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보통은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만나 꽃을 피운다고 바라본다. 이를 역으로 바라보는 배우가 있다. 송하윤은 캐릭터가 자신을 만나 생명을 얻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한다. 극 중 배역을 한 인물로 바라보며 자신을 만나 온전히 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본인의 역할이란다. 때문에 지난 1년간 수민으로서 열심히 살아낸 배우 송하윤이다.
송하윤은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극본 신유담, 연출 박원국, 이하 '내남결')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월 1일 처음 방송된 '내남결'은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여자 강지원(박민영 분)이 10년 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경험하며 시궁창 같은 운명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본격 운명 개척 드라마다.
극 중 송하윤은 강지원의 남편을 빼앗는 악녀 정수민 역으로 분해 인생 '악역'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을 이끌었다. 그는 "정말 나쁜 말들이 난무한 현장이었는데 작품은 건강하게 잘 끝낸 것 같아 다행이다"고 종영 소감을 밝혀 웃음을 안겼다.
정수민은 강지원의 오랜 '절친'이지만 실제로는 강지원을 손안에 두고 휘두르는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강지원에 대한 이상한 집착 심리도 보여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때문에 송하윤 역시 처음 정수민 캐릭터를 마주했을 때는 "거부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남결'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송하윤은 "권태감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 연기에 대한 권태기가 왔었던 시기였다. 데뷔한 지 꽤 됐는데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막상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도 배우라는 게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악역이 너무 하고 싶을 때 정수민이란 인물이 처음으로 들어왔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밝혔다.
"수민이란 인물은 여배우로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는 인물이었거든요. 제게는 천운이가 기회였죠. 그리고 악역이잖아요.(웃음) 아무도 없는 수민이를 송하윤이 지켜줘야겠다 싶었죠. 수민으로서 정말 열심히 살아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정수민의 이해할 수 없는 심리를 소화하기 위해 전문가의 힘도 빌렸다. 송하윤은 "두 번째 촬영 장면이 1회차 강지원의 죽는 장면이었다.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실제로 내가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바들바들 떨리고 온몸에 혈관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악행이 계속되니까 대본을 못 넘기겠더라. 결국 이 친구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면을 연기하기 위한 자문을 구했을 뿐, 결국 정수민이라는 인물을 정의할 수는 없었단다. 송하윤은 "누군가는 정수민을 '소시오패스'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민이를 어떤 병이라고 진단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들은 어떻게든 정의를 내릴 수 있었지만, 수민이는 작품이 끝난 지금까지도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다. 그만큼 복합적이고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었던 캐릭터였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정수민의 권선징악 엔딩이 당연하다면서도 마음에 걸린다는 송하윤이었다. 극 중 정수민은 절친 강지원의 남자친구인 박민환(이이경 분)을 빼앗아 결혼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지만 결국 박민환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성격과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끝이 났다.
송하윤은 "예전에 했던 캐릭터는 '그래서 결국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 났는데 수민이는 교도소에 두고 온 기분이라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물론 절대 용서받으면 안 되고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모두가 자신만의 자유를 찾았을 때 수민이만 마지막까지 자유를 선택하지 못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며 여전히 정수민에게 몰입돼 있는 상태임을 드러냈다.
그만큼 지난 1년간 정수민으로서 살아왔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특히 송하윤은 정수민을 연기하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일례로 카메라에 담기는 얼굴 방향까지도 정수민의 이중성을 보여주기 위해 연구한 결과였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오른쪽 얼굴을 많이 썼다. 내 얼굴이 왼쪽은 선한 편인데 오른쪽은 날카로운 편이다. 이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하게 보여 사람들을 홀릴 때는 왼쪽을 쓰지만 다를 때는 방향과 헤어 가르마까지 바꾸며 섬세하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송하윤이 갖고 있는 정수민에 대한 애정은 그가 얼마나 캐릭터를 진심으로 대하는지를 보여줬다. 특히 송하윤은 자신이 캐릭터를 만나 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자신을 만나 생명과 활력을 얻는다는 연기관을 드러냈다.
"인생 캐릭터라고 해주시는데 저는 그냥 제 인생 살듯이 수민으로서 계속 열심히 살았어요. 수민이는 지금밖에 기회가 없잖아요. 절 만나서 세상에 표현될 수 있는 기회요. 그렇다면 배우는 그 인물로서 열심히 사는 게 캐릭터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수민이란 인물에 생명과 삶이 불어넣어져서 좋은데, 수민이 덕분에 제 과거 작품들까지 다시 언급돼서 더 좋아요. 그 친구들도 다시 한번 생명을 얻은 기분이거든요.(웃음)"
2003년 데뷔한 송하윤은 어느덧 데뷔 22년 차를 맞았다. 그를 기억하는 이름은 제각각이다. '내 딸, 금사월' '쌈, 마이웨이' '마성의 기쁨'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달려온 배우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재조명되고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에 송하윤은 "모두가 각자의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간에 공백기가 있을 때도 하늘의 뜻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당시가 권태기의 시작이긴 했다. 그때 내가 만든 숙제를 발견해야 했으며 해결해야 했다. 그런 시간이 있었던 덕분에 수민이를 만나 더욱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전했다.
"전 연기가 너무 좋아요. 제가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배우의 길을 걸은 건 아니잖아요.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성공해야겠다는 수단이 절대 아니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촬영장에서 '액션'과 '컷'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제겐 가장 값진 일이에요. '액션'하는 순간 다른 세상이 열리고 '컷'하면 다시 송하윤의 세상으로 돌아오죠. 앞으로도 계속해서 두 세상을 왔다 갔다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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