럼에도 늘 '겸손'하다. 유명 가수든 이름없는 신인이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기준'을 벗어나거나 '초심'을 잃어본 일이 없다. 그가 '대가'로 인정받고 오래도록 승승장구하는 비결이다.
박미현 강사는 하루 서너 곳의 노래교실을 뛸만큼 스케줄이 빡빡하다. 분 단위로 쪼개 움직이는 그를 만나 가요교실 풍속도 등을 물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신림동 관악농협 농산물백화점 노래교실이 끝난 뒤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워낙 바쁘셔서 만나 뵙기 쉽지 않은 분인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요. '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 코너에 저를 초대해주신 것만으로 오히려 제가 먼저 감사해야죠. 그동안 '스페셜인터뷰'에 등장한 분들을 기사에서 찾아보니, 연예계 특급 스타들 뿐 아니라 쟁쟁한 대중문화계 거물들이 망라됐던데요. 인정해주신 것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기왕에 이렇게 만났으니 진솔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박미현은 다재다능한 끼와 유명세 덕분에 TV와 라디오 등 방송출연이 유난히 많다. 노래교실은 일주일에 16곳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평균 3번 씩은 가요강사로 무대에 서고 있는 셈이다. 대학강의(건국대학교 미래지식 교육원)도 피해갈 수 없는 스케줄이다. 수시 방송출연 요청도 많다. 현재 TBN 라디오 '김승현의 가요본색' 노래교실 고정코너 '무반주 노래자랑'(매주 금요일) 진행자로 출연중이다.
-요즘 MBN '불타는 장미단'에 3주째 출연중인데 주목도가 꽤 높은 것같다.
'불타는 트롯맨' 상위 입상자 10명과 대결하는 방식인데요.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주셔서 마냥 행복합니다. 가수들이 노래교실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각각 선곡해 가요강사들과 대결하는 거죠. 이채롭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오랜 기간 노래교실을 이끌어온 가요강사들은 가수들과 특별한 인연이나 사연을 갖게된 노래도 불러요. 방송이 낯선 건 아니지만, 높은 피드백에 저도 많이 놀라고 있어요.
그가 요즘 특별 게스트로 출연 중인 '불타는 장미단'은 트로트 오디션 '불타는 트롯맨' 스핀오프 프로그램이다. 박미현을 비롯해 전국 노래교실 유명 강사 10명이 초빙돼 '불타' TOP7과 상위 입상자 3명 등 라이징스타 10명과 대결을 벌이는 무대다. 그는 '유산슬'을 탄생시킨 레전드 가요강사로, 37년의 경력을 가진 '노래교실 시조새'로 평가받으며 카리스마를 분출했다.
-'노래강사 박미현' 하면 가요계에서는 쟁쟁한 스타 가수들도 존재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어느 분야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스타는 없잖아요. 가수들도 다 신인시절이 있고, 무명 설움을 거치면서 차츰 유명해집니다. 저는 88년부터 노래교실을 했는데, 이미 유명한 가수들도 많지만 신인 무명가수들과 더 많이 동고동락했어요. 지금은 대스타로 발돋움한 분들이 많죠. 그분들이 저를 인정하고 입소문을 내주셔서 그런 과분한 평가를 받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90년대 초중반 장윤정의 '어머나'는 노래교실에서 단골로 불렀던 노래다. 장윤정도 그의 노래교실을 많이 찾았다. 처음엔 방송관계자들이 시큰둥 했고 장윤정 조차도 탐탁치 않아 했다. 그의 판단은 달랐다. 박미현은 "듣는 순간 귀에 꽂히는 노래였다"고 말했다. '박미현이 찍은 노래는 반드시 뜨더라'고 인정하는 가수들도 많다. '안동역에서' '내나이가 어때서' '미운사랑' '평행선' 역시 그의 노래교실을 통해 대박 난 대표적 히트곡들이다.
-37년차 베테랑 가요강사의 명성을 갖고 있는데 직접 음반을 내고 노래할 생각은 없나.
강기자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노래교실 강사들 중엔 한때 대중 가수 꿈을 키우던 분들이 많아요. 워낙 기본기가 탄탄한데다 강사를 오래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다들 음반을 내고 싶어하죠. 실제로 가요강사를 하면서 가수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상당수 있어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절대 반대입니다. 저 역시 그런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한번도 음반을 내본 일이 없어요. 저만의 철칙이 있거든요.
