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한국형 오컬트물'의 새 지평을 열 것이라고 기대를 모은 '선산'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오컬트물이 아닌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까웠고, 예측하지 못한 근친 코드까지 더해졌다. 이 가운데 류경수는 시종일관 과한 표정과 톤으로만 작품을 끌고 가니 극명한 호불호 반응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극본 연상호·민홍남·황은영, 연출 민홍남)은 존재조차 잊고 지내던 작은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일들이 연속되고 이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총 6부작으로 구성된 '선산'은 우리의 뿌리에 닿아 있는 선산이라는 소재에 가족과 무속신앙 등 한국적 문화를 접목한다는 기획으로 제작 단계부터 흥미를 유발했다. 또한 영화 '부산행' '반도', 넷플릭스 '지옥'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기획과 각본을 맡았고 오랫동안 조감독으로 활동해 온 민홍남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새로운 '한국형 오컬트물'의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선산'은 신선한 기획과 강렬한 음악으로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지만, 윤서하(김현주 분) 주변 인물들의 계속되는 죽음과 '선산을 포기하지 않으면 화를 입을 것'이라고 외치는 김영호의 행동만 무한 반복되면서 지극히 단조롭게만 흘러가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러더니 극 후반부에서 모든 서사를 퍼붓고 최성준(박희순 분)과 박상민(박병은 분)의 갈등도 의외로 쉽게 해결되면서 허무함도 남겼다. 결국 '선산'은 공개 3일째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4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선산'은 한국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속 누구에게나 통하는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를 힘 있게 끌고 가는 건 결국 신선한 이야기나 탄탄한 서사, 장르적인 쾌감도 아닌 배우들의 열연뿐이었다.
김현주는 불길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 인물의 두려움과 욕망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면서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박희순과 박병은은 브로맨스를 넘어선 깊이 있는 서사를 가진 뜻밖의 '케미'로 보는 재미를 더했다.
세 사람의 열연이 빛나는 만큼, 이들과 비등하게 중요한 인물을 맡았던 류경수의 연기 변신은 더욱 어색하게만 다가와 아쉬움을 남긴다. 극 중 김영호는 서하의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이복동생으로, 서하를 혼란에 빠트리며 이야기 내내 숨 막히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인물이다.
다만 김영호로 분한 류경수는 누추한 행색으로 등장해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고 과장된 표정과 대사 전달조차 잘 안되는 연기 톤을 장착해 보는 내내 피로감만 안겼다. 무색무취의 이야기 속 완급조절이 없는 류경수의 연기는 극 중 인물의 행동을 납득시키지 못할뿐더러 그의 다음 스텝을 전혀 궁금하지 않게 만들었다.
특히 극 절정에 다다를수록 감정표현만 격해져 보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할 정도였다. 모든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모든 행동과 말을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건 결국 배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는 이들이 인물을 이해하고 이입할 수 있도록 서사를 쌓아두지 못했다는 것과도 같다.
미스터리하면서도 감정적인, 극 전반을 아우르는 인물의 복잡다단하고 중요한 설정을 덥수룩한 수염과 음침한 눈빛, 이 두 가지의 외적 비주얼에만 신경 쓰며 보다 쉽게 접근한 게 아닐까라는 의문도 든다.
작품은 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던 윤서하가 존재조차 몰랐던 작은아버지의 죽음으로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작은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갑자기 나타난 이복동생 김영호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선산에 집착하고 윤서하를 위협한다. 심지어 외도하던 남편 양재석(박성훈 분)부터 심부름센터의 강홍식(현봉식 분) 사장까지 윤서하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사냥총에 의해 타살을 당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또한 윤서하의 집 앞에 굿을 한 듯 핏자국으로 범벅된 현장이 발견되고, 이에 윤서하는 김영호가 모든 일을 저지른 범인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최성준(박희순 분)과 박상민(박병은 분)이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윤서하와 김영호가 아닌, 두 사람과 관련된 가족 중에서 뜻밖의 인물을 범인으로 특정하게 되고 그렇게 숨겨져 있었던 가족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선산'은 '한국형 오컬트물'이 아닌 근친 코드가 더해진 미스터리 스릴러였고, 류경수의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작품의 집중도를 더욱 흐려지게 할 뿐이었다. 그나마 '선산'의 미덕은 김현주 박희순 박병은의 열연과 함께 보다 짧게 즐길 수 있는 6부작이라는 점 정도다.