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문화영 기자] 자기 자신을 잘 아는 배우다.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확인한다. 어딘가에 꽂히면 파고드는 성격도 여기에 한몫했다. 힘들고 지칠 법도 한데 이로써 성장하고 있다는 이주명이다.
지난달 20일 첫 방송한 ENA 수목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극본 원유정, 연출 김진우·이하 '모래꽃')는 20년째 떡잎인 씨름 신동 김백두(장동윤 분)와 소싯적 골목대장 오유경(이주명 분)이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청춘 성장 로맨스 드라마다.
작품은 씨름 도시 거산을 배경으로 모래판 위에 꽃을 피우려고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오는 31일 오후 9시에 마지막회가 방송된다.
배우 이주명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모래꽃'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작품에서 보여준 긴 머리를 시원하게 자른 모습이었지만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모래꽃'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씨름을 소재로 해 화제가 됐다. 앞서 김진우 감독은 "씨름과 청춘이 닮았다. 꽃이 필 가능성 없는 모래판에서 고군분투하는데 막상 승부는 순식간에 끝난다"며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청춘과 맞닿은 느낌"이라고 전한 바 있다. 씨름은 청춘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힐링을 주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극 중 이주명은 동네 남자애들을 휘어잡은 골목대장 오두식이자 성인이 된 후 거산군청 씨름단 관리팀장을 맡은 경찰 오유경으로 분했다. 선수 못지않은 씨름 지식을 갖고 있는 그는 일련의 사건으로 어릴 적 거산을 떠났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거산으로 온다.
"다행히 선수가 아니라 간단하게 연습했어요. 씨름을 어깨너머 보고 배웠는데 생각한 것에 비해 코어랑 다리 힘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결국 샅바 싸움이더라고요. 키가 크면 좀 불리해요.(웃음)"
이주명은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사투리'를 꼽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주명이지만 한 번도 미디어에서 사투리를 보인 적이 없다. 가족들과 통화할 때만 쓴다는 그는 이번 연기를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했다고 밝혔다. 장동윤 역시 대구 출신이다. 이 둘의 사투리가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다.
"씨름 소재도 신기하고 개개인 스토리도 있고 캐릭터도 확실하고요. 무엇보다 아직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사투리'라는 무기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보통 사투리는 각색하고 말투를 바꿔야 하는데 작가님이 대본을 촘촘하게 써주신 덕분에 그대로 읽으면 네이티브로 나왔어요. 동윤 오빠는 경북이고 저는 경남이라 약간 어감이 달라요. '네가 맞다. 내가 맞다' 의논하고 통일된 것으로 했죠."
또 이주명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한 명인 두 캐릭터 오두식과 오유경을 그렸다. 그러면서 두식이는 유경이를, 유경이한테는 두식이를 묻혔다고 전했다.
"저도 2가지 버전이 있는데 사투리를 쓰는 건 두식이에요. 사투리가 주는 힘이 있어요. '밥 먹었어?'보다 '밥은? 밥 묵나?' 이렇게 간단 명료하잖아요. 두식이스러워요. 저 자체로는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는데 이건 유경이랑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작품서 단연 눈에 띄는 건 유경이와 백두의 '케미'다. 백두는 첫사랑 두식이를 잊지 못했고 두식이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백두가 받지 않기를 바란다. 씨름선수와 경찰의 만남. 생소한 조합이지만 장동윤과 이주명은 자연스레 풀었다.
"서로 '아 이런 친구구나'를 받아들이는 관계예요. 지방 촬영으로 생활하다 보면 끈끈해지는 게 있어요. 마빡(이마) 때릴 땐 '너무 세게 때렸나?' 고민이 됐어요. 그런데 예쁘게 담겨 '찰지게 때려볼걸'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대본도 좋고 감독님도 잘 준비해주셨으니 저희가 준비할 건 '케미'뿐이었죠. 동윤 오빠는 백두랑 닿아 있어요. 순수하고 귀여워서 장난을 치면 타격감이 좋아요. 벌크업을 하느라 하루에 3끼를 물회로 먹더라고요. 단톡방에 '자기랑 먹으러 가자' '여기가 맛있다' 등 먹을거 이야기 많이 해요.