박미현이 말하는 철칙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로 집약된다. 자신의 음반을 내는 순간 히트 욕심에 매달려 노래강사의 본분을 지키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그동안 그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음반을 낼 수 있었다. 돈독한 친분관계로 곡을 받을 수 있는 유명 작사 작곡가들도 한 두명이 아니다. 노래는 프로 가수에게 맡기고, 자신은 유능한 노래강사로 남고 싶어한다. 과연 '확고부동한 뚝심의 노래강사'로 지칭할만하다.
-트로트 시장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한다,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트로트 저변이 급 팽창된 걸 피부로 느낍니다. 방송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바꿔놓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요교실도 더 활기가 넘칩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죠. 오디션을 통해 발굴된 라이징 스타가수들은 인기만 있고 자신을 상징할 히트곡이 없다는 거예요. 방송 출연을 아무리 많이 해도 자신의 곡이 아닌 이미 알려진 커버송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최근 몇년 사이 트롯 오디션 스타들이 대거 탄생하면서 가요계 트렌드나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지역 축제 등 행사 무대에서 트로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가수들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 거꾸로 히트곡을 만들 기회는 더 좁아졌다. TV는 물론이고 라디오마저 트로트 신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실제로 대폭 줄어들었다. 가요교실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노래교실에서는 신곡 중심의 선곡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신인들이 많을텐데 선곡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이 있죠. 저 역시 확실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 노래 가사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이는 제 성격과도 닮았는데 노래교실에서는 우울한 노래보다는 밝고 환한 노래가 아무래도 유쾌하지 않나요? 흔히 가수들의 삶은 노래 따라 간다는 말도 있잖아요. 또 반드시 그럴 필요까진 없지만 노래에 기승전결 스토리가 있으면 채택 가능성이 많아요. 아무런 의미나 뜻도 없는 단어로 반복되는 가사들도 많거든요.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K-POP은 대중음악(Popular Music)과 대한민국(Korea)의 합성어로 본래 영미권 팝 음악에서 출발한 대중문화의 한 장르다. 월드팬들한테는 BTS나 블랙핑크 스트이트키즈 같은 아이돌 스타들이 K-POP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 뿌리에는 통기타 포크송, 발라드,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가 스며 있다. 37년 가요교실 경력의 박미현은 누구보다 앞장 서서 K-POP 한류의 근간을 지탱해왔다는 자부심 강한 뮤지션이다.
가요계가 꼽는 '노래교실 스타강사 3인' 중에 박미현은 유독 엔터테이너 기질이 돋보인다. 타고난 끼와 스타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듣는다. 뛰어난 곡 해석력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 말솜씨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노래교실에서 객석을 쥐락펴락하는 데는 맛깔스럽게 들려주는 위트와 유머, EDPS(성관련)도 한몫을 한다. 몸에 밴 율동은 무용(기계체조)을 전공한 이력, 말재간은 가요교실 초반 레크레이션 강사를 동반한 겸험 등이 시너지를 낸 덕분이다.
박미현은 다른 두 명의 스타강사에 대해 "셋 중에선 저만 여성이라서 다르게 비치는 것일 뿐 모두 저보다 내공이 강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김성기는 혼성그룹 바다새 멤버로 활동했던 가수 출신이고, 송광호는 작곡가로 출발해 '미운사랑' '평행선' '남이가' 등을 히트시키며 명성을 얻은 가요강사다.
박미현은 엄청난 노력형이다. 그리고 성실하다. 지금은 노래방 반주기로 모두 커버가 되지만, 초창기엔 기타를 치며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가르쳤다. 다음날 강의를 위해 손가락이 갈라질만큼 밤새 기타 코드를 외우고 매달리곤 했다.
그의 남다른 면은 또 있다. 신뢰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한다는 점이다. 90년 무렵 처음 출발한 각 지역 농협 노래교실을 3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허름한 건물 시절부터 새 빌딩으로 변신한 지금까지 대부분 그대로다. 대인관계에서도 한번 마음이 통하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다.
인터뷰 중에도 시종 유쾌한 농담으로 필자를 웃겼다. 그는 "대학시절 만나 9년을 연애하다 결혼에 골인한 남편도 34년째 안 바꾸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유쾌한 입담은 구독자 19만명을 넘긴 유튜브 채널 '박미현 TV'에서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