아울러 이주명은 "장동윤을 제외한 단톡방이 정말 있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장동윤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검은색으로 드레스코드를 맞춰 화제가 됐다. 혼자 밝은 갈색 정장을 입은 장동윤은 "저만 없는 단체방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주명은 2022년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라이징 스타가 됐다. 이후 특별출연을 제외하면 '모래꽃'은 차기작이나 다름 없다. 또 이 작품은 이주명의 첫 주연작이다. 이런 점에서 의미도 남달랐을 터. '모래꽃'은 이주명에게 어떤 필모로 남을지 궁금했다.
"'희망이 담긴 꽃'이요. 제목부터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잖아요. 무슨 꽃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다 다른 꽃을 피울 거예요. '하면 된다. '결국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마음이 들어요. 주연을 맡았을 땐 '잘할 수 있을까. 뭘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계속 고민하니 결국 현장에서 늪에 빠지더라고요. '현장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편한 분위기에서 끌어주고 당겨주니 너무 즐거웠죠."
따뜻한 메시지에 반해 시청률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주명은 "시청률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일축하면서 "갖고 있는 진심,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어딘가 실존하는 인물처럼 진심으로 봐주셔서 이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하다. 진심은 통했다"며 거듭 감사함을 전했다.
최근 이주명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꽂혔다고 한다. 과거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 손이 잘 안 갔지만 '주술회전'과 '체인소맨'에 푹 빠졌다고 전했다. 또 '모래꽃'으로 로맨스를 경험했지만 다른 결의 로맨스도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주술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저렇게 살고 싶다' 이런 느낌. SF나 판타지도 해보고 싶고 액션도요. 이번에 로맨스를 하며 '쉽지 않구나'를 느꼈어요. 저희가 하는 거랑 시청자 입장에서 보이는 게 다를 수 있어 다각도로 고민했죠. 로맨스엔 다양한 가닥이 있잖아요. 청춘 풋풋 로맨스를 해봤으니 이제 조금 '낭만'적인 걸 해보고 싶어요."
이주명은 자신을 "어딘가 꽂히면 거의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잘 알기에 깊이 빠질 것 같으면 '좀 더 크게 봐야지' 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고 한다. 계속 돌아보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이주명을 만들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뚜렷해 보였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훨훨 나는 배우가 목표예요. 올해 목표는 몇 년째 똑같은 '쫄지 말자'인데요. 20대 경험을 바탕으로 30대엔 내 이야기를 명확히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어릴 땐 모를 수도 있고 경험이 없어 헷갈릴 수 있지만 지금은 몇 개 정도 이야기할 줄 아는 어른이요. 지금까지 깨달은 건 '하면 된다'예요. 생각이 많다 보니 복잡하고 몸이 안 따라줄 때가 있는데 해보면 별 거 아니에요. 안 될 것 같아도 하면 다 돼요. "
그의 '긍정 메시지'는 계속됐다. 모델로 활동하다 2019년 KBS '국민 여러분!'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이주명은 남들에 비해 다소 늦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올라오는 속도는 그 누구보다 빠르다.
"현재 시점을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어려워요. 뒤돌아보면 '그때 잘했지. 열심히 했지' 하는데 지금 '잘 하고 있어?' 물어보면 선뜻 답하기 어렵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잘했어' 하기엔 부족해요. 객관적으로 제 자신을 보려고 하고 안 좋은 것을 보완하고 있어요. 욕심이 있죠. 한 가지에 깊이 빠진다고 했는데 잘 하고 싶어서 발버둥 칠수록 더 어려워지더라고요. 이제는 매달리지 않고 전체를 보며 걸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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